2009년 10월 30일 금요일

(글로벌 두산)⑧"독주 원샷하면 계약하겠소"

(글로벌 두산)⑧"독주 원샷하면 계약하겠소" (인터뷰)김동철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中시장 성장세 지속..美·유럽시장도 회복 기대"
"밥캣 시너지 등 '두산인프라'브랜드 글로벌화 노력"
입력 : 2009.10.30 09:39
두산인프라코 17,850 1000.56%
종목 지수 그래프 종목시세목표주가기준일 주가(또는 지수) = 100으로 했을때, 종목주가와 KOSPI(또는 KOSDAQ)지수의 상대지수 그래프 기준일:조회일기준과거70영업일/20분지연
[이데일리 정재웅기자] "여기에 놓인 이 술을 한번에 다 마시면 계약하겠습니다"

박한철 두산인프라코어 시안(西安) 지사장 앞에는 두 개의 커다란 글래스 잔이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독하기로 유명한 중국 백주(白酒)가 가득 차 있었다.

열악한 중국시장을 뚫느라 일년의 절반을 중국에서 구른 탓에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그로인해 얻은 신장염으로 매일 한약을 달고 살던 그였다. 계약처의 농반진반 섞인 제의인 줄은 알았지만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을(乙)'의 입장이다. '중국에 우리 굴삭기만 팔 수 있다면..'. 결국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원샷'을 했다. 잔을 내려놓자마자 외쳤다. "이제 사인 하시죠".

놀란 상대방이 얼른 계약서에 사인을 해 건네줬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후 기억은 없다. 다만 이틀간 숙소에서 아픈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는 기억밖에는.

김동철 두산인프라코어(042670)(17,850원 100 +0.56%) 부사장은 지난 93년 처음 중국을 처음 개척할 때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에 말 없이 창가쪽만 쳐다봤다.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김 부사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때는 참 너무 힘들고 어려웠어요".

▲ 김동철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 그는 중국시장을 발판으로 세계로 도약하는 두산인프라코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한 마디 속에는 그간의 회한이 묻어있는 듯 했다. 김 부사장은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 시장 개척의 산 증인이다. 박 지사장의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그의 눈은 자꾸만 과거를 향해 치달았다. 그리고는 "자꾸 옛날 생각나네"를 반복했다.

그는 "박 부장 같은 사람들이 한·중 수교 이후 총 6명이 중국에 파견됐다. 나름대로 중국어 교육도 1년간 받고 간 사람들이었지만 막상 현지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 부사장은 "무엇보다도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면서 "한국의 자동차는 조금 알고 있지만 굴삭기도 만드는 줄은 전혀 모르고 있어 참 애를 많이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일본 제품과 캐터필라 같은 제품을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만은 충분히 있었다"며 "지역별로 전화번호부를 뒤져 건설회사란 건설회사는 모두 직접 찾아다녔고 밥먹다가 덤프트럭만 지나가도 먹던 밥 팽개치고 쫓아가 세일즈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두산인프라코어는 현재 중국 굴삭기 시장 점유율 16%(2009년 9월 기준)로 중국 건설기계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 15년간 발로 뛴 결과다. 아울러 중국 옌타이 공장을 비롯한 3개의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실로 보따리상으로 시작해 거부(巨富)가 된 셈이다.

김 부사장은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일단 양질의 대리상(代理商) 확보가 중요했다"며 "회사 사장의 마인드도 괜찮고 해당 지역에서 기계장비를 팔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위주로 엄선해서 뽑았다"고 말했다.

엄선된 대리상을 통한 두산인프라코어의 판매 확대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마침 불어닥친 중국 건설시장의 호황과 고객의 니즈에 맞는 품질과 합리적 가격이라는 두산인프라코어만의 아이템이 상승효과를 낸 것이다.

그는 "당시 회사직원 10여 명을 두고 일년에 20~24대를 판매하던 대리상들이 지금은 약 200여 명의 종업원을 두고 일년에만 약 500대를 판매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강점은 '두산의 성장=대리상의 성장, 두산의 발전=대리상의 발전'이라는 공식이 확고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건설기계의 특징상 철저한 AS는 필수적인 요소"라며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의 AS는 다른 경쟁사들도 놀랄만큼 탁월하다"고 자신했다.

실제로 두산인프라코어는 현재 중국시장에서 'SAN150' 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SAN(Service Assuarance Network)150은 반경 150㎞ 이내의 장비는 해당 AS센터가 24시간 이내에 커버토록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마저도 줄여 조만간 'SAN100' 전략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김 부사장은 "SAN150 전략의 고객 만족률은 97%에 달한다"며 "향후에는 SAN100전략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시간도 24시간에서 12시간 이내로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시장 전망에 대해 그는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4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이후 시장 사정은 확실히 나아졌다"면서 "올들어 지난 9월까지는 전년대비 9% 가량 성장한 상태이며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내년까지 이런 성장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오는 2012년 교체되는 중국정부가 그 이전에 청사진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고 그때쯤이면 중국 뿐만 아니라 지금 침체기를 겪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시장도 살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밥캣과 관련해선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중국시장에서 밥캣의 제품을 많이 알려내고 싶다"며 "현재 두산인프라코어가 하고 있는 제품과 세그먼트가 다르지만 상호간 시너지를 통해 중국 시장에 알려지도록 할 것이며 곧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향후 포부에 대해 물었다. 김 부사장은 "현재 중국에서 진행중인 사업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잘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면서 "옌타이 공장과 작년에 완공한 로더 공장, 현재 소주(蘇州)에서 진행중인 소형건설장비 공장이 원활히 되면 중국 수요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중국에 와서 굴삭기 등 건설기계장비에 대해 물을 때, 중국 어디서나 '두산'을 꼽도록 하는 것이 내 꿈"이라고 말했다.
 
"가능하겠죠?"라고 묻자 그는 그가 주저없이 말했다.  "내가 못하면 내 후배들이 반드시 해낼 겁니다"라고.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조은시스템회장/ 참존 회장 인터뷰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늦깎이로 창업한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이 자신의 멘토 김광석 참존 회장과 만났다. 김승남 회장이 김광석 회장에게서 배운 것은 차별화 전략. 김광석 회장은 자신의 이름처럼 차별화는 전광석화처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 이필재 편집위원·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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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이 있던 9월 8일은 전형적인 가을날이었다. 포브스는 서울 청담동 참존빌딩 회장실에서 대담을 마친 두 사람을 건물 옥상으로 이끌었다.

김승남 회장 제가 사업에 눈을 뜬 건 김 회장님의 청개구리 전략을 벤치마킹하면서부터입니다. 청개구리 전략이 경영 용어로는 차별화 전략 아닙니까? 화장품 회사가 대부분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쓸 때 청개구리 캐릭터를 광고에 등장시킨 것이나 샘플 중심의 영업을 시도한 것도 차별화를 꾀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차별화 전략의 요체가 무엇입니까?

김광석 회장 진정한 차별화란 남들과 더불어 있는 가운데 나의 특성이 두드러져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 홀로 동떨어져 있음으로써 눈에 띄는 건 진정한 차별화가 아니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백 명의 사람에게 운동장에 모이라고 했더니 다들 검은 양복에 검은색 모자를 쓰고 나타났습니다.

그 한가운데 내가 흰 양복에 흰색 모자를 쓰고 서는 겁니다. 그럴 때 아흔아홉 명은 나를 위한 바탕색이 됩니다. 사실 조물주는 모든 인간을 서로 다르게 창조했습니다.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달라요.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불어 사는 것이 가능한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차별화란 필연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차별화란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고 나만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승남 차별화 전략은 블루오션 전략과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경영하는 조은시스템이나 제가 창업한 잡코리아도 김 회장님의 차별화 전략을 벤치마킹해 대기업이 주목하지 않던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시장을 공략해 해당 시장에서 업계 1위가 됐죠. 강자가 없는 시장에 화력을 집중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차별화 전략을 쓰신 배경이 무엇입니까?

김광석 화장품 하면 사람들이 색조 화장품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화장품엔 색조 화장품과 기초 화장품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잘하는 건 기초 쪽입니다. 색조 화장품은 잘 못 만들어요. 그래서 내가 강한 기초 쪽에 집중한 것이죠. 25년 동안, 피보약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무려 43년 동안 차별화를 했습니다.

기업을 하는 분들이 이런 과정과 나름의 성과를 지켜보고서 괜찮으니까 벤치마킹을 하겠다고 하는 거죠. 제가 만일 차별화라는 확실한 경영전략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색조 화장품을 만들었을 겁니다. 색조 쪽을 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남들이 설악산 간다고 영동고속도로로 몰릴 때 저는 인천 송도 앞바다로 간 셈이죠.

교통량을 감안하면 어느 길이 시간이 덜 걸리겠습니까? 저는 김 회장님도 그런 유의 시도를 했다고 봅니다. 대기업을 따라가지 않고 고유의 자원을 투입해 성공을 거둔 거죠.

김승남 조은시스템은 개항 때부터 인천국제공항의 보안을 맡고 있습니다. 검색, 폭발물 처리 등은 저희 회사가 가장 잘합니다. 주한미군 시설도 모두 저희가 맡고 있고, 금융권 보안시장에서도 업계 1위죠. 공항, 공공기관, 금융권 등 보안 분야 대기업들의 관심이 적은 시장에서 차별화를 하고 마케팅도 차별화한 결과입니다.

구체적으로 맞춤 서비스, 역량의 집중, 교육 훈련 등에서 차별화를 했습니다. 잡코리아도 처음엔 포털, 커뮤니티, 구인·구직 사이트를 다 하다가 나중에 구인·구직에 집중했습니다. 결국 양쪽 다 1000억원대의 회사로 성장했고, 잡코리아 지분을 몬스터닷컴에 넘긴 후 거기서 들어온 돈으로 조은시스템에 투자하고 조은문화재단도 만들었죠.

지금은 사랑받는 보안 기업이 되기 위해 보안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강점을 지닌 고유한 영역을 고수하는 것도 차별화라고 봅니다. 참존이 시장에서 강한 기초 화장품에 주력하는 것이야말로 차별화죠.

김광석 저는 경영인이기 전에 기술인입니다. 이 점이 저의 강점이고 차별화의 포인트죠. 참존화장품을 설립한 건 제가 43년 전 피보약국을 개업해 약을 조제하면서 쌓은 피부약에 대한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강점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라고 할 수 있죠. 약점은 제쳐두고 강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피부약 전문 약사가 된 건 첫째로 당시 잘 듣는 피부약이 없었고, 둘째로 피부병 약의 약효는 약사는 물론이고 환자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강점을 바탕으로 했지만 처음부터 강점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참존화장품 자체의 강점은 사용하면 피부가 희어지고 탄력 있고 촉촉해진다는 겁니다.

흰 피부는 동양권 여성들의 간절한 소망이죠. 기초 화장품은 주식에, 색조 화장품은 부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주식으로 대개 밥이나 빵을 먹듯이 기초 화장품은 거의 세계 공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남 하동 출신인 김광석 회장은 부산공고를 거쳐 1966년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했다. 그는 서울 중구 스카라극장 앞 골목 안에 피보약국을 차렸다. 약국 수입이 괜찮았던 시절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잘 안 됐다. 그래서 피부병에 잘 듣는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이 약이 대박났다. 30대 중반에 중구 도시새마을연수원을 만들어 연수원장을 지낼 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 피보약국이 유명세를 타자 대구·부산 등 전국의 약국 60곳에서 약을 달라고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루 매출액으로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을 만큼 주문이 쇄도했다.

하지만 이 일로 그는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렸다. 무허가 제약을 했다는 것이다. 의약분업이 안 돼 있던 그 시절 약을 조제해 내 약국에서 파는 건 괜찮았지만 남의 약국에서 그 약을 팔면 범법 행위였다. 그는 잘나가던 약사에서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7개월째 도피생활을 하던 중 양산 통도사에 숨어들었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골방 구석에 6개월 전 신문이 놓여 있었다. 거기 그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불혹의 도망자. 그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길로 그는 서울지검을 찾아가 자수했고 항소심에서 8억3000여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김 회장은 “지금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족히 백 배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벌금을 벌기 위해 그는 참존화장품을 설립했다. 새옹지마. “그 시절 그렇게 좌절하지 않았다면 참존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어느 약사가 조제약을 다른 약국에서 사갑니까? 저 같은 사람이 없다 보니 관련법도 없고, 판례도 없었죠. 그래서 참존을 세우고 창업이념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이미 내 안엔 성공에 대한 환상이 있었습니다.”

김 회장은 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뒤에 걸린 창업이념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참존은 부유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창업한다. 내가 태어나 살고 있으며 다시 묻혀야 할 나의 조국을 풍요롭게 하며, 세계 속의 선두주자가 되게 하는 것, 이는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사명이다. (중략) 참존이 있어 세계 여성이 아름다우며 우리는 긍지를 가지고 품질 개선에 정성을 다할 것이다.(후략)’


김승남 참존 하면 많은 사람이 광고에 나온 청개구리 캐릭터를 떠올릴 겁니다. 요즘은 광고를 많이 안 하시죠? 이 역시 의도된 차별화인가요?

김광석 남들이 광고 많이 한다고 해서 따라 하면 차별화가 아니죠. 그렇다고 제품 소개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3S 전략입니다. 3S는 샘플, 세미나, 서비스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죠. 우선 샘플 전략은 품질이 좋아야 먹힙니다. 고객들이 참존의 샘플을 써보고 좋으니까 제품을 사는 거죠.

저희 샘플이 인기가 있으니까 소매점에서 다른 제품을 팔면서도 샘플은 저희 것을 줍니다. 심지어 저희 샘플만 모아서 판매하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이 전략은 품질이 떨어지면 이중의 타격을 입습니다. 샘플을 제공하느라 비용 들어 타격 입고 기껏 샘플을 뿌리고도 제품이 안 팔려 타격을 입는 거죠.

품질이 떨어지는 회사는 샘플을 줘도 소비자들이 안 받아 갑니다. 세미나는 원주공장에서 창업주인 제가 매번 직접 합니다. 참석한 사람들이 “돈도 많이 벌고 MBC 성공시대에도 출연한 사람이 저렇게 안 해도 될 텐데…” 하면서도 경청을 합니다. 그 동안 다녀간 VIP 여성만 12만 명가량 돼요.

한 번 다녀가면 참존의 마니아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참존을 홍보합니다. 세 번째 전략인 서비스의 핵심은 CCS(참존 커스터머 숍) 전략입니다. 참존과 소비자가 1대1로 직거래하는 상점이죠. 참존 쇼핑몰(080-8383-000)로 전화하면 택배 비용을 포함해 시중가격의 절반에 제품을 보내줍니다.

유통마진을 고객에게 돌려주는 것이죠. 단 CCS 브랜드가 따로 있어요. 브랜드만 다를 뿐 내용물은 꼭 같습니다. 궁극적으로 참존은 대리점·소매점에 유통을 의존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청개구리 캐릭터와 차별화

김승남 우리 기업들이 불황의 터널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차별화 전략은 이런 불황기일수록 더 필요하고 유용하다고 봅니다. 이런 시절엔 여느 때와 발상법과 비전도 달라야죠.

김광석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필수 전략이죠. 불황기엔 경쟁이 더 치열해 일등만 살아남습니다. 한마디로 나 말고는 모두 적인 시절입니다. 그러니 경쟁에서 이길 특별한 요소가 내 안에 있는지 잘 따져봐야죠.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기존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불황기엔 뭔가 새로운 것, 특별한 것을 찾아내 거기에 내부 역량을 집중하는 차별화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사실 모든 전략과 전술이 상식에서 나옵니다. 경쟁에서 도태될 것 같은 기업은 나름대로 마지막 안간힘을 써 본다는 자세로 차별화해야 합니다.

저는 인생살이나 기업 활동이 동굴 탐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컴컴한 동굴 안에서 돌출부에 부딪치지 않으려면 낮은 포복 자세로 끊임없이 탐사해야 합니다. 안전하게 간다고 다른 기업의 뒤꽁무니만 붙잡고 있어서는 비전조차 세울 수 없죠. 차별화는 타이밍과 스피드도 중요합니다. 적기에 전광석화처럼 해야 시장을 선점당하지 않습니다.

김승남 타이밍과 스피드를 최적화하지 않으면 사실 차별화 자체를 하기가 어렵죠. 네이버나 구글 같은 검색엔진이 성공한 것도 타이밍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제품·서비스의 차별화도 필요하지만 고도의 차별화는 남이 안 하는 것을 하는 거라고 봅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하고 저마다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로는 성공을 못했지만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내놓음으로써 애플을 실력 있는 회사로 만들죠. 차별화한다고 다 성공하는 건 물론 아니지만, 차별화 전략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했으면 합니다.

김승남 회장은 사업을 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직업군인 출신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나온 김 회장은 육군 간부후보생으로 1963년 임관해 21년간 복무했다. 진급에서 두 번 누락된 후 전역해 충북은행 안전관리실장으로 금융권에 발을 들여놓지만 “군바리는 물러가라”는 노조의 반발에 부닥쳐 BYC생명으로 자리를 옮긴다.

열정적인 마케팅으로 발군의 영업실적을 올려 저축본부장에 발탁됐지만 의욕이 너무 앞서 직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탓이었다. 보험회사에서는 임원 자리를 마다하고 전표 쓰는 법부터 배웠다. 법인영업부장을 거쳐 상무로 승진한 그는 1993년 쉰둘의 나이에 1000만원으로 조은시스템을 창업한다.

김광석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들이 많이 가는 안정된 길을 가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위험이 따르지만 남다른 방식으로 사는 겁니다. 선택은 자유지만 남보다 앞서가려면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 가운데 안정된 길만 간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인생의 골짜기까지 내려갔었고 가다 보니 오르막길로 바뀌고 봉우리가 나타나더군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 길에 매진하면 하늘도 돕습니다.

김승남 저는 손길승 SKT 명예회장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국은행이나 대기업을 선망하던 시절에 이분은 ‘작은 기업에 들어가 큰 기업으로 만들어 보라’는 지도교수의 권유에 따라 선경직물에 입사했고, 결국 이 회사를 SK라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죠.

저는 젊은 세대에게 큰 기업에 들어간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중소기업에 들어가 미친 듯이 일해 대기업으로 키우는 것도 인생의 차별화라고 할 수 있어요.

김광석 기업이든 개인이든 자신의 최대 강점을 찾아내는 게 차별화의 시작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체가 차별화라고 할 수 있죠. 차별화는 또 장수 기업으로 가는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적기에 발 빠르게 차별화하면 기업이 노쇠해지지 않습니다. 차별화는 전 단계에 있는 모든 기업이 상시적으로 추구해야 할 전략입니다.

김광석 회장이 말하는 차별화 전략

▶ 자신의 강점을 찾아내라

자신의 강점을 찾아내 이를 바탕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라. 약점은 제쳐두고 강점에 선택과 집중하라. 두드러진 강점이 없으면 시장에서 기회 요인을 찾아내 강점을 만들어내라. 내가 피부과 전문 약사가 된 것은 당시 시장에 잘 듣는 피부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 타이밍과 스피드가 중요하다

차별화에도 적기가 있다. 조금 늦어도 안 되고 조금 일러도 실패할 수 있다. 또 차별화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전광석화처럼 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을 선점당하지 않는다.

▶ 차별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라

고유의 강점을 찾아냈으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CEO가 바뀌어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시장조사 결과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차별화한 고유성을 잃지 않는 것도 차별화다.

▶ 상시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라

꾸준히 차별화하면 기업의 노화를 차단할 수 있다. 탄생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어느 단계에 있든 상시적으로 차별화한다면 기업도 늙지 않을 수 있다. 차별화란 지속가능한 성장전략이다.

늦깎이 창업자끼리 잘 통한다?
김광석 참존 회장과 김승남 조은시스템 회장은 1994년 서강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8기)에서 만났다. 당시 김광석 회장은 창업 10년차였고, 김승남 회장은 막 창업했을 때였다. 김승남 회장은 김광석 회장에 대해 “내가 사업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멘토였다”고 말했다.

“당시 참존은 중견회사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김 회장님은 뒤늦게 화장품 업계에 진출하셨지만 청개구리 전략으로 기초 화장품 분야에서 돌풍을 일으키셨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틈새시장을 찾아 질 좋은 서비스로 승부하면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믿게 됐습니다. 당시 김 회장님은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선두업체를 그대로 모방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선두업체와 경쟁하지 않는 방향에서 접근하는 청개구리 전략을 써야 성장의 길에 들어설 수 있죠.’”

두 사람은 늦깎이로 창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광석 회장이 45세에, 김승남 회장은 52세에 회사를 일궜다. 김광석 회장은 피부약 전문인 잘나가는 약사에서 하루아침에 무허가 제약 혐의자로 전락한 신세였다. 김승남 회장은 21년간의 직업군인 생활을 마감하고 금융권을 거쳐 창업했다.

김승남 회장은 “바쁜 분에게 떼쓰듯이 만나자고 청해 지도받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님은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깊은 분입니다. 이런 점을 배운 것도 보람이었죠.”

그는 김광석 회장의 조언에 따라 보안업계 최강자인 세콤(에스원)이 취약한 공항, 금융권, 공공기관 쪽에 역량을 집중했다. 보안시장을 나름대로 세분한 뒤 강자가 약한 시장에서 차별화를 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광석 회장이 “저는 남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안 갔는데 이 점을 김승남 회장이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거들었다.

멘토인 김광석 회장이 올해 고희, 멘티인 김승남 회장도 고희를 바라보는 예순여덟이다. 김광석 회장과 김승남 회장이 차별화 전략의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데 노익장이 따로 없었다.



포브스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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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빅4’ 도전장 낸 윤윤수 휠라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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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윤윤수 휠라그룹 회장은 “시장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며 “2014년까지 30억 달러 매출을 올려 세계 4위 스포츠 브랜드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14일 서울 강남의 오크우드호텔. 스포츠 브랜드인 휠라의 글로벌 콘퍼런스 미팅이 한창이다. 미국·중국·영국·브라질 등 20여 나라에서 온 이 회사 지역·국가 책임자들이 브랜드 포지셔닝, 마케팅, 제품 조달 전략 등을 놓고 머리를 맞댄 것. 바로 전날 휠라는 ‘5년 내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세계 4위 스포츠 브랜드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선포했다. 휠라의 글로벌 콘퍼런스가 한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윤수(64) 휠라그룹 회장은 “미국에서 열리던 관례를 깸으로써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행사는 세계에서 모인 40여 명의 휠라 책임자가 으쌰으쌰 잘해보자고 다짐하는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존 엡스타인 휠라USA 사장은 “20년 가까이 놀라운 실적을 보여준 진윤(Gene Yoon·윤 회장의 영문 이름)을 배우러 왔다”며 크게 웃었다. 휠라코리아의 화려한 성적표가 세계 각국 휠라 책임자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글로벌 콘퍼런스 행사 현장에서 윤 회장을 만나 글로벌 경영 전략을 들어봤다.

-이번 콘퍼런스의 주요 이슈는.
“휠라는 1911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브랜드다. 앞으로 2년 뒤면 탄생 100주년인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공유하는 게 필요했다. ”

-5년 내 30억 달러 매출을 올리겠다고 선언했는데 실현 가능한 것인가.
“무엇보다 올해 매출 전망치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올해 휠라그룹 매출은 12억 달러로 지난해(11억 달러)보다 9%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감안하면 꽤 선방한 셈이다. 현재 환율(달러당 1170원)이라면 최대 3000만 달러 가까운 순이익이 날 것으로 기대된다. 휠라코리아도 계속 순항하고 있다. 올해 3300억원대 매출을 올려 지난해보다 13%가량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휠라는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 세계 6~7위쯤 한다.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면 충분히 세계 4위권으로 점프할 수 있다. 부실은 거의 다 털어냈다. 돈을 잃을 요소가 없으니 이제 돈 벌 일만 남았다.”

-글로벌 빅4를 이뤄낼 키는 무엇인가.
“먼저 공급망을 바꿨다. 좋은 거래선을 많이 발굴했다. 예를 들어 11달러 하던 신발 납품 평균 단가를 8~9달러로 낮췄다. 물류 혁신도 이뤄냈다. 우리 창고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고객에게 전달되는 물량이 전체의 80%에 이른다. 그만큼 효율이 좋아졌다. 물류구조 혁신을 통해 마진이 8% 이상 개선됐다. 특정 분야에서 성가를 올리고 있는 기업들과의 협업도 강화했다. 최근 일본의 혼다 레이싱팀과 제휴해 모터스포츠 관련 제품들을 내놓았다. 미국의 타이어 업체인 파이어스톤과도 손을 잡았다. 앞으로 매출 증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협업 성공 사례를 좀 더 설명해 달라.
“미국 백화점 체인인 코올스(Kohl’s)와의 협력을 예로 들겠다. 코올스 매장 300여 곳에 지난해 초부터 ‘휠라 스포츠’ 브랜드로 의류와 신발을 독점 공급했는데 이제까지 의류에서 1억 달러, 신발에서 1500만 달러의 누적 매출을 올렸다. 올해 휠라USA의 매출 2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을 코올스 매출이 차지하게 된다.”

-나이키·아디다스를 비롯해 푸마·스케처스·스니커즈·아식스 등 강자와 경쟁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한마디만 하자. 경쟁자는 강하고 크다. 그러나 시장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주눅들 이유가 없다.”

91년 휠라코리아 대표로 휠라와 인연을 맺은 윤 회장은 빼어난 영업 실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봉급쟁이’ 반열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외환위기 때 펴낸 '내가 연봉 18억을 받는 이유'라는 책은 수십만 권이 팔렸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2007년 1월 윤 회장과 휠라코리아가 주축이 돼 미국계 사모펀드 서버러스에 3억5000만 달러를 주고 휠라그룹을 통째 사들인 것. 기껏해야 영업이나 잘하는 줄 알았던 한국 법인이 ‘몸통’을 삼켰다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됐다.

-휠라그룹을 인수한 후 한동안 조용했다.
“회사에 문제가 많았다. 예상보다 그룹 부실이 커서 실망도 많이 했다. (웃으면서) 그러나 이미 돈을 냈으니 되돌릴 수 없는 것 아닌가. 내부 부실을 털어내는 데 3년 가까이 걸렸다. 이제는 거의 해결했다.”

-무엇이 그렇게 골칫거리였나.
“미국 시장이 문제였다. 서버러스가 경영하면서 너무 공격적으로 출점을 했다. 한 해에 20개가량 신규 점포를 열었는데 여기서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수익이 나기는커녕 점포당 연평균 200만 달러씩 손해를 봤다. 인수 첫해에만 약 6500만 달러 적자가 났다. 지난 3년 가까운 세월 중 절반을 미국에서 보냈다. 미국 비즈니스를 고민하느라 전체 업무 시간의 3분의 2는 썼을 것이다. 항공사 마일리지만 38만 마일을 쌓았다. 환산해 보니 지구를 15바퀴 넘게 돈 셈이다. 정말이지 죽기 살기로 일했다. 휠라USA는 올해 1500만 달러쯤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윤 회장 명함에는 ‘GLBH홀딩스 회장’과 ‘휠라코리아 회장’이란 두 개의 직위가 적혀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휠라글로벌의 지주회사인 GLBH홀딩스와 휠라코리아 회장을 겸임한다. GLBH홀딩스는 서버러스에서 인수한 회사로, 이 회사의 대주주가 휠라코리아다. 휠라그룹 전체를 휠라코리아가 소유하고 있는 구조다. 윤 회장은 휠라코리아와 미국 법인만 직접 경영한다. 나머지 국가엔 라이선스 계약이나 합작회사 설립 등의 형태로 진출했다. 유럽·중동·아프리카에선 인테그릭스(Integrix), 남미에선 다스(DASS), 일본에선 이토추상사와 손을 잡고 휠라 제품을 팔고 있다. 윤 회장은 “이들 회사와 장기 계약을 해 받은 라이선스 수익금으로 서버러스 인수대금을 지급했다. 이들 회사와 휠라는 공동 운명체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사업은 더딘 것 같다.
“중국에선 중저가 브랜드 안타(ANTA) 스포츠와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정스중(鄭世忠·39) 회장이 경영하는 안타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주목 받는 회사다. 브랜드가 약해 고민하던 중 마침 우리와 계약하게 됐다. 조건도 좋다. 합작 회사를 만들 때 계약금 5000만 달러와 주식 15%를 받았고, 3%의 판매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판매 전략이 아주 공격적이어서 내년에만 중국 전역에 300개 매장을 새로 열겠다고 한다.”

-다른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하면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지 않나.
“휠라가 진출한 국가가 70개쯤 된다. 각각 역사와 문화, 기후, 유행이 다르다. 신체조건은 물론이거니와 인기 있는 아이템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공통분모를 최소화하는 디센트럴라이제이션(탈집중화) 전략을 쓰고 있다. 15~20% 정도만 통일성 있는 상품을 내놓고 나머지는 각국 시장 상황에 맞는 제품을 구비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선 러닝화를, 이탈리아에서는 럭셔리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물론 한 곳에서 히트한 디자인을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컬렉션을 전 세계에 판다는 것은 큰 자금이 들어간다. 우리에게 이런 여력은 없다. 이것은 나이키도 마찬가지다. 자칫하면 엄청난 재고 부담을 질 수도 있다. 한편으론 브랜드 통일성을 위해서 ‘브랜드 북’을 만드는 등 자체적인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회사를 상장할 계획은.
“2007년 휠라그룹을 인수할 당시 투자금을 제공한 삼성증권·미래에셋·군인공제회 등과 내년까지 상장하기로 계약했다. 내년 하반기께 상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 최고액 봉급쟁이로 유명했다.
“일은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은 어느새 주머니에 들어와 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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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손석희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손석희입니다

<100분토론>을 사랑해주시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손석희입니다.

제가 <100분토론>을 두 번 진행한 후인 지난 2002년 1월 26일에 이 게시판에 처음으로 인사차 글을 올린 후 7년 10개월 만에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제 거취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열흘 가까이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걱정도 해주셨고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또한 진심으로 저를 아껴주시는 차원에서 조언도 많이 주셨습니다. 물론 저의 퇴진 문제와 관련해서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상황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회사측도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보도된 것처럼 제 문제는 노사관계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제가 입장을 좀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회사측의 결정에 따른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퇴진이 결정된다는 전제하에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결국 이 글은 마지막 인사차 올리는 글입니다. 이미 저의 퇴진 문제가 공론화된 마당에 모두에게 부담만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혹 제가 <100분토론>에 남게 되더라도 이 상황에서는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질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그대로만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정치적 배경도 없으며, 행간의 의미를 찾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7년 10개월 전에 제가 이 게시판에 올린 첫 글에 "저는 어떠한 정치적 당파성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지난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100분토론>을 진행하면서 이 약속을 크게 어긴 적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부에선 저의 퇴진 문제를 논하면서, 편향된 면은 있었지만 퇴진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걸 봤습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자칫 이것은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실제로 그랬다면 <100분토론>이 오늘날 대표적 토론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토론진행자로서 허물이 없을 순 없겠지만 8년을 진행하고 물러나면서 가질 수 있는 이 정도의 자부심은 허락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저의 퇴진문제가 프로그램의 새로운 출발과 연관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저의 퇴진문제로 더 이상의 논란은 없었으면 합니다.

사실 지난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주일에 하루씩은 거의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이제는 밤샘에서 해방됩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했던 회의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남는 시간은 학업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좀 더 매진하는 데에 쓰겠습니다. 그 동안 새벽 두시가 돼서야 끝나는 프로그램을 시청해주시느라 함께 고생하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동시에 저나 <100분토론>을 아프게 비판해주신 분들께도 특별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한 비판 덕분에 또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개편때까지 이제 저의 진행은 네 번 정도 남았습니다. 11월 26일부터는 새로운 진행자와 함께 한 단계 더 도약하는 <100분토론>을 저도 시청자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겠습니다.


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세계를 누비는 금융전략가 J.P.모건 부사장 김수진

세계를 누비는 금융전략가 J.P.모건 부사장 김수진
예일대 정치학, 컬럼비아대 MBA출신 M&A전문가 / 김두호
작성일 : 2009-08-24
 



[인터뷰365 김두호] 미국의 종합금융투자은행 J.P.모건의 런던법인 부사장으로 활동하는 재미동포 크리스티나 수진 김(한국명 김수진 33) 씨에게는 할 일은 많고 세계는 좁다. 파라과이 이민동포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한 뒤 브라질과 홍콩에서 금융투자분야 사업 활동을 했고 지금은 영국 런던에서 근무하고 있다.


뉴욕에 본사가 있는 J.P.모건은 1838년에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금융투자기업이다. 창립자인 미국의 사업가 조지 피바디가 런던에 개점한 상업은행이 기초가 된 유래가 있어서 런던지사는 모건 직원들이 긍지를 느끼게 하는 근무처다.  ‘2009 세계 한인 차세대대회’ 참석 등 모국 방문의 짧은 일정 속에서 <인터뷰365>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준 그녀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느낀 인상은 국경과 인종의 벽을 깨트리고 세계를 무대로 마구 날아다니는 언더우먼 같았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인생을 멋있게 살고 싶다.’는 것이 크리스티나 수진 김의 꿈이고 인생관이다. 파라과이에서 미국으로, 그녀의 가족은 한국을 떠난 후 두 차례나 이주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고 밝게,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시원시원하고 속이 툭 트인 사람을 두고 화끈하다는 말을 한다. 당신의 첫 느낌이 그런 사람 같다.

하하하. 좋게 보았다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겠다. 인터뷰 사진은 아주 예쁘게 나온 것을 실어주기 바란다.


대개 이주한 동포들은 영문 이름에 한국 성명을 약자로 넣지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크리스티나 수진 김’(Cristina Soo Jin Kim)은 누가 지은 이름인가?

아버지가 작명했다. 나는 1976년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서 출생했다. 부모님의 고향은 한국이지만 나의 고향은 파라과이인 셈이다.


가족은 언제 이민을 가셨는가?

내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973년이다. 서울에서 건축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김태웅 69)는 어머니(김미자 64), 나에게 조부모님이신 부모님까지 모시고 모두 함께 파라과이로 가셨다. 그곳에서 양계농장을 경영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는 4살 많은 언니가 한사람 있다.


남미의 파라과이라면 정말 먼 나라다. 언제까지 그곳에서 살았는가?

내가 14살 되던 해까지 살았다. 우리 가족이 이민 올 무렵 남미로 개척이민을 오신 분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순시온에도 외롭지 않을 만큼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성당이나 학교에서 동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양계장을 하시기 전에는 점포가 있는 집에서 살았다.


미국으로 다시 이주를 하게 된 동기는?

우리 자매의 교육문제를 염두에 두고 결정하셨다. 1990년 미국 뉴욕의 퀸스로 이주해 아버지는 블루클린에서 스포츠화 점포를 운영하셨다. 나는 중학교 과정인 8학년에 입학해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이어서 과학고인 블롱스 하이스쿨을 졸업하고 예일대 정치학과를 다녔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금융비즈니스 쪽으로 진로를 바꾼 건가?

많은 생각을 했다.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미국에서 해볼 만한 가장 화려한 직업인은 금융 전문가라는 판단을 했다. 2004년에 컬럼비아대학원 MBA를 다닌 것도 나의 새로운 꿈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됐다.


그 후 줄곧 J.P.Morgan에서 근무했는가?

아니다. 첫 일자리는 한국에서도 투자활동을 해 잘 알려진 메릴린치 뉴욕지사였다. 나는 그곳에서 남미국가와 아시아 유럽지역의 투자컨설팅에 참여했다. 기업의 인수 합병문제(M &A)도 내 전문분야였다. 나는 스페인어권에서 자라 다른 사람보다 스페인어를 잘한다. 그로인해 브라질지사로 파견근무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상파울루에서 2년6개월간 근무하며 브라질을 비롯해 아르헨티나 등 남미국가의 투자 프로젝트에 관여했다.


줄곧 혼자서 생활했는가?

그럼 미혼인데 누구랑 사나? 그곳에 있는 동안 별도로 숙소를 마련하지 않고 호텔에서 살았다. 혼자 생활할 때는 아파트나 주택보다 호텔이 편리하다.


엄청난 생활비가 들지 않는가? 도대체 연봉이 얼마인가?

쓰고 남을 만큼 받는다. 하하하. 지금 영국에서는 주택을 마련해 지내고 있다.


브라질에서 다시 어디로 간 것인가?

3년 가까이 머물자 남미(남아메리카)를 떠나고 싶었다. 회사나 주변사람들에게 ‘크리스티나 하면 남미통’이라는 인식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컬럼비아대학원 MBA를 할 때 세계적인 화장품메이커 에스티로더 CEO의 리더십특강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지금 국제 금융분야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이 기회의 땅이라는 지적이었다. 나는 우선 자신감에 생겼다. 아시아 인종이므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아시아라는 것 때문이었다. 결심이 서자 내 전문분야의 인력이 부족한 J.P.Morgan으로 근무지를 옮겨가며 아시아 파견을 지망했다. 처음에는 상하이나 베이징으로 생각했다가 생활과 활동에 다양성이 많은 홍콩으로 바꾸었다.


꿈을 꿈으로 돌리지 않고 실행에 옮기는 도전정신과 추진력이 놀랍다.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싶은 일은 그냥 앉아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홍콩의 2년6개월은 참으로 힘들고 한편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일벌레가 됐다. 서울과 싱가포르 중국을 오가면서 새벽까지 전화를 걸었고 휴일도 없는 일과가 반복됐다. 그럴수록 나의 에너지는 폭발한다. 일에 중독이 된 시간이 행복하니까.


홍콩에서는 얼마나 살았나?

그곳에서도 2년6개월이었다. 아마도 그 기간이 내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게 하는 주기성 기간인지 모르겠다. 그쯤에서 지루함이 느껴지고 다시 새로운 나라와 도시가 그리워지니까. 그래서 유럽을 그리워했고 생각대로 런던으로 가게 된 것이다.


혼자서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일하고 사는 것이 이젠 익숙해졌겠다.

가방 몇 개에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나듯이 홀가분하게 떠난다. 미지의 나라와 도시를 향해 새로운 기대감을 가지고 떠나지만 낯선 사람들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다소 두려움도 따른다. 그러나 내가 가는 곳에는 정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좋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다.


활달하고 사교적인 스스로의 성격 덕분이 아닌가?

부모님에게 배운 정신이 인생을 멋있게 사는 것이었다.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배우고 하고 싶은 일도 여자라고 위축되지 말고 무엇이든 이루어가며 즐겁고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가 딸들에게 일러준 지침이다. 한국을 떠나 파라과이의 거친 땅을 개척하고 다시 딸의 장래를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님이 나에게 용기와 지혜를 주신 분들이다.


그런 부모님 덕분에 성장기간 부러움 없이 공부를 한 것처럼 보인다.

틀린 느낌은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 동포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자식의 교육을 위해 헌신적이고 희생을 하는 편인데 우리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비 걱정을 한 적이 없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며 느낀 사회 특성이나 경험담을 듣고 싶다.

국가가 다르고 민족이 달라도 인간의 감정은 어디서나 서로 통하고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물론 사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 파라과이나 브라질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심성이 착하고 돈이 없어도 낙천적이고 즐기며 사는 기분파가 많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 같은 곳에서 살아도 노래가 흘러나오고 춤을 추며 인생을 엔조이할 줄 안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국가다. 목표를 정해 달리면 원대한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보장이 된 나라로 틀이 잡혀 있다. 사업가가 되던 정치가가 되던.

홍콩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비즈니스 문화를 꽃피운 곳처럼 느껴졌다. 다른 아시안 국가와 달리 예의와 격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과거 영국의 보수적인 전통문화가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다.

런던은 유럽의 중심도시답게 각국의 비즈니스맨들이 모여들어 영어는 물론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엉켜 돌아간다. 문화에 대한 인식이나 수준도 가치를 느끼게 한다. 생활자체가 문화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식생활도 멋과 격조를 중요시 하는 곳이다.


부사장이라면 어떤 일을 하는가?

내 직책은 J.P.Morgan의 런던법인체에서 투자은행전략그룹 부사장이다. 투자 전략과 관련된 내 전문 분야의 일을 맡고 있다.


결혼은?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 그 동안 그쪽으로 눈을 돌릴 시간이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일생을 함께할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부부는 함께 살며 삶을 공유하는 것인데 멋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크리스티나 수진 김은 미지의 땅을 향해 떠났던 개척 이민동포의 정신을 물려받은 담대하고 지혜로운 여자였다. 한국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파라과이 출생의 이민 2세대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배운 한국어를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구사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일단 이야기가 시작되면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 않게 만드는 정돈된 화술과 친근감을 주는 표정은 고급 비즈니스 세계에서 체득한 인품처럼 보였다. 33살 처녀 크리스티나 수진 김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 7백만을 넘어선 우리나라 해외 동포사회에서 자랑스러운 꿈나무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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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흡연ㆍ단음식ㆍ탈수로 혈액 끈끈해지면 심장돌연사 위험

저열량 식사로 혈액 맑게하고…하루 한번 반신욕은 혈압 낮춰
건강 과신말고 나쁜습관 피해야

지난 8월 '아시아의 물개'로 일컬어지던 조오련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심장돌연사로 세상을 떠나 충격을 던졌다. 대한해협 횡단에 재도전하기 위해 강훈련을 펼치던 그는 추운 바닷물의 수온을 견디기 위해 기름진 음식을 집중 섭취한 데다 재도전에 대해 큰 심적 부담감을 느껴 갑작스레 사망한 것으로 주위에선 보고 있다.

심장돌연사는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뇌 · 심혈관질환 등 복합적인 이유로 1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것으로 이 중 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이 80% 이상으로 추정된다. 심장관상동맥 등에 혈전이 생겨 혈관을 막으면 돌연사를 유발하므로 평소 혈액이 끈끈해지지 않게 알맞은 점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흡연은 혈액 내 혈구 수를 늘리고 혈액의 점도를 높인다. 하루에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운 평균 40~59세의 남성은 심장관상동맥질환이 발생할 위험도가 그렇지 않은 동년배의 2.5배에 이른다. 여성은 하루 1~4개비 정도의 적은 흡연량으로도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이 2배 증가될 수 있다. 따라서 금연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격심한 운동을 하는 도중이나 직후,과로와 질병에 의한 탈수,지나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때,격렬한 성관계 후,과식 후,만취 시,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생활을 할 때,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할 때 심장의 컨디션이 나빠져 돌연사가 올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계절적으로는 모든 환절기가 위험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때가 가장 무섭다. 기온이 급강하하면 혈액이 굳고 혈관도 수축해 혈류가 막히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하루 중에는 기상 직전부터 기상 후 수시간 내가 가장 위험하다. 체온이 가장 낮은 상태인 데다 혈관의 유연성이 떨어져 있어서다. 1주일 중에는 심적 중압감이 큰 월요일에 돌연사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혈액을 맑게 관리하면 된다. 저열량의 균협 잡힌 식생활이 중요하다. 고열량 음식은 무엇이든 혈액을 탁하게 하는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을 만들기 때문에 피한다. 하루에 한 번 고등어나 청어 같은 등푸른 생선류를 먹고 끼니마다 녹황색 야채를 섭취하면 혈전억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토마토는 노화된 혈관을 강화시키고 녹차는 혈전 생성을 예방하며,연근은 혈압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두부 등 콩 식품은 동맥경화 예방,청국장은 혈전 용해,호두는 혈행 개선,미역은 혈관 청소 등의 기능을 한다. 불규칙적인 식사와 야식,과식은 불필요한 영양소가 혈액 속으로 들어가 혈액이 탁해지는 원인이 된다. 단 음식은 혈당을 높여 원활한 혈액순환을 방해한다. 케이크,과자,탄산음료,설탕을 많이 탄 커피나 홍차 등을 삼가는 것이 좋다.

하루 한 번 반신욕을 한다. 우선 혈액순환이 촉진된다. 수축된 혈관이 열리면서 혈압도 내려간다. 체내 노폐물 및 독소가 땀과 함께 배출돼 컨디션이 좋아진다. 격한 운동보다는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가볍게 하는 게 혈액순환 개선에 도움이 된다. 유산소운동인 걷기,수영,자전거타기와 아령 · 덤벨 등을 활용한 근력운동을 병행하면 효과적이다. 하루에 20~30분 걷는 것이 좋다. 일주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테니스나 등산 같은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평소 계단오르기를 실천한다.

김종진 교수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심장혈관센터
자기 전과 기상 후 스트레칭을 하면 근육과 관절이 유연해질 뿐만 아니라 혈액순환과 피로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무리하지 말고 단순한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수면,목욕,가족과의 대화,운동,취미생활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가급적 빨리 해소한다.

혈전을 예방하는 저용량 아스피린은 뇌심혈관질환을 예방해주는 약으로 최근 들어 건강한 사람까지 복용하고 있다. 아스피린은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흡연,비만,가족력,운동을 전혀 하지 않음 등으로 심근경색증이 발생할 위험이 높은 45세 이상 남성과 55세 이상의 여성에게 적합하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에게는 권장되지 않으며 고혈압이 있는데 이를 조절하지 않고 아스피린만 복용하면 뇌출혈의 위험이 높아지므로 삼가야 한다.

김종진 교수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심장혈관센터

2009년 10월 9일 금요일

국산 SW 해외선 “즐겁다”

국산 SW 해외선 “즐겁다”
2009-10-09 17:11:02

 
국내 소프트웨어(SW)업계가 개발한 제품이 해외에서 속속 인정받는 개가를 올리고 있어 해외진출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SW업계의 해외진출은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필수조건이란 점에서 관심을 끈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최근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가 수여하는 업무 프로세스 관리(BPM) ‘엑설런스 어워즈’를 수상했다. NCR이 수상한 BPM은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인 핸디소프트가 공급한 솔루션으로 국축된 것이다. 가트너는 “이번 수상은 성공적인 BPM 구축의 훌륭한 사례와 더불어, BPM이 조직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잘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핸디소프트의 BPM은 일본의 히다찌소프트 엔지니어링에도 공급돼 데이터센터 운용 소프트웨어인 ‘굿스태프(GoodStaff)’의 코어 엔진으로 쓰이고 있다.

통합 커뮤니케이션 솔루션(UC)전문기업인 인성정보는 지난 6월 미국 보스톤에서 열렸던 ‘시스코 파트너 서밋 2009’에서 올해의 아태지역 최고 UC 파트너상(Unified Communication Partner of the Year)을 수상한 바 있다. 당시 인성정보는 아태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수상해 기술력과 서비스 능력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수출계약도 이어지고 있다. 한글과컴퓨터는 인도 하이얼텔레콤에 이어 지난 9월 프랑스의 휴대용 디지털기기 제조기업인 아코스(Archos)사에 오피스 SW인 ‘씽크프리 모바일-안드로이드 에디션’을 공급했다.

또 충북 충주성심학교 교사들이 개발한 언어치료 소프트웨어 ‘말친구’는 전세계 110여개 영어권 국가에 보급되게 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에 보급되는 ‘말친구’ 영문판은 MS가 어린이 교육용으로 제공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인 ‘배움의 파트너’(Partners in Learning) 프로그램의 한 분야로 제작됐다. 제작비는 한국MS사가 대고 콘텐츠 개발은 충주성심학교 교사들이 맡았다.

그러나 국내 SW산업은 IT강국이라는 위상과 걸맞지 않게 극도로 침체돼 있는 게 현실. 지난해 우리나라 SW 시장규모는 약 189억 달러로, 세계시장 규모인 9771억달러의 2%수준에도 못미친다. 대부분 중소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는데다 내수 중심으로 발달해 있기 때문이다. 만연해 있는 불법복제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다. 실제 한국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43%나 되며, 업계의 국내 피해액만도 연간 7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소프트웨어세계화위원회(KSGC)는 김영태 위원장은 “2008년의 세계 SW시장 규모는 반도체의 20배, 휴대폰의 5배나 되지만 한국의 시장 점유율은 2%도 안 된다”며 “SW를 수출해서 고급 일자리 창출과 국가 경제 성장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가치 급상승 경기도 광주, ''송정 우림필유'' 주목

1) 경기도 광주 투자가치 급상승

경기도 광주 부동산 시장의 투자가치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우선 수도권 광역교통망 확충에 따른 수혜를 직접적으로 입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선 2011년 개통 예정인 성남~여주 간 복선전철이 성남 판교와 분당 이매동을 거쳐 삼동~광주~곤지암~이천~여주로 이어집니다.


이에 따라 경기도 광주는 사실상 판교와 분당신도시 주거축과 연결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개통되는 성남~장호원간 고속화도로(61.3km) 효과도 클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고속도로는 성남 여수동부터 이천 장호원까지 이어지는데 광주시 태전동과 초월읍, 실촌읍 등을 관통하게 돼 이 지역 교통 편의를 크게 개선시킬 전망입니다.


여기에다 성남, 광주, 하남 등 3개 도시가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하고 있어 광주 지역의 투자가치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2) 경기도 광주 알짜 미분양 '주목'

경기도 광주에 남은 물량 중 우림건설(대표이사 회장 심영섭)이 송정동에서 분양 중인 '우림필유'를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송정 우림필유'는 지하 3층, 지상 15층으로 지어지며 공급면적 기준 109㎡(구 33평형) 250가구, 149㎡(구 45평형) 118가구 등 총 368가구 규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지 남측 경안천을 바라보는 남향 위주의 주거동 배치를 통해 조망권과 일조권을 확보했습니다.


세대내 평면 역시 남향 위주로 계획해 세대내 채광과 통풍을 최적화함으로써 입주자의 주거환경을 향상시켰다는 평가입니다.


신규 계약자에게는 선착순 동호수 지정제 와 중도금 전액 무이자 실시, 발코니 확장 무상 시공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회사 측은 설명합니다.


특히 이번에 구입할 경우 양도세가 5년간 100% 면제, 취등록세가 50% 감면, DTI규제 미적용, 계약즉시 전매가능 등의 정부의 규제완화 혜택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습니다.


단지가 들어서는 송정동 일대는 기존 아파트를 포함해 총 1,300세대 이상의 대단지가 형성돼 있고 단지 인근으로는 광주시 복합행정타운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장기적인 투자가치도 높은 편이라는 평가입니다.


이상엽 우림건설 문화홍보실장은 "송정동 우림필유가 들어서는 송정동 일대는 광주시청사 건립과 복합행정타운 조성으로 향후 광주시 신주거타운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송정동 우림필유는 우림건설의 단지디자인과 평면설계 특화를 통해 광주시의 명성에 걸맞는 최고급 친환경 주거명작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입주시기는 2010년 5월 예정입니다.


분양문의 031-798-8543

WOW부동산 realestate@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