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오케이아웃도어 닷컴 장성덕 대표 “뛰면서 걸으면서 항상 생각한다”

오케이아웃도어 닷컴 장성덕 대표 “뛰면서 걸으면서 항상 생각한다”
  • 국내 아웃도어용품 유통시장에 신흥강자가 급부상하고 있다. 주인공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아웃도어용품을 유통하고 있는 오케이아웃도어닷컴(대표 장성덕)이다. 이곳은 최근 레저용품 분야의 인터넷쇼핑몰을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의 저력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뛰면서, 걸으면서 생각한다.”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을 이끌고 있는 장성덕 대표의 좌우명이다. 항상 생각하고 곧 바로 행동에 옮긴다는 의미다.

    장성덕 대표는 일본에서 예술대학(방송학과)을 졸업하고 삼성물산에서 해외 비서 파트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2000년 자본금 4000만 원으로 등산정보 사이트 ‘오케이마운틴’과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을 열었다. 등산 마니아에 스키, 마라톤은 수준급. 철인 3종 경기까지 참가하는 만능 스포츠맨의 발상다웠다.

    그런데 당시 레저용품 전문몰과는 달랐다. “돈 벌려고 한 게 아니었다”는 그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은 오픈 10년을 맞는 내년에는 매출액 1000억 원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해버렸다.

    그 이유에 대해 장성덕(43) 오케이아웃도어닷컴 대표는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의 성공비결은 바로 ‘직사입’ 노하우와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발상도 획기적이다.어떤 것이든 시스템화하면 곧 돈이 되더라”고 말한다.

    협력업체들은 ‘즉시 결제 시스템’을 통해 아우르고 있다. 자금 회전에 목말라 있는 제조업체에 즉시 결제는 단비와도 같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특히 자체 개발한 재고관리 시스템은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인터넷만 연결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온·오프라인상의 4만여 종류(컬러 사이즈 포함) 제품의 위치, 흐름, 재고 현황까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직사입을 하려다 보니 제작 원가를 알아야 했고 결국 이제는 ‘락마스터’ ‘바디핏’이라는 자체 의류브랜드도 생산하는 경지에 올랐다.

    장대표는 재고를 맞추기 위해 프로그램만 1000번 이상 뜯어고쳤다. 지금은 웹상에서 직원들의 출·퇴근은 물론 외근현황 및 월급까지도 웹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일찌감치 유비쿼터스 쇼핑몰 회사를 실현한 셈이다.

    그의 경영 노하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것을 시스템으로 승부하고 그외에는 관리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 비결이다.

    하지만, 그에게 전혀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크게 매장을 내려고 동대문 운동장 지하 1층을 빌렸을 때 경쟁브랜드가 많이 생기면서 제품 판매량이 급작스럽게 주춤하면서 출혈이 심했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가에게 두 번 이상 반복하는 실수는 죄악이라는 생각’으로 피나는 노력끝에 위기를 극복했다. 이제는 전화위복으로 그 매장에서만 매출이 100억 원 가까이 나온다.

    그는 내년에는 G마켓 11번가와 같은 형태의 아웃도어 전문 오픈마켓을 열 계획이다. 물론 수수료를 완전무료하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대결구도를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의 파격 행보는 ‘아웃도어 시장의 블랙홀’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게 장대표의 생각이다. 아직도 아웃도어 시장은 무한한 성장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장 대표는 아웃도어가 패션의 시작이자 근본이라고 말한다. 그는 "유통시장에서 백화점, 할인점, 오픈마켓, 멀티숍으로 나눌 때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이라는 채널을 새롭게 자리매김해 국내 최대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핵심역량을 열어놓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스포츠월드 글·류근원 기자 사진·김두홍 기자

2009년 11월 16일 월요일

재미갑부 황규빈 '도전 인생'

재미갑부 황규빈 '도전 인생'
[Who] 한국 벤처社 '젤라인' 인수한 美텔레비디오 황 회장, 이젠 고국서 'PLC 신화' 쏜다
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911/h2009111602322821540.htm

이노패스트 [1] 네오세미테크

태양광 막히면 LED로 뚫는다
그린에너지‘투톱 기술’ 경쟁사 압도

“2011년 매출은 적게 잡아도 1조원은 넘을 겁니다.” 인천에 본사를 둔 네오세미테크의 오명환(50·사진) 사장이 내놓은 2년 후의 매출 전망치다. 그런데 올해 이 회사의 매출액 예상치는 2500억원. 불과 2년 만에 매출을 네 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거다. 당장 내년 경기가 어찌 될지도 모르는 판에.

“매출 1조원, 절대 허풍이 아닙니다.”

그가 과거 자료를 내민다. 2002년 이후 2007년까지 이 회사의 매출은 100억~300억원대였다. 그러나 지난해엔 1032억원으로 전년(314억원)의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이게 올해는 지난해의 2.5배로 뛰었다. 이런 추세라면 향후 2년간 두 배씩 성장해 1조원 매출도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물론 그의 전망은 그렇게 단순한 어림셈에서 나온 게 아니다. 기술과 가격 경쟁력이 그의 자신감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린 에너지 열풍이 불면서 각광받고 있는 산업이 태양광 발전과 발광다이오드(LED) 분야입니다. 남들은 하나를 잘하기도 어렵지만, 우리는 두 분야에서 핵심기술을 가지고 있지요.”

이 회사는 태양전지와 LED의 재료로 사용되는 반도체 잉곳(덩어리) 전문 제조업체다. 오 사장은 “LED용과 태양전지용 반도체를 모두 생산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태양광용 실리콘반도체다. 매출의 80%가 여기서 나온다. 문제는 기술장벽이 그리 높지 않은 품목이라는 거다. 경쟁이 치열해져 금세 ‘레드오션’이 될 위험이 있다. 태양전지 시장의 과잉 공급이나 각국의 정책 변경 등으로 비틀거릴 수도 있다.

그래도 오 사장은 걱정하지 않는다. 태양광용 반도체 잉곳의 매출이 주춤하면, 즉각 LED용 반도체로 방향을 틀 수 있기 때문이다. 네오세미테크는 최근 대만의 두 개 회사에 LED용 반도체 웨이퍼 1억6400만 달러(약 1900억원)어치를 3년간 공급하기로 하는 등 공급 계약을 잇따라 맺었다. 또 언제라도 양산에 돌입할 준비가 된 첨단 반도체 잉곳 기술도 여럿 보유하고 있다. 하나가 막히더라도 제2, 제3의 동력이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

네오세미테크가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은 압도적인 수익력이다. 오 사장은 “우리 제품의 생산단가는 경쟁사보다 30~60%가량 낮다”며 “세계적인 불경기 속에서도 내년에 4, 5공장을 짓는 건 품질과 가격 경쟁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가격 경쟁력의 비밀은 이 회사가 2002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연속공정법’이란 기술에 있다. 1300도의 고온에서 연속적으로 반도체 잉곳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잉곳 한 개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이 300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됐다.

시간은 효율로, 효율은 곧 수익으로 이어졌다. 네오세미테크의 영업이익률(매출 대비 영업이익의 비율)은 지난해 35%. 즉 1000원어치를 팔아 350원을 남겼다는 얘기다. 지난해 12월 결산 국내 563개 상장사가 평균해 1000원어치를 팔아 38.7원을 남긴 것에 비하면 노다지를 캐고 있는 셈이다.

2000년 창업 후 2년도 안 돼 이런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결정적인 것은 역시 오 사장의 전문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1984년부터 LG전선(현 LS전선)에서 10여 년간 갈륨비소 연구에 매달렸다. 2000여 편의 해외논문을 독파했고, 갈륨비소로 박사논문도 썼다.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 업체들과 상담하느라 수시로 일본을 드나들었다. 지금도 도쿄 시내의 지리를 훤히 꿴다. 그러나 회사가 갈륨비소 연구를 중단하자 그는 독립했다.

“창업 후 처음엔 반도체용 장비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걸로도 벌이가 쏠쏠했지만 갈륨비소 반도체 개발에 대한 아쉬움을 늘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갈륨비소는 초기 자금만 100억원 넘게 드는 까닭에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런데 벤처 붐 영향으로 투자자가 나서면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고, 결국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게 됐습니다.”

갈륨비소 반도체를 팔아 첫해부터 이익을 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회사를 한 단계 상승시키기 어려웠다. 이미 해외 선발 회사들이 자리 잡고 있는 상태였고, 추가 연구엔 끊임없이 거액이 필요했다.

그러다 2005년 네오세미테크의 갈륨비소 제조 기술을 잘 알고 있는 한 해외업체가 “태양광 실리콘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제안해왔다. 오 사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적시에 투자와 개발을 했고, 이를 통해 1000억원 매출을 돌파할 수 있었다. 회사의 외형이 어느 정도 커지면서 안정적으로 신기술을 축적할 여력도 생긴 것이다.

그럼 세계시장에 네오세미테크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오 사장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 태양광·LED용 반도체에서 기술독립을 선언할 정도가 됐을 뿐”이란다. 태양광 반도체의 경우 해외업체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이 대부분이다. 또 갈륨비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아직 5%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세계 시장 점유율 10%만 넘기면 그때부터 절반으로 끌어올리는 건 쉽다”며 “한국이 화합물 반도체의 강자로 부상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런 점은 보완하세요

창업자 한 사람 기술에 의존
회사 커지면 집단 역량 중요


네오세미테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가 회사를 창업했다. 그 때문에 최소한 생산기술 분야에서는 단기간에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갈륨비소 반도체에서 실리콘으로 제품 라인을 확장하면서 창업자의 기술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창업자는 원재료의 구매-가공-기술-설비에 이르는 가치사슬의 전 분야를 통달하고 있었기에, 경쟁자보다 원가 경쟁력에서 앞설 수 있었다.

그러나 매출이 커지면서 관련 기술의 범위가 넓어지고 경쟁구도가 확장되면 창업자 한 사람의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이제는 기술역량을 집단화해야 할 시점이다. 미래가 기술에 달려 있는 회사에서 핵심 기술인력 그룹의 형성은 백년기업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네오세미테크 경쟁력의 원천은 원가 우위에서 나온다. 갈륨비소-실리콘 가공 과정에서 원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신공법인 연속성장법과 관련한 특허 80여 개는 핵심 생존기반이다. 앞으로 상당기간 회사는 신공법 특허가 가져오는 ‘원가 우위’라는 열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기술환경 속에서 신공법의 우위는 영속적일 수 없다. 일본은 40년을 앞서 기술과 특허를 축적해 왔고, 전열을 가다듬어 판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경쟁 우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특허전략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 즉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창업자가 조직을 다스리는 철학이다. 철저히 믿고 맡기면서 쓰라린 배신을 당한 적도 있지만 결국 사람에 대한 신뢰는 회사의 성장으로 보답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과거 중소기업 시절에는 창업자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규모가 커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사람을 믿고 맡기는 문화는 바람직하지만, 믿고 맡기면서 통제·평가하는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회사는 예기치 않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현시점에서 단기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재무기능의 강화다. 주식시장 상장은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훨씬 넓어짐을 의미한다. 최고재무관리자(CFO)의 역할과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시스템으로 구현해 재무상태를 경영진과 주주가 적시에, 투명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무기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장회사는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

갈륨비소라는 물질에 인생을 걸었던 창업자의 열정이야말로 네오세미테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이를 기업의 DNA로 만들어 조직에 체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기업문화 형성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창업자의 철학과 열정을 직원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설계하고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파해야 한다. 이를 통해 창업자의 열정을 회사 전체가 공유하고 조직의 기업문화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부사장

특별취재팀=금융증권팀 김준현 차장, 김원배·김영훈·조민근·박현영·한애란 기자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남산 반얀트리 서울` 점검차 방한 호권핑 회장

1984년 태국 푸껫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주석 광산터였다 버려진 이곳은 땅과 물이 오염돼 심각한 불모지로 전락했고, 주민들 역시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이때 호권핑 반얀트리 회장은 푸껫의 잠재력을 미리 읽었다. 폐광산촌이었지만 조금만 가꾼다면 더 아름다운 곳으로 꾸밀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문화라는 코드를 입힌다면 세계적인 리조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헐값에 용지를 매입한 그는 이곳에 물을 끌어들여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호수와 해변을 따라 리조트를 지어 나갔다. 죽은 땅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덤프트럭만 수백 대. 야자수와 보리수 등 각종 나무도 옮겨 심어 남국의 싱그러운 정취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인테리어에는 태국 전통 문화를 담아냈다.

10년여에 걸쳐 2억달러를 투자한 그는 1994년 드디어 `라구나 푸껫`이라는 세계적인 복합 리조트 시설을 탄생시킨다. 이것이 바로 `반얀트리 신화`의 시작이었다.

푸껫에서 성공한 이후, 그는 몰디브, 빈탄 등지에서 잇달아 리조트를 열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제 서울의 허파 남산에 새로운 `도심형 리조트`의 모델을 세계 곳곳에 있는 `반얀트리 마니아`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반얀트리 클럽&스파 서울의 `목업 룸 테스트(Mock-up Testㆍ건축 용어, 건물의 최종적 모형 점검)`를 위해 최근 방한한 호권핑 회장이 지난 6일 서울 청담동 반얀트리 홍보관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로 만났다.

"저는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기자와 만난 그는 대뜸 이 말을 건넸다. 글로벌 리조트 그룹을 이끌고 있는 데다 유명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에서 `경영 혁신 사례`로 꼽힌 경영인이기도 한 그의 첫마디로는 다소 의외였다.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경영인으로 꼽히는 그가 자신을 비즈니스맨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게 무슨 뜻일까.

"만약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했다면 반얀트리가 세계적인 리조트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전파한다고 생각하며 경영에 임하고 있죠."

인터뷰 내내 호권핑 회장은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그의 스마트폰은 5분마다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하루에 이메일이 200개가 넘게 들어옵니다. 세계 곳곳에서 메일이 도착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과 메일로나마 만나는 것이 즐겁습니다.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겠죠."

호권핑 회장은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 하더라도 보고 메일을 받으면 언제나 고맙다는 답장을 일일이 보내곤 한다.그를 맞이한 반얀트리 서울 직원의 귀띔이다.

◆ `굿 타임 이즈 커밍`

= 리조트 기업인 반얀트리는 세계 32개국에서 호텔ㆍ리조트 25개, 스파 68개, 갤러리 65개와 골프클럽 2개를 운영 중이다. 그의 성공 신화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 일궈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에게 지난해부터 찾아온 경기 침체가 리조트 산업에도 영향을 줬는지를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예스`라고 답했다. 여행객이 줄어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고 리조트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어려움`은 읽을 수 없었다. 어차피 위기란 늘 있어왔기 때문에 그는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리조트ㆍ호텔 산업에는 거의 해마다 위기가 찾아옵니다. 언제나 위기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해요. 이번에는 금융위기지만 사스(SARS), 조류인플루엔자(AI), 쓰나미 같은 위기가 거의 연례 행사처럼 찾아왔습니다. 대부분 위기는 피할 수가 없죠. 다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호권핑 회장은 "굿 타임 이즈 커밍(Good time is coming)"이라는 말을 거듭했다. 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 곧 좋은 때가 온다는 것이다. 언제나 좋은 때가 올 것을 준비해야 위기를 더 빨리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위기 극복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인재 관리`를 꼽았다. 실제 그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 단 한 차례도 감원을 했던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급여를 일부 깎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감원은 하지 않는다.

푸껫에 쓰나미가 몰려왔던 2004년은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당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아수라장이 됐던 푸껫은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적막감이 감돌았다. 리조트 사업 자체의 존폐가 갈릴 정도로 투숙객도 급감했다. 직원들도 동요가 심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단 한 명의 감원도 없었다. 대신 그는 직원을 위한 교육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어렵사리 확보한 좋은 인재를 위기 때 놓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들을 놓치면 다가올 좋은 시기에 본격적인 사업을 준비할 수 없죠. 많은 경영자들이 직원을 `비용(Cost)`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조업의 시각이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같은 서비스업에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것이 바로 인재, 사람입니다. 좋은 때는 반드시 옵니다."

◆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반얀트리 서울

= 반얀트리 서울은 옛 타워호텔 용지에 7만㎡ 규모로 들어선다. 호텔 객실은 50여 개에 불과하지만 모든 객실이 특1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꾸며진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클럽의 회원권은 1억원을 넘지만 문도 열기 전에 이미 2600명이 가입했다. 국내에도 경기 불황의 그늘이 채 걷히지 않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60% 정도의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 보통 호텔 피트니스클럽의 오픈 전 가입률이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이다.

호권핑 회장은 이를 `펜트업 디맨드(Pent-Up Demandㆍ억눌린 수요)`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경기 침체로 회원 모집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반얀트리 같은 `소셜 클럽` 성격의 리조트가 없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 커뮤니티를 이루는 것은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하죠. 한국 고객들이 이런 시설을 기다려왔기 때문에 예상보다 가입률이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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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얀트리 서울은 반얀트리로서는 이례적으로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이를 `어번 리조트(Urban Resort)`라고 이름 붙였다. 반얀트리는 해변가나 휴양지에 들어서곤 했지만 이 같은 도심형 리조트의 사례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휴양지 리조트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카오, 상하이, 런던 등에 들어서는 시티 호텔이 많이 늘 겁니다. 이 같은 모델은 이번에 들어서는 서울이 첫 사례입니다. 이번 오픈은 반얀트리 입장에서는 매우 상징적인 일입니다."

그는 서울에서도 특히 남산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세계 어느 도시를 찾아 봐도 서울 남산처럼 도심 한가운데에 자연 생태구역으로 보존돼 있는 산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지만 남산은 그와 비교가 되지 않는 생태 자원이다. 이 같은 자연환경 속에 리조트가 들어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남산은 서울이 갖고 있는 세계적인 강점입니다. 남산에서는 사계절을 모두 만날 수 있지만 서울 도심에서 30분 안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교통도 편리합니다. 반얀트리 서울은 천혜의 환경 속에서 세계 최고 리조트로 꾸며질 것이기 때문에 서울시민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세계 곳곳의 반얀트리 마니아들이 이곳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호권핑 회장은 5억명에 달하는 동남아시아 인구의 대부분이 일생 동안 눈을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곧 관광자원이라는 것이다. 또 지방으로 갈 때도 3~4시간이면 방문할 수 있어 이것 역시 장점이다.

"한국은 지나치게 제조업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관광산업에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잘 활용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반얀트리는 서울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리조트를 개발할 의향이 있습니다. 아직 고려 단계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문화`를 콘텐츠로 한 리조트가 될 것입니다."

■ 존경하는 인물 누구냐? 묻자 주저없이 "혁명가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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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인물이 누군지 묻자 호권핑 회장은 주저 없이 혁명가인 체 게바라를 꼽았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당시 억눌려 있던 남미 대륙의 약자들을 위해 혁명에 나섰던 인물이다. 쿠바에 공산정권을 세운 뒤 공직을 맡았지만 다시 볼리비아 게릴라전에 투입됐다가 사살됐다. 폐허였던 푸껫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시켰고, 그 혜택을 지역민들이 고스란히 보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다른 의미의 `혁명가`라고도 볼 수 있겠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희는 버는 돈을 대부분 지역사회에 재투자하지요. 요즘 똑똑한 사람들은 너무 자신만을 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환원할 수 있어야 하죠. 월가 금융사 CEO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호권핑 회장은 싱가포르에서 방송국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부인은 한국 드라마의 열혈 팬이라고 한다. 특히 `대장금`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계속 시청해 왔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 대해 묻자 그는 기자에게 "남자들이 보기엔 한국 드라마가 어떠세요?"하고 반문했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그는 말을 이었다.

"한국 드라마는 여성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방송국에서도 한국처럼 드라마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하고 있죠. 그런데 솔직히 대부분 남성들이 멋있게 묘사되고 거의 사랑 이야기인 것 같아요. 조금 다른 각도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최근 한류 현상은 저희로서도 많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 He is…

△1952년 홍콩 출생 △대만 둥하이대,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기자 △1981년 반얀트리 경영 시작 △2005년 런던비즈니스스쿨 기업인상 수상 △현 반얀트리 홀딩스 회장, 싱가포르미디어 회장, 싱가포르대 총장, 인시아드 국제회의 멤버

[최승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