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남산 반얀트리 서울` 점검차 방한 호권핑 회장

1984년 태국 푸껫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주석 광산터였다 버려진 이곳은 땅과 물이 오염돼 심각한 불모지로 전락했고, 주민들 역시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이때 호권핑 반얀트리 회장은 푸껫의 잠재력을 미리 읽었다. 폐광산촌이었지만 조금만 가꾼다면 더 아름다운 곳으로 꾸밀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문화라는 코드를 입힌다면 세계적인 리조트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헐값에 용지를 매입한 그는 이곳에 물을 끌어들여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호수와 해변을 따라 리조트를 지어 나갔다. 죽은 땅을 살리기 위해 투입된 덤프트럭만 수백 대. 야자수와 보리수 등 각종 나무도 옮겨 심어 남국의 싱그러운 정취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인테리어에는 태국 전통 문화를 담아냈다.

10년여에 걸쳐 2억달러를 투자한 그는 1994년 드디어 `라구나 푸껫`이라는 세계적인 복합 리조트 시설을 탄생시킨다. 이것이 바로 `반얀트리 신화`의 시작이었다.

푸껫에서 성공한 이후, 그는 몰디브, 빈탄 등지에서 잇달아 리조트를 열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제 서울의 허파 남산에 새로운 `도심형 리조트`의 모델을 세계 곳곳에 있는 `반얀트리 마니아`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반얀트리 클럽&스파 서울의 `목업 룸 테스트(Mock-up Testㆍ건축 용어, 건물의 최종적 모형 점검)`를 위해 최근 방한한 호권핑 회장이 지난 6일 서울 청담동 반얀트리 홍보관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로 만났다.

"저는 비즈니스맨이 아니라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기자와 만난 그는 대뜸 이 말을 건넸다. 글로벌 리조트 그룹을 이끌고 있는 데다 유명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에서 `경영 혁신 사례`로 꼽힌 경영인이기도 한 그의 첫마디로는 다소 의외였다.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경영인으로 꼽히는 그가 자신을 비즈니스맨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게 무슨 뜻일까.

"만약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했다면 반얀트리가 세계적인 리조트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전파한다고 생각하며 경영에 임하고 있죠."

인터뷰 내내 호권핑 회장은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다. 그의 스마트폰은 5분마다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하루에 이메일이 200개가 넘게 들어옵니다. 세계 곳곳에서 메일이 도착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과 메일로나마 만나는 것이 즐겁습니다.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면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겠죠."

호권핑 회장은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 하더라도 보고 메일을 받으면 언제나 고맙다는 답장을 일일이 보내곤 한다.그를 맞이한 반얀트리 서울 직원의 귀띔이다.

◆ `굿 타임 이즈 커밍`

= 리조트 기업인 반얀트리는 세계 32개국에서 호텔ㆍ리조트 25개, 스파 68개, 갤러리 65개와 골프클럽 2개를 운영 중이다. 그의 성공 신화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 일궈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에게 지난해부터 찾아온 경기 침체가 리조트 산업에도 영향을 줬는지를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예스`라고 답했다. 여행객이 줄어 매출에도 영향을 미쳤고 리조트 관리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어려움`은 읽을 수 없었다. 어차피 위기란 늘 있어왔기 때문에 그는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리조트ㆍ호텔 산업에는 거의 해마다 위기가 찾아옵니다. 언제나 위기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해요. 이번에는 금융위기지만 사스(SARS), 조류인플루엔자(AI), 쓰나미 같은 위기가 거의 연례 행사처럼 찾아왔습니다. 대부분 위기는 피할 수가 없죠. 다만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호권핑 회장은 "굿 타임 이즈 커밍(Good time is coming)"이라는 말을 거듭했다. 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고, 곧 좋은 때가 온다는 것이다. 언제나 좋은 때가 올 것을 준비해야 위기를 더 빨리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는 위기 극복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인재 관리`를 꼽았다. 실제 그는 수많은 위기 속에서 단 한 차례도 감원을 했던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급여를 일부 깎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감원은 하지 않는다.

푸껫에 쓰나미가 몰려왔던 2004년은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당시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아수라장이 됐던 푸껫은 마치 `유령의 도시`처럼 적막감이 감돌았다. 리조트 사업 자체의 존폐가 갈릴 정도로 투숙객도 급감했다. 직원들도 동요가 심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단 한 명의 감원도 없었다. 대신 그는 직원을 위한 교육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어렵사리 확보한 좋은 인재를 위기 때 놓치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들을 놓치면 다가올 좋은 시기에 본격적인 사업을 준비할 수 없죠. 많은 경영자들이 직원을 `비용(Cost)`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조업의 시각이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같은 서비스업에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것이 바로 인재, 사람입니다. 좋은 때는 반드시 옵니다."

◆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반얀트리 서울

= 반얀트리 서울은 옛 타워호텔 용지에 7만㎡ 규모로 들어선다. 호텔 객실은 50여 개에 불과하지만 모든 객실이 특1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꾸며진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클럽의 회원권은 1억원을 넘지만 문도 열기 전에 이미 2600명이 가입했다. 국내에도 경기 불황의 그늘이 채 걷히지 않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60% 정도의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 보통 호텔 피트니스클럽의 오픈 전 가입률이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이다.

호권핑 회장은 이를 `펜트업 디맨드(Pent-Up Demandㆍ억눌린 수요)`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경기 침체로 회원 모집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반얀트리 같은 `소셜 클럽` 성격의 리조트가 없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족과 함께 휴식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 커뮤니티를 이루는 것은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하죠. 한국 고객들이 이런 시설을 기다려왔기 때문에 예상보다 가입률이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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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얀트리 서울은 반얀트리로서는 이례적으로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이를 `어번 리조트(Urban Resort)`라고 이름 붙였다. 반얀트리는 해변가나 휴양지에 들어서곤 했지만 이 같은 도심형 리조트의 사례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휴양지 리조트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마카오, 상하이, 런던 등에 들어서는 시티 호텔이 많이 늘 겁니다. 이 같은 모델은 이번에 들어서는 서울이 첫 사례입니다. 이번 오픈은 반얀트리 입장에서는 매우 상징적인 일입니다."

그는 서울에서도 특히 남산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세계 어느 도시를 찾아 봐도 서울 남산처럼 도심 한가운데에 자연 생태구역으로 보존돼 있는 산은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지만 남산은 그와 비교가 되지 않는 생태 자원이다. 이 같은 자연환경 속에 리조트가 들어서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남산은 서울이 갖고 있는 세계적인 강점입니다. 남산에서는 사계절을 모두 만날 수 있지만 서울 도심에서 30분 안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교통도 편리합니다. 반얀트리 서울은 천혜의 환경 속에서 세계 최고 리조트로 꾸며질 것이기 때문에 서울시민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입니다. 세계 곳곳의 반얀트리 마니아들이 이곳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호권핑 회장은 5억명에 달하는 동남아시아 인구의 대부분이 일생 동안 눈을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곧 관광자원이라는 것이다. 또 지방으로 갈 때도 3~4시간이면 방문할 수 있어 이것 역시 장점이다.

"한국은 지나치게 제조업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관광산업에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잘 활용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반얀트리는 서울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리조트를 개발할 의향이 있습니다. 아직 고려 단계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문화`를 콘텐츠로 한 리조트가 될 것입니다."

■ 존경하는 인물 누구냐? 묻자 주저없이 "혁명가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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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인물이 누군지 묻자 호권핑 회장은 주저 없이 혁명가인 체 게바라를 꼽았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는 당시 억눌려 있던 남미 대륙의 약자들을 위해 혁명에 나섰던 인물이다. 쿠바에 공산정권을 세운 뒤 공직을 맡았지만 다시 볼리비아 게릴라전에 투입됐다가 사살됐다. 폐허였던 푸껫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시켰고, 그 혜택을 지역민들이 고스란히 보게 했다는 점에서 그는 다른 의미의 `혁명가`라고도 볼 수 있겠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희는 버는 돈을 대부분 지역사회에 재투자하지요. 요즘 똑똑한 사람들은 너무 자신만을 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환원할 수 있어야 하죠. 월가 금융사 CEO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호권핑 회장은 싱가포르에서 방송국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부인은 한국 드라마의 열혈 팬이라고 한다. 특히 `대장금`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계속 시청해 왔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에 대해 묻자 그는 기자에게 "남자들이 보기엔 한국 드라마가 어떠세요?"하고 반문했다. 기자가 머뭇거리자 그는 말을 이었다.

"한국 드라마는 여성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방송국에서도 한국처럼 드라마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하고 있죠. 그런데 솔직히 대부분 남성들이 멋있게 묘사되고 거의 사랑 이야기인 것 같아요. 조금 다른 각도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최근 한류 현상은 저희로서도 많은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 He is…

△1952년 홍콩 출생 △대만 둥하이대,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기자 △1981년 반얀트리 경영 시작 △2005년 런던비즈니스스쿨 기업인상 수상 △현 반얀트리 홀딩스 회장, 싱가포르미디어 회장, 싱가포르대 총장, 인시아드 국제회의 멤버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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