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5일 목요일

지상욱 대변인은


“아내 심은하의 뽀뽀가 가장 큰 후원이죠”

자유선진당 대변인 지상욱(45)씨가 6월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된다. 여배우 심은하씨의 남편이자 이회창 선진당 대표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 젊은 정치인은 누구인가? 심은하 이회창에 가려진 정치인 지상욱의 민얼굴을 보기 위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선진당 대변인실을 찾았다.

-2003년 3월 만 38세의 젊은 연구원이 직장도 그만두고 이회창 대표를 모시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 대표 곁에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째로 낙선했고, 어쩌면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볼 수 있었던 이 대표를 왜 돕기로 한 겁니까?

“지인이 총재님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당시 총재님 주변에는 남아 있는 사람이 없었죠. 염량세태(炎凉世態)라고 하나요? 그래서 제가 총재님을 찾아가 도와드리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제가 유능해서가 아니라 정치권에 몸담지 않아 비교적 순수했고,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그분이 미국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이 대표가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2003년 3월부터 8개월간 미국 스탠퍼드대에 머무는 동안 지 대변인은 내내 옆에서 보좌했다)

선진당은 지난 17일 총재직을 폐지하고 대표체제로 전환했다. 그런데도 지 대변인은 이 대표를 계속 “총재님”이라고 불렀다.

-이 대표와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나요?

“총재님은 그때 처음 뵈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총재님을 존경했어요. 그분이 은퇴 회견하는 걸 TV로 보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원칙주의, 대쪽정신, 보수주의 등 그분이 대표했던 가치가 있는데 저렇게 사라지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분을 도와 올바른 사회와 국가를 만드는 데 나의 몇 년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그럼 처음엔 정치를 하겠다고 이 대표 곁으로 간 건 아니네요?

“그럼요.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해서 20년 넘게 공학을 공부한 사람이 정치에 무슨 뜻이 있었겠어요? 그분을 좋아했기 때문에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간 거예요. 회사(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얘기했더니 많이 놀랐어요. 2008년 1월 선진당 창당 작업에 들어갔을 때에야 ‘아, 내가 이제 정치에 들어가는 구나’ 그런 마음이 들더군요.”(지 대변인은 초대 대변인을 맡았다)

-2008년 4월 제18대 총선에서 선진당은 비례대표 4명을 포함해 18명을 당선시켰습니다. 지 대변인은 당시 비례대표 신청도 안 했는데.

“한 달 만에 당을 만들어 총재님이 어려웠던 시기죠. 저희는 측근그룹이잖아요? 측근을 챙긴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 저희도 처신하기 어려웠죠. 나까지 부담 드릴 수 있나요. 그래서 비례대표 신청을 안 한 거예요. 저라고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어요? 여의도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의원직이 있어야 되잖아요? 운전을 하기 위한 면허증 같은 거.”

-그때 이 대표를 떠날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의리도 지켰고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너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지금 정부 쪽에 와서 일하면 어떻겠느냐, 청와대 관계자한테 이런 제안도 받았어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렇게 할 순 없다고 했죠. 총선이 끝나고 총재님께 좀 쉬겠다고 말씀드렸어요. 한 1년간 가족과 시간을 보냈죠. (2009년 8월 이 총재와 갈등을 겪은) 심대평 대표가 떠나고 당이 어려워지는 걸 보면서 총재님이 힘들어하시겠구나, 그래서 지난해 10월 총재 공보특보로 복귀한 거예요.”

-군인 출신으로 중소기업을 경영하시는 보수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떻게 심은하(38)씨를 만났습니까?

“(2004년 12월) 누가 소개를 해서 처음 봤습니다. 당시엔 결혼 생각은 없었던 때였어요. 그 친구도 조용히 지낼 때고. 그렇게 만났는데 제가 좋아하게 된 거죠.”

-어떻게 마음을 얻었습니까?

“2005년 5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로 1주일간 출장을 갔어요. 저 친구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매일매일 카드를 쓴 거예요. 학교 북스토어에 가서 카드를 하나 사서 쓰고 싶은 말을 적고 선물도 하나씩 샀어요. 어떤 날은 초콜릿을, 어떤 날은 화장품을 사고. 그렇게 7개의 카드와 선물을 준비했죠. 그걸 서울로 가져와서 줬어요. 그때 감동하더라고요. 선물 자체는 별거 아니지만 매일매일 자기를 생각했던 마음, 그거에 집사람이 마음을 확 열었어요.”(두 사람은 그해 10월 결혼에 골인한다)

-집에서는 반대하지 않았나요?

“처음엔 우려하셨죠. 그런데 만나 보시더니 착하다, 순수하다, 그러시면서 쉽게 승낙해 주셨어요. 아버지가 굉장히 철저하신 편인데 며느리 작품을 봐야겠다며 동네 비디오 가게에 가서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인터뷰’ 그리고 드라마 ‘청춘의 덫’까지 죄다 빌려 보셨어요. 지금은 며느리 일이라면 끔찍이 생각하세요.”

-결혼 전에 심씨에게 앞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말을 했습니까?

“얘기했죠. 걱정하고 반대했어요. 이젠 결혼생활 5년 됐는데, 그동안 남편이 일하는 거 보면서 그래도 신념이 있고 올곧은 사람이라고 봐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정말 제대로 정치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어요.”

-부인께서 남편을 지지하고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표현합니까?

“오늘 아침 7시50분쯤 집에서 나왔는데 뽀뽀를 해주더라고요. 사실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는 편이에요. 손을 꼭 잡아준다든지 그러면 제가 느끼죠. 밖에 있을 때 문자를 넣어주기도 해요. 당신 밖에서 힘들겠지만 나하고 우리 애들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고 오라고. 그런 게 가장 큰 후원이에요.”

-그간 가정의 위기는 없었나요. 부부싸움이나 갈등은 어떻게 해소합니까?

“특별한 위기는 없었어요. 같은 신앙을 가지고 함께 성경 공부하고 기도하고 그러면서 살아왔으니까요. 보육 문제 가지고 이견이 있어 가끔 티격태격할 때가 있긴 해요.”

-심씨의 연예계 복귀도 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 한 사람의 안사람, 또 두 딸의 엄마로 정말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애들이 지금 네 살, 다섯 살인데, 만으로 하면 겨우 두 살, 세 살이에요. 애들이 지금 엄마의 손을 가장 그리워할 때죠.”

부부는 지난해 방송통신대학에 나란히 입학했다. 부인은 문화교양학과, 남편은 법학과 공부를 하고 있다. 지 대변인은 아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학업에 열심이라고 전했다.

-정치인으로서 목표가 뭡니까?

“뭐가 되겠다는 목표보다는 책임을 지는 정치, 그런 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임을 지는 정치라는 게 어떤 겁니까?

“약속을 안 지키는 무책임, 아닌 것을 그런 것처럼 말해서 혹세무민하는 무책임, 뒷일 감당하지 않고 그냥 벌여놓는 무책임, 그런 무책임들이 우리 정치에 팽배하다고 봅니다. 세종시도 그렇고 4대강도 그래요. 세종시 문제의 출발은 정치권의 무책임이죠. 원안을 뒤집으면서도 아무도 책임 지지 않잖아요. 4대강도 후손을 위해 순수하게 한다고 하면, 외국처럼 철저하게 해야죠. 기획, 타당성 조사, 환경생태평가, 그리고 지역주민들 대책 세우고 대국민 설득을 하는데 적어도 5∼6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단계적으로 예산을 쪼개서 15∼20년 걸려 해야 되는 거죠. 강은 한번 훼손되면 바꾸기 어려운 건데 임기 내 정치 목적으로 써먹고 말 문제가 아니에요.”

-지난달 대변인을 다시 맡아 최근 정력적으로 논평을 내고 있습니다. 근래 개인적으로 가장 격분해서 발표한 논평은 뭡니까?

“격분했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사망 사건 같은 건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죠. 이 사회가 왜 자꾸 이렇게 돼 가는지 화도 나고. 무형의 가치, 그러니까 권위라든지 법치라든지 공권력이라든지 신뢰라든지, 그런 게 많이 파괴돼서 이렇게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시장 출마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출마합니까?

“아직 고민의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거 같아요. 워낙 큰 선거니까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 거고. 당 안팎에서 제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어요. 제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언젠가는 결정을 해야겠죠.”

지상욱 대변인은

1965년 서울 출생.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토목공학 석사, 일본 도쿄대에서 건설관리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8년 귀국해 연세대에서 강의를 했고, 99년 6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입사, 4년간 연구원 생활을 했다. 2005년 10월 심은하씨와 결혼, 딸 둘을 두었다. 한성실업 창업자 지성한 회장의 아들로 현재 이 회사 부사장이기도 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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