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림의 300mm 인터뷰' 세 번째 손님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한 눈에 봐도 명석한 두뇌에 매력있는 이 분을 만나는 일은 생각 만큼 쉽지 않았다. 홍보 담당관과 비서실을 통해 몇 차례 약속을 잡고 인터뷰 컨셉트에 대한 상세한 개요도 미리 전달했다. 지난 달 28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서울시청 별관 시장실에서 만난 오 시장은 밝은 미소에 따뜻한 손으로 악수하며 나를 맞았다.
인터뷰가 이뤄진 시장실 내부 분위기도 이색적이었다. 보통 인터뷰는 인터뷰 상대와 단둘이 있거나 혹은 매니저 1명 정도만 옆에 앉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 인터뷰 때는 접견실 벽쪽 의자에 서울시청 관계국장과 팀장 7명이 앉아 인터뷰를 지켜봤다. 양복입은 공무원들이 인터뷰 도중 함께 웃다가 부지런히 메모를 하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이 직원들이 정숙하게 또 가끔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리액션을 해주는 바람에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 같은 화기애애함도 묻어났다. 여러 사람들이 오 시장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어 약간은 긴장됐던 것도 사실이다.
오세훈 시장은 참 달변가였다. 서울시 홍보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엔 방점을 콕콕 찍어 적극적으로 피력할 줄 알았고, 내가 봐도 약간 곤란한 질문은 요리조리 지혜롭게 피해갔다. 살아온 얘기를 할 때엔 소탈한 웃음에 인간적인 매력까지 물씬 풍겼다.
"박경림씨 되게 깡촌에서 살았군요"
박경림: 시장님. 안녕하세요?
오세훈: 경림씨의 인터뷰 꼭지 이름이 '300mm 인터뷰'던데요? (의자를 당기며) 그럼, 30cm라는 뜻이잖아. 30cm 만큼 더 가까이 앉아야 되겠네. 가까이 오세요. 어서.(처음부터 웃음)
박: 워낙 언변이 좋은데다 말을 안 하고 계셔도 멋있어서 오늘 제가 더 긴장하고 있습니다. 시장님께서는 특히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요.
오: 네. 디자인에도 원칙이 있어요. 서울은 깊이 음미할 만한 문화를 가진 도시에요.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 이것이 디자인 변화의 기본 원칙입니다. '비워낸다, 통합한다, 또 더불어한다' 라는 원칙이죠.
박: 제가 어릴적 자란 고향 시골길이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조금씩 다른데 그게 왜 그런고 하니, 국회의원들이 4년에 한 번씩 공약을 하세요. 길을 새로 깔아주겠다고. 이번 임기 국회의원이 2m 깔아주고 중단하고, 그 다음 국회의원이 또다른 모양으로 4m 만들고 그만두시고 그렇게 20년에 걸쳐서 그 길이 완성이 됐어요.
오: (한참을 웃으며) 어떤 정책이든 꾸준하게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는 알겠는데 자꾸 마음 속에 딴 생각이 드는 것이 '박경림씨가 되게 깡촌에서 태어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대체 어디에요? 거기가?
박: 김천 방아치요. 직지사라는 절 옆인데 제가 어릴 때 잠깐 살았죠. 제가 어릴 때부터 칡도 캐면서 아주 강하게 컸습니다(쇠소리 껄껄 웃음).
"축구 킥 솜씨는 박지성과 비슷"

박: 이번에 뉴스로도 접했지만 박지성·비와 한강에서 축구 대결도 하셨죠.
오: 아, 그날 보니 박지성 선수 킥으로 공이 날아가는 거리나 내 거리나 비슷하더라고요. 비도 저보다 조금 덜 나간 것 같고. (박경림에게) 강조해서 적어주세요.
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EPL)와 스폰서십 계약을 해서 1년에 27억원씩 맨유에 지급하잖아요.
오: 맨유 경기는 유로 비젼을 통해 한 번에 1억명 이상이 시청합니다. 27억원을 투자해서 연간 300억원 정도의 마케팅 효과를 거둬들이는 거죠.
박: 몇 년 전 시장님과 함께 청계천 걷기 대회에 나갔는데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걸을 수가 있어요?
오: (쑥스러워하며) 미안합니다. 내가 아내랑 연애할 때부터 들었던 잔소리가 '제발 천천히 좀 걸어라'였어요. 데이트 할 때부터 항상 우리 아내는 20m 뒤에 와요.
박: 잘생긴 외모 때문에 방해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 글쎄. 손해 보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선입견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예쁜 여자는 공부를 안 할 것 같다'는 그런 편견이겠죠.
박: 맞아요. 저도 그 말씀을 꼭 믿고 싶습니다. 저는 얼굴이 예쁜데 착하고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애를 보면 혼자서 '저 아이는 몸에 완전 큰 점이 있을 거야'하고 생각하거든요. 혹시 콤플렉스가 있으세요?
"허약 체질이 콤플렉스, 아내는 나보다 바빠"
오: 있죠. 몸이 아주 허약했어요. 키가 181cm인데 몸무게는 대학교 1학년까지 53kg였죠. 별명이 와리바시(젓가락의 일본말), 해골박쥐, 잠새우였어요.
박: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보약 같은 걸 사모님이 챙겨주시나요?
오: 요즘 점심식사 후에 민들레 즙을 먹고 있어요. 어디에 좋은 건 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 집사람은 살뜰하게 챙기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에요. 자기 일이 무척 바빠요.
박: 여기서 잠깐, 유행어 하나 구사해도 되겠습니까? 이것 참 씁쓸하구만~.(일동 웃음)
오: 부부라도 일정 부분을 서로 포기하고 체념하면 오히려 편해집니다.
박: 그럼 사모님은 로라 부시가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스타일인가요?
오: 그렇게 비유하긴 힘들지만 대학(세종대 영화예술과) 연극 연출과 교수다 보니까 낮에는 강의하고 저녁 때는 연습을 시켜야 하니 바쁘지요. 극단 물결이라고 자기 연극팀도 만들어야 하고 보통 퇴근 시간이 12시가 넘어요. 본인이 피곤하기 때문에 제가 피곤할지 어떨 지를 걱정할 겨를이 없어요.(웃음)
박: 저는 가끔 남편이 저를 어떻게 평가할까 두려울 때가 있는데 사모님은 어떻게 말씀해주시는 편인가요?
오: (궁리 끝에) 제가 하는 일을 잘 알아주면 좋겠지만 아마 보통 시민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나와 관련된 소식을 접하는 평균치 만도 못 볼 거에요. 마음을 접고 서로를 위해 약간은 포기하는 건데 저도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영화배우 한번 해보는 게 꿈입니다"
박: 인간 오세훈으로서의 꿈이 뭔가요?
오: 공직생활 그만두면 영화 배우를 해보고 싶어요. (조심스럽게) 성격파 배우 같은 거요.
박: 성격파 보다는 멜로가 딱이신데요?
오: 아니에요. 조폭 두목 같은 역할 있잖아요. 대사 없이 무게잡는 그런 역할이요.
박: 아, 너무 착하게 생긴 남자 주인공이 '너, 그놈 단박에 죽이고 와!'라고 말하는 그런 역할이요? 사모님이 연출을 하시니까 사모님께서 하시는 연극에서 트레이닝 받으면 좋겠는데요?
오: 집사람이 하는 연극 무대에서 연습을 하고 나가면 좀 도움이 되겠죠.
박: 시장이 되신 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오: 맨유에 27억원 스폰서십 계약을 하는 것을 두고 처음에 말이 많았어요. 왜 K리그도 아니고 외국에 돈을 퍼주냐는 비난이었죠. 특히 FC서울 팬들이 화가 많이 났어요. 그런 것도 모르고 하루는 FC 서울 경기에 시축을 하러 갔어요. 마이크를 잡는데 팬들이 호각을 불기 시작하더라고요. 속으로 나를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실은 연설을 방해한 거더라고요.
박: 그 뒤로 어떻게 됐어요?
오: 참 우스운 게 그런 여론이 하루아침에 좋은 쪽으로 뒤집어졌어요.
박: 어떻게요?
오: 맨유 호날두 100호골이 나온 날, 그 장면이 지구촌에 생생히 중계가 된 겁니다. 골이 들어가는 쪽 전광판에 'VISIT KOREA, DISCOVER SEOUL(한국을 방문해서 아름다운 서울을 발견하세요)'라는 광고가 나왔어요. 27억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결과는 헤피엔딩이었어요.
박: 아, 저보다 어렸으면 꼭 한번 안아드렸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웃음).
"서울시에 대해 궁금한 분들, 제 블로그에 오세요"
박: 어릴 때는 어떤 아들이셨어요?
오: 저야 뭐 범생이었죠.
박: 부모님이 물려준 가장 큰 인생 교훈은 뭐죠?
오: 책 읽는 부모 밑에는 그런 아이들이 나오기 쉽고, 또 거짓말 많이 하는 부모를 둔 자식들은 남 속이는 걸 우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가장 좋은 교육은 솔선수범입니다.
박: 혹시 너무 바빠서 원망받는 아버지는 아니셨어요?
오: 딸만 둘인데 장녀는 대학 졸업했고 둘째가 대학교 4학년이에요. 정치 그만두고 2003년 쯤인가 2년 정도 쉬었는데 그때가 가장 아이들과 행복했습니다. 휴일마다 가락동 시장에 가서 회 먹고 꽃게를 사다가 삶아먹기도 했죠.
박: 서울 시민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오: 요즘 서울시에 가볼 만한 곳이 참 많습니다. 최근 블로그에 '서울에서 여름 휴가 즐기는 법'을 올렸는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웃음).
박: 서울 광장을 시민들에게 다시 공개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오: 영화 배우가 영화를 촬영한 뒤 시사회를 앞둔 마음이랄까. 설레임 같은 게 컸습니다. 서울광장 외에 곧 완공되는 프로젝트가 4~5건 정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에 더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TV 뉴스에서 오세훈 시장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다지 서울시의 발전을 기대하지 않았다.
뭐랄까. 얼굴에서 풍기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랄까.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여러 '수장'들과는 다르게 그는 키가 크고 피부가 희며 잘 생기기까지 했다. 왠지 얼굴 잘 생긴 가수가 나오면 노래를 별로 기대 안 하게 되는 심리랄까.
그런데 이상했다. 서울시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서울은 변하고 있었다. 서울 안에서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볼 수 있다는 다산 콜센터가 생기더니 갑자기 반포대교에서 아름다운 조명과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동대문운동장이 없어지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생기더니 한강 둔치에는 콘크리트를 거둬내고, 자연 경관을 살린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을 처음 만난 건 2년 전 청계천 걷기대회에서였다. 함께 걸으며 오시장께 물어볼 질문들을 머릿 속에 몇가지 정리해 두었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려던 찰라 뭐가 그렇게 바쁘신지 이미 시장님은 나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말 빨라도 너무 빨랐다. 처음엔 나도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차이는 더욱 커졌다. 목표 지점에 다달았을 때 시장님은 이미 한참 전에 도착한 듯 시민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오세훈 시장께서 "박경림씨, 완주하셨네요? 이렇게 청계천도 많이 사랑해 주시는데 서울시 홍보대사로도 일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을 걸어줬다.
나는 "저야 무조건 좋죠. 연락주세요"라고 답했지만 사실은 예의상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바로 다음날 서울시에서 매니저를 통해 홍보대사 섭외 연락이 왔다.
나는 기회가 되는대로 많은 서울시 행사에 참여했다. 특히 작년에 참석한 서울시 창의 발표회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딱딱할 줄로만 알았던 서울시 각 부서에서 업적이나 업무 아이디어 등을 내는 자리였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준비와 발표로 재밌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오세훈 시장이 있었다. 그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이었다.
이번 인터뷰 역시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서울시의 정책을 말할 땐 강렬한 눈빛으로 열정이 넘쳤고, 가족과 부모님을 얘기할 때는 그냥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앞으로 더욱 더 예쁜 옷을 입을 서울시를 기대하게 됐다.
또 한가지. 훗날 오세훈 시장의 영화배우 데뷔도 기대된다. 분명 이 분이 또 한번 기대 이상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오세훈 시장과 인터뷰가 잡혔을 때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탤런트 김선아였다. 김선아는 SBS 수목극 '시티홀'에서 여자 시장으로 출연했다.
인터뷰에 앞서 김선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제가 지금 오세훈 시장님을 인터뷰 하는데 혹시 궁금한 거 없어요?" 잠시 후 김선아로부터 답문자가 도착했다. "시청에서 일하는 국장들이 일괄 사표 내면 어떻게 하실 건지 꼭 물어봐줘."
극 중 김선아가 인주시 시장으로 근무할 때 부처 직원인 국장들이 항명 차원에서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당시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김선아의 질문에 오세훈 시장이 허를 찌르는 답변을 내놓았다.
"저라면 그럴 때 쉽게 세대 교체를 할 것 같은데요. 뭐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제 지론이거든요."
옆에서 인터뷰를 참관하던 직원들의 얼굴에서 묘한 긴장과 웃음이 교차했다. 일부는 헛기침을 하며 머쓱해 했고, 비교적 낮은 직급의 직원은 큭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오세훈이 박경림에게
“경림씨 출산 후 17kg 감량 비결 알려주세요”
인터뷰를 하면서 그렇게 몇 번씩이나 크게 웃었던 적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림씨의 밝은 성품 만큼이나 무척 유쾌했던 인터뷰였습니다.
경림씨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서울시에서 펼치는 사업들이 무척 다양한데 정작 그 내용을 잘 몰라서 혜택을 못 누리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위해 서울시 홍보대사로서 늘 앞장서 주는 열정에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칭찬이 자자한지 모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경림씨에게는 나이답지 않은 넉넉한 아우라가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좋은 기운이 늘 유지될 수 있도록 건강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출산 후 두 달 만에 17kg을 감량했다고 하더군요. 저도 올 여름 휴가 때 다이어트를 좀 해볼까 하는데 그 노하우를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나중에 또 뵈면 그 땐 꼭 좀 알려주세요!
■오세훈 시장은?
- 생년월일: 1961.1.4
- 신체: 181cm·77kg
- 가족: 아내 송현옥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 2녀
- 학교: 중동중-대일고-고려대 법학과
- 경력: 제26회 사법시험 합격(8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97~04) 숙명여대 법학과 겸임교수(97~98) 16대 국회의원(00~04) 한나라당 미래연대 공동대표(01~02) 강원도 속초 철인 3종 경기 출전, 3시간 25분 14초로 완주(04) 서울특별시 33대 시장(06~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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