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5일 수요일

[이 남자의 경쟁력]⑨삼보컴퓨터 김영민 부회장

대전의 한 식당에 대학생 두 명이 '거지 꼴'로 나타난 것은 1988년 어느 날이었다.

두 학생은 가게 밖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들어와 방금 전 나간 손님이 남긴 음식을 보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아주머니, 저 밥 어차피 버릴 거죠? 저희가 먹어도 되겠습니까?"

몰골은 옹색했지만 불량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 주인은 "먹어도 된다"고 허락했다.

잔반을 깨끗이 처리한 두 청년은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삼보컴퓨터 김영민(41) 부회장은 그 때 일을 떠올리며 "한번 시작한 일을 중간에 멈추는 것은 스스로 허락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광주 전남대 공과대 학생이었던 김 부회장은 친구에게 "우리 자전거 타고 서울 한 번 가볼까?"라고 제안했고 친구는 "그것 참 재미있겠다"며 함께 길을 떠났다.

"제대로 고생 한 번 해 보자"며 각자 주머니에는 5000원씩만 챙겨 넣었다. 빵과 우유를 몇 번 사먹자 이 돈은 곧 떨어졌다.

그 뒤부터 두 사람은 배가 고플 때마다 아무 식당에나 들러 주인에게 사정해 다른 손님이 남긴 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광주를 떠나 대전쯤 왔을 때. 친구는 "서울까지는 아무래도 힘들겠다, 돌아가자"고 김 부회장의 소매를 잡았다.

김 부회장은 "돌아갈 거면 왜 길을 떠났느냐"며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친구의 손을 뿌리쳤다.

사이가 틀어진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서로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페달을 밟거나 오르막길에서 자전거를 밀었다.

김 부회장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고장 나 논두렁에 처박혔을 때도 친구는 묵묵히 김 부회장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도와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둘은 결국 3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반드시 하고야 만다"


삼보컴퓨터 김영민 부회장.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이용태(74) 전 회장이 1980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한 삼보컴퓨터는 2000년 매출액 4조원을 기록한 사실상 '재벌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2005년 5월 18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IPTV 전문업체 셀런과 인수합병(M&A) 계약을 맺고 올해 1월 2일 회사를 셀런에 매각해 법정관리 졸업을 선언했다.

셀런의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였던 김 부회장은 삼보컴퓨터의 대표이사 부회장직까지 겸임하게 된 것.

마흔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IPTV 업체에 더해 27년 전통의 삼보컴퓨터의 '오너'가 돼 IT 업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젊은 나이 때문에 '돈의 힘으로 삼보를 인수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법도 하지만 김 부회장은 사실 독한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광주에서 자전거 타고 서울 가기 쯤은 그의 성격을 조금 엿볼 수 있는 일화에 불과하다.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김 부회장이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시절. 한 군수업체로부터 회로도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아 개발에 들어갔다.

제품의 특성상 영상 80도, 영하 40도의 혹독한 환경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회로를 설계해야 하는데 자꾸만 영하 37도에서 이상을 일으켰다.


 


회로도가 이상을 일으킬 때마다 그는 동료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며 그때까지 만들어 놓은 회로도를 아예 없애버렸다.

프로젝트 완료 시한은 6개월이었고 이를 넘기면 보수가 줄어드는 불이익이 있었지만 "일을 대충할 수는 없었다." 수 십 차례 회로도를 다시 만들면서 그는 1년 만에 영하 40도를 견디는 회로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김 부회장은 사업도 회로도 개발처럼 매달린다. 그의 지론은 두 가지다. 첫째, 시장이 없으면 시장을 만든다. 둘째, 돈을 벌려면 레드오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그는 1990년 초 학생신분으로 PC를 조립해 판매하는 것으로 큰 돈을 벌었다. 당시 PC는 지금처럼 대중화 하지는 않았지만 마진은 짭짤했다.

사업하는 맛을 본 그는 1993~1999년 대우전자 모니터연구소에서 병역특례로 근무한 뒤 대우전자에서의 경험을 살려 1999년 티컴넷이라는 통신 장비 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회사만 만들었을 뿐, 수익이 나지 않았다. 회사의 가능성을 보겠다던 투자자들은 '빚쟁이'로 변신했다.

그는 "좀 더 기다려주지 않는 투자자들이 야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가 괴롭기는 했지만 사업과 투자의 속성을 알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을 접어야 할 시점. 하지만 그는 독하게 일에 매달렸다. 하루를 한 달처럼 수주를 받기 위해 뛰었고, 납기일을 맞춰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문을 닫은 위탁 공장에 직원들과 함께 출근해 제품을 조립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보다 시장이 성숙했지만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IPTV 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셋톱박스를 수출해 2002년에는 매출액을 80억원 규모로 늘렸다.

2002년에는 같은 업종의 경쟁사 디티비를 인수하면서 티컴앤디티비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2004년에는 대구의 섬유업체 세양산업을 인수해 사명을 셀런으로 바꾸고 거래소에 상장해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워나갔다.

올해 초 삼보컴퓨터 인수로 M&A 전문가로 주목 받고 있지만 사실 김 부회장의 도전은 지금부터다.

●"제 2의 삼보 신화 쓰겠다"

삼보컴퓨터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2005년 영업 손실만 2600억원에 달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김 부회장이 삼보를 인수한 올해 1분기에는 매출액 861억원에 영업이익 8억원을 내는 등 흑자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삼보를 흑자기업으로 바꾼 경영자'라는 평가가 있지만 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흑자 전환했다고는 하나 방심할 수는 없지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TG삼보 브랜드의 위상을 올리고 전체 구성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IPTV라는 없던 시장을 만들어 한번 성공한 그는 이번에는 레드오션에서 한 번 더 성공하겠다고 벼른다.

"블루오션은 경쟁자가 없어서 좋지만 그 만큼 수익성을 올리기 어려운 곳입니다. 시장성이 없으니, 경쟁하는 기업도 없고, 그러다 보니 블루오션이 된 거죠. PC시장은 레드오션이지만 여기서 성공해 세계 PC시장의 단 몇 %만 가져와도 수 조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는 "삼성 LG HP 할 거 없이 요즘 PC는 5m 뒤로 물러나서 보면 다 그게 그거"라고 꼬집었다.

"PC는 냉장고 세탁기처럼 10년 20년 쓰는 제품이 아닙니다. 물론 휴대전화처럼 1, 2년 만에 바꾸는 제품도 아니지만 PC의 교체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IPTV, 올인원(모니터 본체 일체형PC) 등 다양한 기능과 수요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수시로 신제품을 내 놓으면 PC 시장이 휴대전화 시장을 닮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

"휴대전화 고장 나서 바꾸는 소비자는 많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PC도 그렇게 될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삼보컴퓨터는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만큼 대기업의 특성이 강하다. 제품 스케치부터 시판까지 사이에 불필요한 의사결정 단계가 많다. 또 구성원들의 시각이 좁아 시장을 크게 보지 못하고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에만 몰입하고, 내 일이 아니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신제품 하나 만드는 데 1년 이상이 걸린다. 유행에 뒤쳐진 제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삼보컴퓨터 인수를 전후해 임직원들과의 토론 끝에 신제품 개발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죠. 하지만 개발 기간을 6개월로 줄이는데 성공한 뒤로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개발기간을 3개월 정도까지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실패를 경험한 CEO답게, 삼보컴퓨터에 대한 평가도 매서웠다.

"삼보가 두루넷을 통해 국내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고, 업계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등 앞서나간 것은 분명히 잘 한 일입니다. 하지만 앞서 나갈 때 수반되는 리스크 관리를 잘 못 한 게 실수였습니다."

실패를 경험해본 기업을 인수한, 실패를 경험해본 CEO. 레드오션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의 '끈기'가 제2의 삼보신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