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된 광고 촬영 끝에 이뤄진 인터뷰. 반갑게 인사하는 비(본명 정지훈ㆍ27)는 지친 기색 없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첫 질문을 떼기도 전에 "빨리 여자 친구 생겨서 장가가고 싶다"는 너스레도 떨었다. 이 말은 요즘 들어 비에게서 부쩍 자주 들을 수 있는 '희망 레퍼토리'다.
비에게서 느낄 수 있는 이런 자신감은 올해 성과가 그만큼 좋다는 징표일 것이다.
월드투어 미국 공연 무산에 따른 법적 소송을 끝냈고, 2년 만에 아시아 투어를 재개했으며, 이달 말에는 3년 만에 세 번째 미국 단독 공연을 개최한다.
직접 프로듀싱한 아이돌 그룹 엠블랙도 데뷔시켰으며, 11월 할리우드 첫 주연작인 영화 '닌자 어쌔신'은 개봉과 더불어 미국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르며 배우로서의 입지도 다졌다.
미국 CNN이 그를 특집으로 조명했고, 그를 담은 디스커버리채널 다큐멘터리는 '아시안 TV 어워드'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 사업가보다 연예인으로 갈 길 멀어
매년 쉼 없이 화제를 만들어내는 그는 올해가 인생을 배운 해라고 했다. 진정성 있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수렴하는 안목을 갖게 된 해, '비'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강하게 믿었던 자신에 대한 기준선이 철저히 깨진 해였다고도 했다.
"그래서 정신건강이 악화하기도 하고, 큰 희망을 품기도 했어요. 저는 10년 주기로 변화가 생기네요. 1989년 집이 풍족한 삶에서 부족한 삶으로 바뀌었고, 1999년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2009년에는 소송이란 악재도 있었지만, 연말에는 영화 개봉 등 좋은 일들이 생겼잖아요. 인생은 정말 마라톤 같아요."
비는 2007년 월드투어 미국 공연 무산과 관련한 2년간의 분쟁을 지난 6월 끝냈다. 그렇기에 8월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 홍콩, 인도네시아 등지를 돈 '레전드 오브 레이니즘(Legend of Rainism)' 투어는 감회가 남달랐을 터.
"무대의 소중함은 늘 느꼈죠. 하지만 무대란, 준비되면 오르고 다시 내려오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공연을 할 때면 무대 설치 등 저를 위해 뛰는 분들의 고생도 헤아리게 됐죠. 무대에 한번 서는 게 요즘은 더없이 고맙고 행복해요. 미국 공연도 벌써 설레고요."
비는 가수로서 신인상, 대상도 타봤기에 이제 국내에서는 이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해외로 나가 더 큰 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랬기에 지난 9월 엠블랙도 데뷔시켰다.
그는 "엠블랙이 내가 직접 프로듀싱하는 마지막 음반일 것"이라며 "내가 가수와 배우로서 갈 길이 멀다는 걸 깨달았다. 박진영 형처럼 사업가로서는 자질이 부족하기에 연예인으로 나의 최대치를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 美서 '잽' 날리자 좋은 제안 줄이어
비는 '닌자 어쌔신'이 개봉한 뒤, 2002년 1집을 막 끝냈을 때처럼 신인의 기분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데뷔 8년차임에도 매번 자신의 마음가짐을 데뷔 당시의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도 높이 살 재주다.
몇 년 전 박진영이 뉴욕의 심장부인 타임스퀘어에 서서 "5년 후 비의 얼굴을 타임스퀘어에 넣어놓겠다"는 말도 '닌자 어쌔신' 대형 포스터가 붙으며 현실이 됐다.
"당초 이 영화의 목표는 미국에서 2천만 달러, 아시아 통합 5천만 달러 수익이 목표였어요. 그런데 투자금도 회수됐고 그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대요. 미국에서 주당 70편의 영화가 개봉되는데, 제 영화 때는 '2012', '뉴 문' 등 대작들이 많았죠. 당일 개봉한 영화 6편 중 박스오피스 1위,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해 만족해요. 이제 잽 한번을 날렸으니, 카운터 펀치도 준비해야죠."
비는 이 영화 개봉 후 파라마운트 등 할리우드에서 '좋은 제안'들이 쏟아져 출연 여부를 결정을 하는 데도 고민이 된다고 했다. 대단한 감독이 연출할 세계적인 프로젝트 등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그중 한 작품은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로 7-8명이 주요 배역을 맡는다고 했다.
"주연 욕심보다 다음 단계로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블록버스터에 조연급으로라도 출연하고 싶어요. 미국의 스타들도 주연과 조연을 오가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브래드 피트, 콜린 파렐 등의 배우들과 연기한다면 그것도 큰 이력이 될 테니 주저 없이 선택할 겁니다. 아직은 배역의 한계가 있겠지만, 어느 순간 벗어날 때가 있을 겁니다."
최근 만난 청룽(成龍)은 비에게 이같은 조언을 했다고 한다. "난 40대에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너는 나보다 20년이 빠르다. 넌 할 수 있다. 5년 후를 내다보라"고. 비는 "'러시아워' 등으로 유명해진 청룽은 미국인 누구나 안다. 리샤오룽(李振藩)과 함께 진정한 월드스타"라고 덧붙였다.
비는 할리우드 영화와 함께 드라마 출연에도 욕심을 냈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드라마를 찍고 싶어요. 영화를 촬영하면 7-8개월이 소요돼 다시 1년 공백이 생기니 아시아권 팬들은 영화보다 드라마에 출연하길 원하죠. 한ㆍ일, 한ㆍ중 합작 드라마라도 좋으니 인간 냄새 나는 드라마를 꼭 할 겁니다."
그렇다면 가수로서 월드와이드 음반을 내고 미국 팝 시장에 진출할 계획은 잠정 보류인지 물었다.
비는 "영화를 선택한다면 현재로선 월드와이드 음반은 포기해야 한다"며 "하지만 디지털 싱글로 팬서비스를 하고 싶다. 같은 곡을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른 언어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 춤 영화 출연과 좋은 아버지가 꿈
내년 계획을 털어놓던 그는 문득 자신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부담되기보다 근접하려고 애쓰기에 꿈과 의욕이 생긴다고도 했다.
"요즘 등산을 다니는데, 산도 빨리 올라가면 금방 탈진하잖아요. 천천히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와야죠. 또 이제는 제가 말만 하면 안돼요. 보여줘야 하죠. 미국 TV 쇼 출연, 박스오피스 몇 위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영화 배급사의 홍보 덕에 현지에 제 팬클럽이 자생적으로 생긴 게 더 고무적이죠. 아시아 스타일인 팬미팅 등을 미국에서 시도해보려고요."
"이제 내 갈 길을 가야 한다"는 그에게 연예계 국가대표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미국 연예지 할리우드리포터 인터뷰를 하는데, 남북문제, 최근 세상을 뜬 한국의 유명 모델에 대해 묻더군요. 그들은 절 인터뷰하며 정치 분야까지 한국을 공부하고 조사했어요. 저로 인해 그들이 한국을 알아가는 게 신기했어요. 제가 한국인이니 잘못하면 한국, 나아가 아시아가 욕먹을 수 있잖아요. 어깨에 그러한 책임감은 이미 있어요."
또 가난과 어머니의 죽음 등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성공 스토리로 화제가 됐기에 훗날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어보라는 제안도 했다.
그는 "그것보다 내 몸이 녹슬기 전 춤 영화를 꼭 찍고 싶다"며 "아시아에서 춤 영화가 안된 건 춤을 잘 추면 연기력이 부족하고 연기자는 춤의 끝을 보여주기 어려웠다. 난 지금 연기와 춤을 갈고 닦으니 언젠가 휴머니즘이 있는 춤 영화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희망사항. 늘 '결혼이 준비된 남자'라고 말하는 그가 그리는 가정은 스타답지 않게 소박했다.
"주말이면 전화기를 끄고 아이들과 도시락 싸서 놀러가는 가장이 되고 싶어요. 제 꿈이 좋은 아버지거든요. 집안이 풍족하지 못해 우리 가족은 사랑할 시간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장사했고 아버지도 힘들게 일하셨죠. 나이 들어 작은 콘서트홀에서 쇼를 하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을 해도 괜찮아요. 100일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에 충성을 다하려고요."
미국 CNN이 그를 특집으로 조명했고, 그를 담은 디스커버리채널 다큐멘터리는 '아시안 TV 어워드'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 사업가보다 연예인으로 갈 길 멀어
매년 쉼 없이 화제를 만들어내는 그는 올해가 인생을 배운 해라고 했다. 진정성 있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수렴하는 안목을 갖게 된 해, '비'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강하게 믿었던 자신에 대한 기준선이 철저히 깨진 해였다고도 했다.
"그래서 정신건강이 악화하기도 하고, 큰 희망을 품기도 했어요. 저는 10년 주기로 변화가 생기네요. 1989년 집이 풍족한 삶에서 부족한 삶으로 바뀌었고, 1999년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며, 2009년에는 소송이란 악재도 있었지만, 연말에는 영화 개봉 등 좋은 일들이 생겼잖아요. 인생은 정말 마라톤 같아요."
비는 2007년 월드투어 미국 공연 무산과 관련한 2년간의 분쟁을 지난 6월 끝냈다. 그렇기에 8월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 홍콩, 인도네시아 등지를 돈 '레전드 오브 레이니즘(Legend of Rainism)' 투어는 감회가 남달랐을 터.
"무대의 소중함은 늘 느꼈죠. 하지만 무대란, 준비되면 오르고 다시 내려오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공연을 할 때면 무대 설치 등 저를 위해 뛰는 분들의 고생도 헤아리게 됐죠. 무대에 한번 서는 게 요즘은 더없이 고맙고 행복해요. 미국 공연도 벌써 설레고요."
비는 가수로서 신인상, 대상도 타봤기에 이제 국내에서는 이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해외로 나가 더 큰 시장을 뚫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랬기에 지난 9월 엠블랙도 데뷔시켰다.
그는 "엠블랙이 내가 직접 프로듀싱하는 마지막 음반일 것"이라며 "내가 가수와 배우로서 갈 길이 멀다는 걸 깨달았다. 박진영 형처럼 사업가로서는 자질이 부족하기에 연예인으로 나의 최대치를 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 美서 '잽' 날리자 좋은 제안 줄이어
비는 '닌자 어쌔신'이 개봉한 뒤, 2002년 1집을 막 끝냈을 때처럼 신인의 기분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데뷔 8년차임에도 매번 자신의 마음가짐을 데뷔 당시의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도 높이 살 재주다.
몇 년 전 박진영이 뉴욕의 심장부인 타임스퀘어에 서서 "5년 후 비의 얼굴을 타임스퀘어에 넣어놓겠다"는 말도 '닌자 어쌔신' 대형 포스터가 붙으며 현실이 됐다.
"당초 이 영화의 목표는 미국에서 2천만 달러, 아시아 통합 5천만 달러 수익이 목표였어요. 그런데 투자금도 회수됐고 그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대요. 미국에서 주당 70편의 영화가 개봉되는데, 제 영화 때는 '2012', '뉴 문' 등 대작들이 많았죠. 당일 개봉한 영화 6편 중 박스오피스 1위,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해 만족해요. 이제 잽 한번을 날렸으니, 카운터 펀치도 준비해야죠."
비는 이 영화 개봉 후 파라마운트 등 할리우드에서 '좋은 제안'들이 쏟아져 출연 여부를 결정을 하는 데도 고민이 된다고 했다. 대단한 감독이 연출할 세계적인 프로젝트 등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그중 한 작품은 영웅의 이야기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로 7-8명이 주요 배역을 맡는다고 했다.
"주연 욕심보다 다음 단계로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블록버스터에 조연급으로라도 출연하고 싶어요. 미국의 스타들도 주연과 조연을 오가잖아요. 예를 들어 제가 브래드 피트, 콜린 파렐 등의 배우들과 연기한다면 그것도 큰 이력이 될 테니 주저 없이 선택할 겁니다. 아직은 배역의 한계가 있겠지만, 어느 순간 벗어날 때가 있을 겁니다."
최근 만난 청룽(成龍)은 비에게 이같은 조언을 했다고 한다. "난 40대에 할리우드에 진출했지만 너는 나보다 20년이 빠르다. 넌 할 수 있다. 5년 후를 내다보라"고. 비는 "'러시아워' 등으로 유명해진 청룽은 미국인 누구나 안다. 리샤오룽(李振藩)과 함께 진정한 월드스타"라고 덧붙였다.
비는 할리우드 영화와 함께 드라마 출연에도 욕심을 냈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드라마를 찍고 싶어요. 영화를 촬영하면 7-8개월이 소요돼 다시 1년 공백이 생기니 아시아권 팬들은 영화보다 드라마에 출연하길 원하죠. 한ㆍ일, 한ㆍ중 합작 드라마라도 좋으니 인간 냄새 나는 드라마를 꼭 할 겁니다."
그렇다면 가수로서 월드와이드 음반을 내고 미국 팝 시장에 진출할 계획은 잠정 보류인지 물었다.
비는 "영화를 선택한다면 현재로선 월드와이드 음반은 포기해야 한다"며 "하지만 디지털 싱글로 팬서비스를 하고 싶다. 같은 곡을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른 언어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 춤 영화 출연과 좋은 아버지가 꿈
내년 계획을 털어놓던 그는 문득 자신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또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부담되기보다 근접하려고 애쓰기에 꿈과 의욕이 생긴다고도 했다.
"요즘 등산을 다니는데, 산도 빨리 올라가면 금방 탈진하잖아요. 천천히 올라갔다가 천천히 내려와야죠. 또 이제는 제가 말만 하면 안돼요. 보여줘야 하죠. 미국 TV 쇼 출연, 박스오피스 몇 위가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영화 배급사의 홍보 덕에 현지에 제 팬클럽이 자생적으로 생긴 게 더 고무적이죠. 아시아 스타일인 팬미팅 등을 미국에서 시도해보려고요."
"이제 내 갈 길을 가야 한다"는 그에게 연예계 국가대표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미국 연예지 할리우드리포터 인터뷰를 하는데, 남북문제, 최근 세상을 뜬 한국의 유명 모델에 대해 묻더군요. 그들은 절 인터뷰하며 정치 분야까지 한국을 공부하고 조사했어요. 저로 인해 그들이 한국을 알아가는 게 신기했어요. 제가 한국인이니 잘못하면 한국, 나아가 아시아가 욕먹을 수 있잖아요. 어깨에 그러한 책임감은 이미 있어요."
또 가난과 어머니의 죽음 등 역경을 딛고 일어선 성공 스토리로 화제가 됐기에 훗날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어보라는 제안도 했다.
그는 "그것보다 내 몸이 녹슬기 전 춤 영화를 꼭 찍고 싶다"며 "아시아에서 춤 영화가 안된 건 춤을 잘 추면 연기력이 부족하고 연기자는 춤의 끝을 보여주기 어려웠다. 난 지금 연기와 춤을 갈고 닦으니 언젠가 휴머니즘이 있는 춤 영화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희망사항. 늘 '결혼이 준비된 남자'라고 말하는 그가 그리는 가정은 스타답지 않게 소박했다.
"주말이면 전화기를 끄고 아이들과 도시락 싸서 놀러가는 가장이 되고 싶어요. 제 꿈이 좋은 아버지거든요. 집안이 풍족하지 못해 우리 가족은 사랑할 시간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장사했고 아버지도 힘들게 일하셨죠. 나이 들어 작은 콘서트홀에서 쇼를 하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을 해도 괜찮아요. 100일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가족에 충성을 다하려고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