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5일 수요일

[파워CEO] 김건일 게임하이 회장

 



김건일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4∼5년 전이었다. 트라이글로우픽처스를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프리스톤테일’이라는 3D 온라인게임을 개발해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었다. 서초동 게임하이 사옥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는 활력이 넘쳐 보였고, 눈빛 또한 여전히 강렬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그의 내면은 크게 변해 있었다. 트라이글로우픽처스 사장에서 게임하이를 비롯해 MSC코리아 등 2∼3개 회사를 운영하는 회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게임시장에 첫발을 내디딘 도전자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서든어택’이라는 최고의 1인칭슈팅게임(FPS)과 ‘데카론’이라는 다중접속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견기업 CEO가 돼 있었다. 그가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지난 5월이었다. 대유베스퍼를 인수하면서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 선언도 했다. 그동안 실질적인 오너이면서도 전면에 나서기를 꺼렸던 그에게는 가장 큰 변화다.


◇유학비용 벌기 위해 사막으로

그와의 대화는 게임과는 전혀 무관한 사막에서부터 시작됐다. 1982년도. 1년도 채우지 못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직장생활 이야기였다.
“직장생활 보다는 유학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학을 준비하다 보니 1500만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하드라구요.” 그가 사우디로 날아간 것은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얘기를 듣자니 해외에서 근무하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데요. 건설사에 입사해 사우디 근무를 지원했어요.”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어투로 그는 26년전의 사막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조수로 데리고 있던 태국인을 보고 유학에 대한 꿈을 접었어요. 미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대학 석사였는데 하는 일이...” 유학에 대한 실망감에 젖어들 당시 현지에서 사귄 외국 친구들이 사업을 해 볼 것을 제안했다. 처음부터 직장생활에 미련이 없던 그는 흔쾌이 응했고, 사우디 근무 9개월만에 사표를 던졌다.

그가 처음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은 1983년 12월 태국에서 였다. C&M 브라더스라는 건설사 에이전시 업무를 하는 회사였다. 사우디에 근무하면서 사귄 친구들이 대부분 컨설턴트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어설프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잊지 못할 첫 개인사업이었다.

◇KFC 마스코트 통해 향료에서 게임으로 워프

그가 게임사업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더 기발했다. 향료가 장난감과 연결되고, 장난감은 다시 캐릭터로, 캐릭터는 다시 게임으로 도약하는 순서였다.

오퍼성을 내고 무역업을 하며 세계 각지를 뛰어다니던 그는 향료사업으로 정착했다. 그 계기도 일본 친구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향료사업으로 큰 성공을 일구어 냈다. 그가 제공한 원료로 만든 ‘치토스’가 대박을 치면서 처음으로 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됐다. 바로 오늘의 삼조셀틱이다.

하지만 그는 향료회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10여년간 향료회사를 했어요.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창조적인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게임을 선택한 것 같아요.”

패스트푸드점 등에 향료와 경품용 장난감을 공급하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KFC 마스코트인 샌더스 영감이었다. 곧바로 캐릭터 사업에 대한 구상이 그려졌고, 캐릭터에 대한 연구는 결국 게임사업으로 연결됐다. “바로 게임 개발자들을 모았죠. 그 때 개발한 게임이 바로 ‘프리스톤테일’이었어요.” 지금은 예당 온라인에 매각, 게임하이와는 무관한 게임이 됐음에도 그가 아직도 ‘프리스톤테일’에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가장 중시하는 경영요건은 ‘사람’

김 회장의 경영 철학은 단순명료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창업을 하고 사업 아이템을 변화시켜오면서 고민이 없었느냐고 질문해 봤다. “고민요? 안해요.” 돌아온 그의 대답은 짧고 단호했다. 고민해봐야 항상 마이너스 효과만 가져온다는 것이다.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찾는데 투자하는게 백배 나아요.” 지난 26년간 사막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비즈니스 인생 경험이 만들어 준 실전철학이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친분을 나눴던 친구들의 도움을 가장 값지게 생각하고 있었다. 향료회사를 운영하면서도, 게임으로 업종을 바꾸면서도 가장 먼저 챙긴 것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었다.

최근에는 어떤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주저없이 “게임하이의 백승훈 전무와 MSC코리아의 최진욱 사장”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장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게임과 콘텐츠 서비스 분야를 맡긴 인물들이었다.

그는 앞으로 콘텐츠와 테크놀로지를 결합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할 계획이다. 테마파크 또는 엔터테인먼트 랜드나 빌딩 형태다.

그는 “몇년째 추진하고는 있는데 굉장히 어렵다. 개인이 도전하기에는 너무 큰 사업같다”면서도 “온·오프라인을 초월해 언제 어디서나 일하고 즐길 수 있는 유비쿼터스 개념이 앞으로의 방향이라고 본다”고 자신한다.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훌륭한 게임회사 만들 터

“국내 시장은 너무 좁아요. 아무리 잘해도 금방 한계를 느끼죠.”

김건일 회장은 다시 세계시장으로 뛰쳐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준비도 한창 진행 중이다. 우선 내년에는 홀딩 컴퍼니를 세울 예정이다. 이를 중심으로 게임하이와 MSC코리아 및 얼마전 우군으로 확보한 일본 IPTV 1위업체인 네오와의 협력을 통해 3각편대를 구성키로 했다. 내년에는 지난 3년간 개발해 온 3개의 신작게임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벌써 10년째 게임사업을 하다보니 이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며 “내년 쯤에는 몇 년 동안 준비해온 일들이 성과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하게 펼칠 수 있는 사업이 없었다는 게 고민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하다 보니 그의 눈높이는 항상 세계시장에 맞춰져 있던 듯 했다. “향료사업을 할 때도 국내만 보면 10명이면 될 연구소 인력을 20여명이나 뒀었죠.” 언제고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흔적들이었다.

“게임하이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임개발사가 될 때까지 뛰어볼 겁니다. 세계적으로 진짜 훌륭한 게임을 서비스 한다는 얘기를 듣는게 목표예요.” 그가 밝힌 포부다.

◇김건일 회장은

서울 토박이다.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는 12세의 어린나이 때부터 돈벌이를 시작한 대표적이 자수성가형 CEO다. 부친이 사업에 실패해 초등학교 졸업 후 1년을 쉬었야 했다. 이 때부터 그는 1년간 매일같이 마포와 신촌을 오가며 하루종일 신문과 일일공부를 돌렸다. 새벽에는 조간신문, 낮에는 일일공부, 저녁에는 석간신문을 돌렸다. 고등학교 재학중에는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대학시절에는 숙식을 학교에서 해결해가며 학원강사까지 겸했다.

이같은 고생은 그를 실전형 CEO로 무장시켰다. 태국에서 첫 회사를 설립할 때도 그는 맨손이었다. 현지에서 9개월간 사귄 친구들이 전재산이었다. 무역업을 하면서 전쟁의 틈바구니에 있는 중동지역에 물자를 공급하기도 했다. 삼조셀틱의 전신이 된 향료회사를 설립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people]“삼보와 한컴을 한 손에…” 김영민 셀런 부회장



김영민 부회장은 지난 99년 IPTV용 셋톱박스 업체 티컴을 설립한 후 디티비로를 합병, 티컴앤디티비로를 출범시켰다. 이후 세양산업을 추가로 인수, 합병하고 사명을 셀런으로 바꿨다.

지난 80년대 이후 벤처로 출발해 한국 IT업계를 대표해온 두 브랜드 ‘삼보’와 ‘한컴’을 한 손에 쥔 김영민 셀런 부회장(사진)이 새삼 화제다.
이용태, 이찬진 등 한국 IT업계를 대표했던 창업자들의 손을 떠난 이들 기업을 인수해 재기시켜야 하는 의무가 그의 어깨 위에 남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수차례 M&A를 거치며 성장해오며 이제 위기에 봉착한 한국 IT 대표 브랜드의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 상장사만도 3곳(셀런, 프리샛, 한틀시스템)이나 보유하고 있다. 향후 삼보컴퓨터가 재상장에 성공할 경우 그는 상장사 4곳을 휘하에 두게 된다.

김 부회장은 지난 99년 IPTV용 셋톱박스 업체 티컴을 설립한 후 디티비로를 합병, 티컴앤디티비로를 출범시켰다. 이후 그의 본격적인 M&A 행보가 시작된다. 지난 2004년 코스닥 기업 프리샛(옛 아이디씨텍)을 인수하며 첫 우회상장을 시도했다. 하지만 프리샛을 통한 우회상장이 어려워지자 세양산업을 추가로 인수, 합병하고 사명을 셀런으로 바꿨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 부회장과 셀런을 눈여겨본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운영중이던 셀런TV를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에 매각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셀런TV는 하나로텔레콤에 인수된 후 하나TV로 거듭나며 국내 IPTV의 출발을 알린다.

이후 김 부회장은 삼보컴퓨터 인수전에 뛰어들어 당당히 최후의 승자가 됐고 이후 삼보컴퓨터와 셀런 계열사들은 셋톱박스, 내비게이션 등에서 협력하며 윈윈 효과를 누리며 실적 호전이라는 성과도 냈다.

이 과정에서 김 부회장은 일본측 자금을 확보하는 등 자금과 M&A등에서 수완을 발휘했다. 프리샛을 통해서는 태양전지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컴 인수 후 김 부회장은 디지털 영화 서비스, 모바일 매칭 서비스 제공 업체인 셀런에스엔을 통해 한컴의 웹 오피스 ‘싱크프리’,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한컴 모바일 에디션’을 삼보의 웹하드 서비스(파일저장, 보안관리), VOD 서비스 등 신규 사업에 결합시킬 예정이다.

김 부회장은 삼보와 한글과컴퓨터의 만남에 대해 “우리나라 1호 벤처기업, 최초의 컴퓨터 전문기업인 삼보의 상징성에 한글과컴퓨터의 브랜드가 더해져 내부적으로는 전문성이 강화될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통성을 갖춘 IT기업으로 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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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경쟁력]⑨삼보컴퓨터 김영민 부회장

대전의 한 식당에 대학생 두 명이 '거지 꼴'로 나타난 것은 1988년 어느 날이었다.

두 학생은 가게 밖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들어와 방금 전 나간 손님이 남긴 음식을 보면서 주인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아주머니, 저 밥 어차피 버릴 거죠? 저희가 먹어도 되겠습니까?"

몰골은 옹색했지만 불량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 주인은 "먹어도 된다"고 허락했다.

잔반을 깨끗이 처리한 두 청년은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삼보컴퓨터 김영민(41) 부회장은 그 때 일을 떠올리며 "한번 시작한 일을 중간에 멈추는 것은 스스로 허락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광주 전남대 공과대 학생이었던 김 부회장은 친구에게 "우리 자전거 타고 서울 한 번 가볼까?"라고 제안했고 친구는 "그것 참 재미있겠다"며 함께 길을 떠났다.

"제대로 고생 한 번 해 보자"며 각자 주머니에는 5000원씩만 챙겨 넣었다. 빵과 우유를 몇 번 사먹자 이 돈은 곧 떨어졌다.

그 뒤부터 두 사람은 배가 고플 때마다 아무 식당에나 들러 주인에게 사정해 다른 손님이 남긴 밥으로 허기를 달랬다.

광주를 떠나 대전쯤 왔을 때. 친구는 "서울까지는 아무래도 힘들겠다, 돌아가자"고 김 부회장의 소매를 잡았다.

김 부회장은 "돌아갈 거면 왜 길을 떠났느냐"며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친구의 손을 뿌리쳤다.

사이가 틀어진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서로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페달을 밟거나 오르막길에서 자전거를 밀었다.

김 부회장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고장 나 논두렁에 처박혔을 때도 친구는 묵묵히 김 부회장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도와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둘은 결국 3일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반드시 하고야 만다"


삼보컴퓨터 김영민 부회장.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이용태(74) 전 회장이 1980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한 삼보컴퓨터는 2000년 매출액 4조원을 기록한 사실상 '재벌 기업'이었다. 하지만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2005년 5월 18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IPTV 전문업체 셀런과 인수합병(M&A) 계약을 맺고 올해 1월 2일 회사를 셀런에 매각해 법정관리 졸업을 선언했다.

셀런의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였던 김 부회장은 삼보컴퓨터의 대표이사 부회장직까지 겸임하게 된 것.

마흔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IPTV 업체에 더해 27년 전통의 삼보컴퓨터의 '오너'가 돼 IT 업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젊은 나이 때문에 '돈의 힘으로 삼보를 인수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법도 하지만 김 부회장은 사실 독한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광주에서 자전거 타고 서울 가기 쯤은 그의 성격을 조금 엿볼 수 있는 일화에 불과하다.

●"다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김 부회장이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시절. 한 군수업체로부터 회로도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아 개발에 들어갔다.

제품의 특성상 영상 80도, 영하 40도의 혹독한 환경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회로를 설계해야 하는데 자꾸만 영하 37도에서 이상을 일으켰다.


 


회로도가 이상을 일으킬 때마다 그는 동료들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며 그때까지 만들어 놓은 회로도를 아예 없애버렸다.

프로젝트 완료 시한은 6개월이었고 이를 넘기면 보수가 줄어드는 불이익이 있었지만 "일을 대충할 수는 없었다." 수 십 차례 회로도를 다시 만들면서 그는 1년 만에 영하 40도를 견디는 회로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김 부회장은 사업도 회로도 개발처럼 매달린다. 그의 지론은 두 가지다. 첫째, 시장이 없으면 시장을 만든다. 둘째, 돈을 벌려면 레드오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그는 1990년 초 학생신분으로 PC를 조립해 판매하는 것으로 큰 돈을 벌었다. 당시 PC는 지금처럼 대중화 하지는 않았지만 마진은 짭짤했다.

사업하는 맛을 본 그는 1993~1999년 대우전자 모니터연구소에서 병역특례로 근무한 뒤 대우전자에서의 경험을 살려 1999년 티컴넷이라는 통신 장비 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회사만 만들었을 뿐, 수익이 나지 않았다. 회사의 가능성을 보겠다던 투자자들은 '빚쟁이'로 변신했다.

그는 "좀 더 기다려주지 않는 투자자들이 야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가 괴롭기는 했지만 사업과 투자의 속성을 알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업을 접어야 할 시점. 하지만 그는 독하게 일에 매달렸다. 하루를 한 달처럼 수주를 받기 위해 뛰었고, 납기일을 맞춰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문을 닫은 위탁 공장에 직원들과 함께 출근해 제품을 조립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보다 시장이 성숙했지만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IPTV 시장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셋톱박스를 수출해 2002년에는 매출액을 80억원 규모로 늘렸다.

2002년에는 같은 업종의 경쟁사 디티비를 인수하면서 티컴앤디티비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2004년에는 대구의 섬유업체 세양산업을 인수해 사명을 셀런으로 바꾸고 거래소에 상장해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워나갔다.

올해 초 삼보컴퓨터 인수로 M&A 전문가로 주목 받고 있지만 사실 김 부회장의 도전은 지금부터다.

●"제 2의 삼보 신화 쓰겠다"

삼보컴퓨터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2005년 영업 손실만 2600억원에 달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김 부회장이 삼보를 인수한 올해 1분기에는 매출액 861억원에 영업이익 8억원을 내는 등 흑자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삼보를 흑자기업으로 바꾼 경영자'라는 평가가 있지만 그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흑자 전환했다고는 하나 방심할 수는 없지요.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TG삼보 브랜드의 위상을 올리고 전체 구성원의 역량을 강화하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IPTV라는 없던 시장을 만들어 한번 성공한 그는 이번에는 레드오션에서 한 번 더 성공하겠다고 벼른다.

"블루오션은 경쟁자가 없어서 좋지만 그 만큼 수익성을 올리기 어려운 곳입니다. 시장성이 없으니, 경쟁하는 기업도 없고, 그러다 보니 블루오션이 된 거죠. PC시장은 레드오션이지만 여기서 성공해 세계 PC시장의 단 몇 %만 가져와도 수 조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는 "삼성 LG HP 할 거 없이 요즘 PC는 5m 뒤로 물러나서 보면 다 그게 그거"라고 꼬집었다.

"PC는 냉장고 세탁기처럼 10년 20년 쓰는 제품이 아닙니다. 물론 휴대전화처럼 1, 2년 만에 바꾸는 제품도 아니지만 PC의 교체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IPTV, 올인원(모니터 본체 일체형PC) 등 다양한 기능과 수요자들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수시로 신제품을 내 놓으면 PC 시장이 휴대전화 시장을 닮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

"휴대전화 고장 나서 바꾸는 소비자는 많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PC도 그렇게 될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삼보컴퓨터는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만큼 대기업의 특성이 강하다. 제품 스케치부터 시판까지 사이에 불필요한 의사결정 단계가 많다. 또 구성원들의 시각이 좁아 시장을 크게 보지 못하고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에만 몰입하고, 내 일이 아니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신제품 하나 만드는 데 1년 이상이 걸린다. 유행에 뒤쳐진 제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삼보컴퓨터 인수를 전후해 임직원들과의 토론 끝에 신제품 개발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죠. 하지만 개발 기간을 6개월로 줄이는데 성공한 뒤로 구성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개발기간을 3개월 정도까지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실패를 경험한 CEO답게, 삼보컴퓨터에 대한 평가도 매서웠다.

"삼보가 두루넷을 통해 국내 최초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고, 업계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등 앞서나간 것은 분명히 잘 한 일입니다. 하지만 앞서 나갈 때 수반되는 리스크 관리를 잘 못 한 게 실수였습니다."

실패를 경험해본 기업을 인수한, 실패를 경험해본 CEO. 레드오션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의 '끈기'가 제2의 삼보신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파워 CEO] 김영민 삼보컴퓨터 부회장·셀런 사장

밤과 낮의 길이가 같고 겨울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24절기의 하나. 그와의 만남은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해지는 춘분점에서 이뤄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약속장소를 기억하지 못했네요.”

 김영민 삼보컴퓨터 부회장 겸 셀런 사장(41)은 미안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오전에 약속한 장소를 바쁜 업무로 인해 헷갈린 탓일 게다. 삼보컴퓨터를 인수하며 동분서주하니 그럴 만도 하다. 옛 사람들은 춘분을 가리켜 “하루를 밭 갈지 않으면 일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고 했듯이 그도 춘분을 농경 일로 삼고 씨앗을 뿌렸으리라.

 “삼성전자·LG전자가 삼보의 PC를 거울삼아 만드는 날이 올 거예요. 머지않았어요.” 미소를 머금은 그의 입가에는 비장함이 가득했다.

 사무실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분주했다. 각각의 회의실은 빈 곳이 없었다. 온풍기를 켜지 않았는데도 토론과 회의 열기로 후끈했다. 그는 안산과 송파, 용산을 홍길동처럼 다닌다.

삼보와 셀런, 그리고 브레인 전략기지인 용산사무실을 오가며 경쟁력 갖추기에 여념이 없다.

 “셋톱박스요? 컨버전스입니다.” 아무 차나 다 끓여내는 싸구려 쇠 주전자가 아닌 고급 다기와 마찬가지로 PC와 함께 하는 컨버전스되는 셋톱박스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다. 브레인 전략기지인 용산에서 춘분을 화제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감으로 사업을 시작하다

 그는 술과 담배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하지 않는다. 골프도 안 한다.

 “할 줄 아는 게 일밖에 없나요?”라고 묻자 수십년간 엔지니어라는 수식어가 이제는 더욱 익숙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김 부회장은 대학시절 때부터 사업에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대학원 재학시절인 1990년에 PC를 조립해 판매했다. 남들은 취업준비로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할 때 김 부회장은 PC와 씨름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한 대 팔면 50만원 정도 남았다. 애플PC 한대 가격이 100만원 정도 하는 시대에 조립PC 사업을 하는 사람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로 해 본 사업이 이제는 본업이 됐다.

 대학원 전기공학박사 과정을 수료하던 1993년도에 병역특례로 대우전자 모니터연구소에 입사해서 1999년까지 약 6년간 근무했다. 소중한 경험이었고 또한 셀런을 있게 한 곳이기도 했다.

 “박사요? 하하하, 전기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지만 PC 모니터 박사가 됐어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갖가지 개발 용역을 도맡아 했다. 특히 대우전자에서 다양한 모니터를 개발, 분석도 해봤다.

 “돈을 벌어야 했지요. 이제는 나도 자체 아이템을 가지고 대량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셀런을 세우게 됐습니다.” 자신이 있었다. 타고난 사업수완이 있었기에 자신을 믿었다.

◇시련은 있지만 좌절은 없다

 1999년 셀런TV를 설립했다. 인터넷TV 사업을 시작했는데 경영을 너무 몰랐다. 조그만 구멍가게로 갖게 되면서 자신감부터 감이 달랐다. 이제는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인터넷TV 시장이 형성되기 전이어서 매출도 없었다. 남들보다 먼저 앞을 내다보는 시각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돈을 빌려 직원들 급여를 지급했다. 주주들이 자금 회수를 요구해왔다.

 “하루를 30시간처럼 살았습니다. 돈이요? 정말 무서웠지요. 먹고 자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정말 사업에만 매달렸습니다.”

 생활의 무게감이 너무 무거워 마음은 버석버석 말라만 가고 머리와 어깨는 자꾸만 아래로 푹푹 꺼져만 갔다. 배낭을 하나 달랑 메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천상 사업꾼이었다. 하루를 30시간처럼 사는 것이 그의 에너지를 바닥나게 하지 않는 노하우였다.

 2004년부터 흑자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저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됐습니다. 사업을 하는 데 호소는 필요가 없었지요. 돈과 경영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돈을 돌려달라고 나섰을 때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 텐데 왜 자금회수를 할까?’ ‘본인들이 투자해놓고 왜 돈을 돌려달라고 할까?’ 이런 의구심도 들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역지사지가 큰 교훈이 됐습니다. 사업이 안 돼서, 정말 돌려줄 돈이 없을 때까지 투자자에게 최선을 다해 이익을 나눠 줘야한다는 의무감을 그때 알았습니다.”

 과도기를 배움으로 극복한 그였다. 

 ◇사업은 하나의 신뢰다

 “사람도 돈도 모두 신뢰로 만들어집니다.”

 김 부회장은 아직 셀런이 시장에서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소비자의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고 선택하면 언젠가는 시장의 믿음을 얻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기회를 찾고 발굴하고 결정해 나가는 것이 회사의 ‘신뢰 쌓기’라는 것이다.

 일본은 품질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시장이다. 프로젝트를 하려면 최소 2년이 걸린다. 신뢰를 쌓으면 평균 10년은 계속 거래를 한다. 셀런은 지금까지 일본업체와 10여년 이상 거래한다.

 “남들이 보기에 M&A도 잘하고 공격경영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셀런은 상당히 보수적인 기업입니다. 삼보컴퓨터를 인수할 때도 그랬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것이 제 경영방침입니다.”

 삼보를 인수할 때 산업은행과 기업은행도 50%의 지분을 투자했다. 보수집단인 은행이 선뜻 투자에 나선 것은 삼보의 미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회사는 수익창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해 내는 연속성의 기업이 돼야 하고 그 수익을 사회에 되돌려 줘야 한다는 것.

 김 부회장은 셀런은 단순한 셋톱박스 업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솔루션 개발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솔루션 매출도 늘어나고 있다. 박스장사만 하면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턴키로 공급하는 사이트를 중심으로 경영의 집중과 선택을 택했다.

 “평생을 함께 할 친구를 만들고 싶다면 먼저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세요.” 머금은 입가에 행복함이 가득 묻어났다. 

 ◇골프는 No, SF영화는 OK  

그의 취미는 음악과 영화감상이다. 특이했다. 대부분의 CEO는 골프와 같은 스포츠를 취미로 갖고 있지만 그는 달랐다. 매트릭스 같은 상상력을 키워주는 SF영화를 즐겨 본다. 천상 엔지니어다. 음악도 역시 정적인 클래식을 좋아한다. 대학 때 방송국 엔지니어 출신이어서 이젠 클래식이 몸에 배어 있다.

 삼보를 인수하고도 왜 직급이 부회장이냐고 묻자 “제 주변에 성공한 연세 높은 분들이 회장으로 계신데 감히 어린 나이에 회장으로 올라서기에는 쑥스럽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겸손함이다. 직함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한 회장이 많은데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늙어서도 계속 연구개발분야에 몸담고 있을 겁니다.” 노후의 모습을 상상해 달라는 질문에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사실 인공지능 분야에 관심이 많다. 셋톱박스와 특별히 관련이 없지만 인공지능이 본인에게 딱 맞는 적성이란다. 무엇인가 진화에 의해서가 아닌 발견에 의해서 인공지능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SF영화를 좋아하는 부회장다운 생각이다.

 “단기적으로 회사를 매각하고 단기적인 자금 회수 경영이 아닌 장기적인 계획에 의해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장기적 비전을 가진 사업가로서 실적으로 시장에 보여주겠습니다.”

 셀런 김영민을 볼 때 ‘롱텀’(장기적인) 파트너로 보아 주기를 기대한다는 의미다.

 ‘10년을 투자할 주식이 아니라면 단 1분도 들고 있지 말라’라는 워런 버핏의 말을 인용하는 그의 얼굴에는 강인함까지 엿보였다.

 “다섯 살 된 어린 딸과 아내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일 때문이라는 핑계로 많은 시간을 함께 못하고 있지만 시간을 내서 꼭 여행을 갈 계획입니다.”

 일은 삶의 귀한 양념이다. 껍질 벗겨져 눈물나도록 시린 양파일 수 있고 물엿 같은 달콤함일 수도 있다. 행복한 삶의 쉼터, 가족. ‘일벌레’인 김 부회장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올 가을에는 보고 싶다.

 ◇김 부회장은…

 무등산 수박으로 유명한 광주가 고향이다. 1967년 9월 10일생이다. 전남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김 부회장은 같은 학교에서 전기공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천성이 엔지니어다 보니 병역특례로 대우전자 모니터연구소에서 약 6년간 근무했다. 이후 지난 1999년 현 셀런의 전신인 티컴넷을 설립, 인터넷TV 분야에 뛰어들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SF 영화를 좋아한다. 친구 같은 아내와 자신을 쏙 빼닮은 다섯 살 된 딸이 무척 자랑스럽다. 기업을 하면서 얻은 게 있다면 사업과 돈, 사람은 모두 신뢰에서 나온다는 ‘신뢰경영’이다.

[박경림의 300mm 인터뷰] 오세훈 서울시장 “잘생긴 외모 때문에


'박경림의 300mm 인터뷰' 세 번째 손님은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한 눈에 봐도 명석한 두뇌에 매력있는 이 분을 만나는 일은 생각 만큼 쉽지 않았다. 홍보 담당관과 비서실을 통해 몇 차례 약속을 잡고 인터뷰 컨셉트에 대한 상세한 개요도 미리 전달했다. 지난 달 28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서울시청 별관 시장실에서 만난 오 시장은 밝은 미소에 따뜻한 손으로 악수하며 나를 맞았다.

인터뷰가 이뤄진 시장실 내부 분위기도 이색적이었다. 보통 인터뷰는 인터뷰 상대와 단둘이 있거나 혹은 매니저 1명 정도만 옆에 앉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 인터뷰 때는 접견실 벽쪽 의자에 서울시청 관계국장과 팀장 7명이 앉아 인터뷰를 지켜봤다. 양복입은 공무원들이 인터뷰 도중 함께 웃다가 부지런히 메모를 하는 풍경이 이채로웠다.

이 직원들이 정숙하게 또 가끔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리액션을 해주는 바람에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 같은 화기애애함도 묻어났다. 여러 사람들이 오 시장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어 약간은 긴장됐던 것도 사실이다.

오세훈 시장은 참 달변가였다. 서울시 홍보에 도움이 될 만한 얘기엔 방점을 콕콕 찍어 적극적으로 피력할 줄 알았고, 내가 봐도 약간 곤란한 질문은 요리조리 지혜롭게 피해갔다. 살아온 얘기를 할 때엔 소탈한 웃음에 인간적인 매력까지 물씬 풍겼다.


"박경림씨 되게 깡촌에서 살았군요"

박경림: 시장님. 안녕하세요?

오세훈: 경림씨의 인터뷰 꼭지 이름이 '300mm 인터뷰'던데요? (의자를 당기며) 그럼, 30cm라는 뜻이잖아. 30cm 만큼 더 가까이 앉아야 되겠네. 가까이 오세요. 어서.(처음부터 웃음)

박: 워낙 언변이 좋은데다 말을 안 하고 계셔도 멋있어서 오늘 제가 더 긴장하고 있습니다. 시장님께서는 특히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더군요.

오: 네. 디자인에도 원칙이 있어요. 서울은 깊이 음미할 만한 문화를 가진 도시에요.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것. 이것이 디자인 변화의 기본 원칙입니다. '비워낸다, 통합한다, 또 더불어한다' 라는 원칙이죠.

박: 제가 어릴적 자란 고향 시골길이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조금씩 다른데 그게 왜 그런고 하니, 국회의원들이 4년에 한 번씩 공약을 하세요. 길을 새로 깔아주겠다고. 이번 임기 국회의원이 2m 깔아주고 중단하고, 그 다음 국회의원이 또다른 모양으로 4m 만들고 그만두시고 그렇게 20년에 걸쳐서 그 길이 완성이 됐어요.

오: (한참을 웃으며) 어떤 정책이든 꾸준하게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는 알겠는데 자꾸 마음 속에 딴 생각이 드는 것이 '박경림씨가 되게 깡촌에서 태어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대체 어디에요? 거기가?

박: 김천 방아치요. 직지사라는 절 옆인데 제가 어릴 때 잠깐 살았죠. 제가 어릴 때부터 칡도 캐면서 아주 강하게 컸습니다(쇠소리 껄껄 웃음).

"축구 킥 솜씨는 박지성과 비슷"

박: 이번에 뉴스로도 접했지만 박지성·비와 한강에서 축구 대결도 하셨죠.

오: 아, 그날 보니 박지성 선수 킥으로 공이 날아가는 거리나 내 거리나 비슷하더라고요. 비도 저보다 조금 덜 나간 것 같고. (박경림에게) 강조해서 적어주세요.

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EPL)와 스폰서십 계약을 해서 1년에 27억원씩 맨유에 지급하잖아요.

오: 맨유 경기는 유로 비젼을 통해 한 번에 1억명 이상이 시청합니다. 27억원을 투자해서 연간 300억원 정도의 마케팅 효과를 거둬들이는 거죠.

박: 몇 년 전 시장님과 함께 청계천 걷기 대회에 나갔는데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걸을 수가 있어요?

오: (쑥스러워하며) 미안합니다. 내가 아내랑 연애할 때부터 들었던 잔소리가 '제발 천천히 좀 걸어라'였어요. 데이트 할 때부터 항상 우리 아내는 20m 뒤에 와요.

박: 잘생긴 외모 때문에 방해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오: 글쎄. 손해 보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선입견도 있겠지요. 예를 들면 '예쁜 여자는 공부를 안 할 것 같다'는 그런 편견이겠죠.

박: 맞아요. 저도 그 말씀을 꼭 믿고 싶습니다. 저는 얼굴이 예쁜데 착하고 집안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애를 보면 혼자서 '저 아이는 몸에 완전 큰 점이 있을 거야'하고 생각하거든요. 혹시 콤플렉스가 있으세요?

"허약 체질이 콤플렉스, 아내는 나보다 바빠"

오: 있죠. 몸이 아주 허약했어요. 키가 181cm인데 몸무게는 대학교 1학년까지 53kg였죠. 별명이 와리바시(젓가락의 일본말), 해골박쥐, 잠새우였어요.

박: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보약 같은 걸 사모님이 챙겨주시나요?

오: 요즘 점심식사 후에 민들레 즙을 먹고 있어요. 어디에 좋은 건 지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 집사람은 살뜰하게 챙기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에요. 자기 일이 무척 바빠요.

박: 여기서 잠깐, 유행어 하나 구사해도 되겠습니까? 이것 참 씁쓸하구만~.(일동 웃음)

오: 부부라도 일정 부분을 서로 포기하고 체념하면 오히려 편해집니다.

박: 그럼 사모님은 로라 부시가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스타일인가요?

오: 그렇게 비유하긴 힘들지만 대학(세종대 영화예술과) 연극 연출과 교수다 보니까 낮에는 강의하고 저녁 때는 연습을 시켜야 하니 바쁘지요. 극단 물결이라고 자기 연극팀도 만들어야 하고 보통 퇴근 시간이 12시가 넘어요. 본인이 피곤하기 때문에 제가 피곤할지 어떨 지를 걱정할 겨를이 없어요.(웃음)

박: 저는 가끔 남편이 저를 어떻게 평가할까 두려울 때가 있는데 사모님은 어떻게 말씀해주시는 편인가요?

오: (궁리 끝에) 제가 하는 일을 잘 알아주면 좋겠지만 아마 보통 시민들이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나와 관련된 소식을 접하는 평균치 만도 못 볼 거에요. 마음을 접고 서로를 위해 약간은 포기하는 건데 저도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영화배우 한번 해보는 게 꿈입니다"

박: 인간 오세훈으로서의 꿈이 뭔가요?

오: 공직생활 그만두면 영화 배우를 해보고 싶어요. (조심스럽게) 성격파 배우 같은 거요.

박: 성격파 보다는 멜로가 딱이신데요?

오: 아니에요. 조폭 두목 같은 역할 있잖아요. 대사 없이 무게잡는 그런 역할이요.

박: 아, 너무 착하게 생긴 남자 주인공이 '너, 그놈 단박에 죽이고 와!'라고 말하는 그런 역할이요? 사모님이 연출을 하시니까 사모님께서 하시는 연극에서 트레이닝 받으면 좋겠는데요?

오: 집사람이 하는 연극 무대에서 연습을 하고 나가면 좀 도움이 되겠죠.

박: 시장이 되신 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오: 맨유에 27억원 스폰서십 계약을 하는 것을 두고 처음에 말이 많았어요. 왜 K리그도 아니고 외국에 돈을 퍼주냐는 비난이었죠. 특히 FC서울 팬들이 화가 많이 났어요. 그런 것도 모르고 하루는 FC 서울 경기에 시축을 하러 갔어요. 마이크를 잡는데 팬들이 호각을 불기 시작하더라고요. 속으로 나를 굉장히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는데 실은 연설을 방해한 거더라고요.

박: 그 뒤로 어떻게 됐어요?

오: 참 우스운 게 그런 여론이 하루아침에 좋은 쪽으로 뒤집어졌어요.

박: 어떻게요?

오: 맨유 호날두 100호골이 나온 날, 그 장면이 지구촌에 생생히 중계가 된 겁니다. 골이 들어가는 쪽 전광판에 'VISIT KOREA, DISCOVER SEOUL(한국을 방문해서 아름다운 서울을 발견하세요)'라는 광고가 나왔어요. 27억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결과는 헤피엔딩이었어요.

박: 아, 저보다 어렸으면 꼭 한번 안아드렸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웃음).

"서울시에 대해 궁금한 분들, 제 블로그에 오세요"

박: 어릴 때는 어떤 아들이셨어요?

오: 저야 뭐 범생이었죠.

박: 부모님이 물려준 가장 큰 인생 교훈은 뭐죠?

오: 책 읽는 부모 밑에는 그런 아이들이 나오기 쉽고, 또 거짓말 많이 하는 부모를 둔 자식들은 남 속이는 걸 우습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죠. 가장 좋은 교육은 솔선수범입니다.

박: 혹시 너무 바빠서 원망받는 아버지는 아니셨어요?

오: 딸만 둘인데 장녀는 대학 졸업했고 둘째가 대학교 4학년이에요. 정치 그만두고 2003년 쯤인가 2년 정도 쉬었는데 그때가 가장 아이들과 행복했습니다. 휴일마다 가락동 시장에 가서 회 먹고 꽃게를 사다가 삶아먹기도 했죠.

박: 서울 시민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신다면요?

오: 요즘 서울시에 가볼 만한 곳이 참 많습니다. 최근 블로그에 '서울에서 여름 휴가 즐기는 법'을 올렸는데 반응이 꽤 좋았어요(웃음).

박: 서울 광장을 시민들에게 다시 공개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오: 영화 배우가 영화를 촬영한 뒤 시사회를 앞둔 마음이랄까. 설레임 같은 게 컸습니다. 서울광장 외에 곧 완공되는 프로젝트가 4~5건 정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에 더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TV 뉴스에서 오세훈 시장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다지 서울시의 발전을 기대하지 않았다.

뭐랄까. 얼굴에서 풍기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랄까. 그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여러 '수장'들과는 다르게 그는 키가 크고 피부가 희며 잘 생기기까지 했다. 왠지 얼굴 잘 생긴 가수가 나오면 노래를 별로 기대 안 하게 되는 심리랄까.

그런데 이상했다. 서울시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서울은 변하고 있었다. 서울 안에서 궁금한 건 뭐든지 물어볼 수 있다는 다산 콜센터가 생기더니 갑자기 반포대교에서 아름다운 조명과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동대문운동장이 없어지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생기더니 한강 둔치에는 콘크리트를 거둬내고, 자연 경관을 살린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을 처음 만난 건 2년 전 청계천 걷기대회에서였다. 함께 걸으며 오시장께 물어볼 질문들을 머릿 속에 몇가지 정리해 두었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려던 찰라 뭐가 그렇게 바쁘신지 이미 시장님은 나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정말 빨라도 너무 빨랐다. 처음엔 나도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차이는 더욱 커졌다. 목표 지점에 다달았을 때 시장님은 이미 한참 전에 도착한 듯 시민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오세훈 시장께서 "박경림씨, 완주하셨네요? 이렇게 청계천도 많이 사랑해 주시는데 서울시 홍보대사로도 일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을 걸어줬다.

나는 "저야 무조건 좋죠. 연락주세요"라고 답했지만 사실은 예의상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바로 다음날 서울시에서 매니저를 통해 홍보대사 섭외 연락이 왔다.

나는 기회가 되는대로 많은 서울시 행사에 참여했다. 특히 작년에 참석한 서울시 창의 발표회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딱딱할 줄로만 알았던 서울시 각 부서에서 업적이나 업무 아이디어 등을 내는 자리였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준비와 발표로 재밌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오세훈 시장이 있었다. 그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이었다.

이번 인터뷰 역시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서울시의 정책을 말할 땐 강렬한 눈빛으로 열정이 넘쳤고, 가족과 부모님을 얘기할 때는 그냥 옆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앞으로 더욱 더 예쁜 옷을 입을 서울시를 기대하게 됐다.

또 한가지. 훗날 오세훈 시장의 영화배우 데뷔도 기대된다. 분명 이 분이 또 한번 기대 이상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오세훈 시장과 인터뷰가 잡혔을 때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탤런트 김선아였다. 김선아는 SBS 수목극 '시티홀'에서 여자 시장으로 출연했다.

인터뷰에 앞서 김선아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언니, 제가 지금 오세훈 시장님을 인터뷰 하는데 혹시 궁금한 거 없어요?" 잠시 후 김선아로부터 답문자가 도착했다. "시청에서 일하는 국장들이 일괄 사표 내면 어떻게 하실 건지 꼭 물어봐줘."

극 중 김선아가 인주시 시장으로 근무할 때 부처 직원인 국장들이 항명 차원에서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당시 감정 표현을 어떻게 할지 몰라 고민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김선아의 질문에 오세훈 시장이 허를 찌르는 답변을 내놓았다.

"저라면 그럴 때 쉽게 세대 교체를 할 것 같은데요. 뭐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제 지론이거든요."

옆에서 인터뷰를 참관하던 직원들의 얼굴에서 묘한 긴장과 웃음이 교차했다. 일부는 헛기침을 하며 머쓱해 했고, 비교적 낮은 직급의 직원은 큭큭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오세훈이 박경림에게
“경림씨 출산 후 17kg 감량 비결 알려주세요”


인터뷰를 하면서 그렇게 몇 번씩이나 크게 웃었던 적은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경림씨의 밝은 성품 만큼이나 무척 유쾌했던 인터뷰였습니다.

경림씨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서울시에서 펼치는 사업들이 무척 다양한데 정작 그 내용을 잘 몰라서 혜택을 못 누리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위해 서울시 홍보대사로서 늘 앞장서 주는 열정에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칭찬이 자자한지 모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경림씨에게는 나이답지 않은 넉넉한 아우라가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좋은 기운이 늘 유지될 수 있도록 건강도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출산 후 두 달 만에 17kg을 감량했다고 하더군요. 저도 올 여름 휴가 때 다이어트를 좀 해볼까 하는데 그 노하우를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나중에 또 뵈면 그 땐 꼭 좀 알려주세요!

■오세훈 시장은?

- 생년월일: 1961.1.4
- 신체: 181cm·77kg
- 가족: 아내 송현옥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 2녀
- 학교: 중동중-대일고-고려대 법학과
- 경력: 제26회 사법시험 합격(8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97~04) 숙명여대 법학과 겸임교수(97~98) 16대 국회의원(00~04) 한나라당 미래연대 공동대표(01~02) 강원도 속초 철인 3종 경기 출전, 3시간 25분 14초로 완주(04) 서울특별시 33대 시장(06~현재)

2009년 8월 3일 월요일

월급 200만원 29세 남성, 재무설계 하고 싶은데…

[재테크 Q&A] "저축액 50% 투자형 상품으로 갈아타길"
소득공제 혜택 비과세 장기 주식형펀드에 월71만원을
연금저축 월25만원으로 증액… 청약저축 10만원 유지

Q: 올해 29세 남자 직장인입니다. 월급으로 200만원 정도를 받고 있습니다. 매달 청약저축 10만원, 연금저축 12만원, 적금 120만원, 책 구입비 10만원, 기타 48만원 등으로 쓰고 있습니다. 현재 신협 통장에 2,000만원을 모았고 2년 뒤 결혼을 할 계획입니다. 현재 120만원씩 들어가고 있는 적금을 펀드나 주식에 투자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지 고민입니다.

A: 통상 미혼 직장인인 경우 본인 소득의 50% 이상 저축하기를 장려하는데 의뢰인의 경우 29세 남자 직장인으로 본인 소득의 70% 이상(저축 142만원/소득 200만원)을 저축하고 있어 소득대비 저축비율이 직장인 평균에 비해 매우 양호합니다.

현재 저축내용을 보면 청약저축 10만원, 연금저축 12만원, 적금 120만원으로 적립 중인데 의뢰인의 연령 등을 감안하면 포트폴리오 수정이 필요합니다. 요즘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 연리 3~4%의 정기적금에 본인 저축액의 대부분인 85%(적금납입액 120만원/총저축액 142만원)를 납입하는 부분부터 수정이 필요합니다.

재테크투자 방법 중 공격적인 투자형 상품의 적정보유비율을 구하는 간편한 방식으로 100세에서 본인의 나이를 차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의뢰인의 경우는 '100-29=71'이므로 70% 정도를 투자형 상품에 투자하는 게 적당합니다.

의뢰인의 경우 현재 적립식펀드 등 펀드투자가 시장에 재테크방법으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전혀 펀드를 투자하지 않고 있어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의뢰인의 과거 투자경험 등을 감안한 수정 투자성향은 연령 평균치인 공격투자형보다 다소 낮은 위험중립형으로, 현재 저축액의 50%(월 71만원)를 투자형상품에 투자하기를 권해 드립니다.

세부 내용으로 현재 저축 중 주택청약에 필요한 필수 상품인 청약저축 10만원은 유지하고, 세테크 상품인 연금저축은 소득공제가 연간 300만원(월 25만원)까지 가능하므로 12만원에서 25만원으로 증액하시길 권합니다.

36만원은 장기주택마련저축 가입대상자면 소득공제상품인 장기주택마련저축 상품에 36만원 신규가입하고, 대상자가 아니면 적금상품에 납입하시길 추천합니다. 매월 투자가능액인 71만원은 적립식펀드 상품으로 2009년 가입분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는 비과세장기주식형 국내펀드 가입을 권해드립니다.

최근 금융위기로 펀드상품에 투자해 큰 손실을 경험한 분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적립식 투자자의 경우 최근 주식시장의 회복으로 고점에 가입하신 분들도 이미 원금을 회복하고 수익을 내고 계십니다. 이처럼 적립식 투자의 경우 목돈을 투자하신 경우에 비해 투자시기의 분산이 이뤄져 투자위험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최근과 같이 경기회복 시기가 불투명하고 주식시장도 단기반등에 따른 하락가능성 등으로 투자시기 결정이 쉽지 않을 때야말로 적절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2년 후 결혼을 계획하고 계신 분으로, 신협 통장에 예치 중인 2,000만원 목돈투자 방법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 통계자료에 의하면 2007년 평균 결혼비용이 1억7,000만원이며 이중 집 마련비용으로 1억2,000만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신혼집의 경우 구입, 전세, 월세, 혹은 부모님의 도움 등 많은 경우가 있으나 2년 후라는 시간 등을 감안할 때 현재의 종잣돈 2,000만원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투자를 권합니다.

보유 중이신 자금 모두를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도 있겠으나 본인에게 맞는 투자성향(위험중립형)등을 감안 시 우선 1,000만원은 향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 등을 감안해 국내 주식형에 500만원과 성장 가능성이 큰 이머징시장(중국을 포함한 브릭스시장 등)에 500만원으로 나눠 투자하기를 권유합니다.

나머지 1,000만원은 채권형 상품이나, 주식보다 위험이 적은 ELD, ELS등에 투자하기를 추천합니다. 채권형 상품으로는 국내 채권형의 경우 향후 경기회복에 따른 금리인상 가능성 등을 감안해 투자수익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 향후 달러가치 하락 시 채권 수익 외에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 글로벌채권상품을 권유합니다.

ELD의 경우 국내 모든 은행에서 주가지수연동예금형태로 모집기간을 두고 수시 판매중인 상품으로 원금보장의 장점에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가능성을 지닌 상품이며, ELS는 증권사에서 판매중인 상품으로 원금보존추구형에서 고수익추구형까지 다양한 상품이 있습니다.

의뢰인이 고려하고 있는 주식시장에서 직접 투자하는 것은 투자경험 등을 감안할 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개인보다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운용하는 펀드 가입 등을 통한 간접투자 방식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만약 직접 투자를 한다면 개별주식에 비해 위험이 적은 ETF(상장지수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을 추천합니다.

조현일ㆍ한국씨티은행 상록수지점 팀장

2009년 7월 29일 수요일

기업 시장도 '구글 태풍' 강타할까

클라우드컴퓨팅·UC 시장 노려…기존 강자들 '긴장'

소비자 시장에 이어 기업 시장에서도 구글 태풍이 불 것인가?

주로 일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오던 구글이 이젠 기업 시장에도 눈을 돌리고 있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관련 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구글이 최근 발표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클라우드컴퓨팅과 기업용 통합커뮤니케이션(UC) 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는 것.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구글이 기업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을 경우 상당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구글의 기업용 솔루션들은 기존 제품들과 달리 웹에서만 제공될 예정이다. 기업용 시장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되는 셈이다.

구글의 기업 시장 공략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 시스코 등 기존 강자들은 구글을 견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크롬OS-구글앱스로 클라우드컴퓨팅 시장 노려

구글은 최근 PC용 운영체제(OS) '크롬OS'를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 베타서비스였던 웹 오피스 프로그램 '구글독스' 정식 서비스로 변경했다. 이런 조치들은 클라우드컴퓨팅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클라우드컴퓨팅이란 업무에 필요한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 저장장치 등의 IT 자원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웹에 접속해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 개인·개발자·교육 분야 등에도 클라우드컴퓨팅이 적용되고 있으며, 기업 시장에서도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분야다.

크롬OS는 '웹 접속'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PC OS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MS 윈도와는 컴퓨팅 방식이 다르다. 윈도 기반 PC는 OS 자체에 오피스 프로그램 등의 애플리케이션들을 탑재해 사용하지만, 크롬OS 기반 PC는 웹 상에서 제공되는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사용하고, 데이터도 웹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클라우드컴퓨팅이 지향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구글은 이미 클라우드컴퓨팅 사업의 일환으로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인 '구글앱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웹 오피스 '구글독스'는 구글앱스에 포함된다. 사용자들이 크롬OS를 탑재한 PC로 구글앱스에 접속해 클라우드컴퓨팅을 하는 모습이 구글이 원하는 그림일 것이다.

◆구글웨이브-구글보이스로 UC 시장 진출

구글은 또 9월 말부터 웹 기반 협업 툴 '구글웨이브'베타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구글웨이브가 기업용 UC 시장 진출을 노리는 구글의 야심작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UC란 직원들 간의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툴로, 전화·이메일·채팅·화상회의 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구글웨이브는 구글의 이메일인 지메일, 메신저 구글톡 및 SNS 서비스 등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을 웹에서 단일플랫폼으로 제공하는 협업 툴이다. 참여자들이 문서나 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공동 작업·편집할 수 있게 해준다.



현존하는 UC 솔루션들은 주로 패키지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제공되는 반면 구글웨이브는 웹 기반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클라우드컴퓨팅 등 웹 기반 온디맨드 형태의 솔루션이 각광 받고 있기 때문에 구글이 구글웨이브를 UC 솔루션으로서 마케팅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일 수 있다.

또 구글웨이브는 이메일, 메신저, SNS 등 일반 사용자들에게 익숙한 서비스들을 그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복잡한 교육절차를 줄여줄 수 있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구글웨이브가 새로운 기업용 UC 솔루션으로 각광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구글이 자사의 인터넷전화 서비스 '구글보이스'도 UC 솔루션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새 패러다임에 경쟁사들 '긴장'

구글이 시장에 본격 뛰어들게 된다면 '웹 기반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구글이 지향하는 방식이 당장 시장을 뒤집어 놓을 순 없겠지만, 패키지 소프트웨어 방식을 지향하는 경쟁사들에게 긴장을 주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실제로 MS는 웹 기반 OS '가젤'을 개발한다고 밝혔으며, 또 구글독스를 겨냥한 웹 기반 문서작업 솔루션 '오피스 웹 앱'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구글의 크롬OS와 구글독스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인 패키지 소프트웨어 업체인 MS로서는 웹 기반 소프트웨어 시장이 형성되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겠지만, 구글의 침투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UC 시장 강자인 시스코도 구글의 UC 시장 진출 전망에 대한 긴장감을 표한 바 있으며, 구글보이스를 겨냥해 '가상음성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구글과의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앞으로 회사 업무에도 구글의 솔루션들이 유용하게 쓰이게 될지 주목된다.


강현주기자 jjoo@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