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4일 금요일

<재벌가 얽히고 설킨 혼맥 21탄> 현대그룹

<재벌가 얽히고 설킨 혼맥 21탄> 현대그룹
3세에 이르러 재계와 통혼, 쌍용그룹·LG그룹 가문과 연예결혼

재벌들이 혼사의 대상으로 꼽는 집안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
최근 재벌들의 혼맥도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혼인의 대상 집안과 미치는 영향에 쏠리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국내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맥도를 보면 이해관계에 얽힌 혼사가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말로 빗대기도 한다. 유력한 집안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城)을 더욱 견고히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혼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의 결정체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에선 이에 재계를 움직이고 있는 재벌가문의 혼맥 실체를 집중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한국경제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기업이 있다. 바로 현대그룹이다. 지금은 형제들간의 분가와 분리로 재계 서열상으로는 다소 밀려 있지만 이들이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그늘에 있었을 때만 해도 현대그룹은 삼성그룹과 재계 수위를 다퉜다.

형제간 뿔뿔이 흩어진 현대그룹

특히 개발경제 시절 현대그룹은 한국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경쟁관계였던 삼성그룹이 소비재를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을 당시 현대그룹은 각종 국가 기간산업건설을 주도하며 인프라망을 형성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현대사에서 결코 그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현대그룹이 역대 정권과의 불미스런 사건들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들어서도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대북송금 사건에 휘말려 당시 그룹회장이었던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의장이 자살하는 등 순탄치 않은 험로를 걸어왔다.
내부적으로도 고 정 명예회장 후계를 둘러싼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와 현대그룹 경영에 커다란 타격을 주기도 했다. 결국 이 같은 불협화음은 오늘날 형제간의 분할이라는 구도로 재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혼맥은 여전히 창업주인 고 정주명 명예회장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금의 현대그룹이 아니라 분리 이전의 현대그룹과 고 정 명예회장, 그리고 그 자녀들의 혼맥을 살펴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의 성장사와 함께 창업주인 고 정 명예회장의 기업인으로서의 삶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불과 30여년만에 국내 정상의 기업인으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때문에 그의 진면목을 글로 표현하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고 정 명예회장은 지금은 북한땅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부친 정봉식씨와 모친 한성실씨 사이에서 1915년 11월25일 6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송전공립보통학교 졸업 이후 훌륭한 농군으로 만들겠다는 부친의 뜻을 거역한 채 3년 동안 네 번이나 가출을 시도, 결국 19살 늦은 봄 인천에서의 부두노동자로 외지생활을 시작했다. 농사품앗이, 건축공사장 인부, 공장견습공 등을 거쳐 마침내 쌀도매상인 부흥상회의 배달부로 서울생활을 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 고 정 명예회장은 이 상회를 인수, 경일상회를 설립하고 자동차수리공장인 아도(Art)서비스를 설립, 훗날 현대토건사를 거쳐 오늘날 현대그룹의 기틀을 닦았다.(고 정 명예회장의 성공신화는 TV 등의 각종 매스컴과 출판물이 워낙 풍부한 탓에 여기에서는 더 이상의 언급을 생략한다.)

자손 풍성한 다산(多産) 가문

고 정 명예회장의 집안은 여느 재벌그룹과는 달리 다산(多産) 가문으로 꼽힌다. 그의 형제들 뿐 아니라 자녀까지도 그 숫적인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현대그룹 경영에 참여해 현대그룹 성장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리고 형제들인 인영·순영·상영씨 등은 일찌감치 분가해 별도의 그룹을 이루고 형과 함께 재벌총수의 대열에 나란히 서기도 했다. 물론 이 가운데에는 부도와 함께 현재는 그 명맥조차 찾기 힘든 그룹도 없지 않다.

군단 방불케 하는 대가족

첫째 동생인 정인영 전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1953년 현대건설 입사 이후 20여년 동안을 형과 함께 하다 중동 진출 신중론으로 이견이 발생, 결국 한라그룹을 설립해 독립했다. 그러나 한라그룹은 IMF 직전 자금난을 겪으며 부도로 무너지고 말았다.
둘째 동생인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과 셋째 동생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넷째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 등도 1950년대 후반 현대그룹에 합류, 자신의 가산을 처분하는 등 형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특히 정세영 명예회장은 별명이 ‘포니 정’이었을 만큼 현대자동차의 성장을 이끌었던 주역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8남매로 형제들이 많았던 탓에 고 정 명예회장의 일가는 직계와 방계를 합할 경우 LG그룹 못지않은 대군단이 탄생하게 된다. 고 정 명예회장만도 8남1녀의 자녀를 두고 20명이 넘는 친손자(녀)를 두고 있다. 또 이들이 결혼해 맞이한 부인과 남편, 그리고 증손자(녀)까지 합하면 대가족이라는 표현 자체가 오히려 옹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일부 자녀들의 삶은 그리 평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고 정 명예회장이 장수를 했던 탓에 사고로 동생과 자식을 앞세워야 했던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야 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중이었던 넷째 동생 신영씨를 1962년4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리고 20년 뒤 4월에는 인천제철(현 INI스틸) 사장으로 재직중이었던 장남 몽필씨를 역시 교통사고로 잃었다. 8년 뒤 4월에는 넷째 아들 몽우씨가 또 자살로 사망함으로써 고 정 명예회장을 슬픔에 빠뜨렸다.
공교롭게도 고 정 명예회장을 앞서갔던 이들은 모두 4월에 변을 당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8월 사망한 다섯째 아들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의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 고 정 명예회장에게 교통사고와 자살은 떠올리기도 싫은 단어가 돼버렸다.

족벌경영 싫어했지만 동생 ·자녀 경영에 참여시켜

고 정 명예회장은 족벌경영이란 말을 무척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룹 경영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던 형제들이 각각 분가를 통해 빠져나가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2세들을 경영일선에 참여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장남의 갑작스런 죽음은 모든 아들들을 경영에 참여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각자의 개성에 따른 역할분담이 확실했고, 이후 분가도 이에 따라 이뤄졌다.
이 같은 고 정 명예회장의 성품 탓이었을까. 국내 최대 재벌그룹의 혼맥도라고는 의아할 만큼 현대그룹의 혼맥도는 초라하다.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권문세가와 통혼을 할 수 있었음에도 자녀들의 결혼에서 고 정 명예회장의 입김은 멀었다. 오히려 평범한 집안이 대부분이다.
혼맥도에서 직접적인 사돈관계를 맺고 있는 인사들 가운데 알려진 이름은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과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전부다.
맏며느리인 몽필씨의 부인인 이양자씨(1991년 사망)는 평범한 집안의 장녀로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고작이다.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동서산업의 오너인 이영복 전 회장은 이양자씨의 친정동생으로 고 정 명예회장은 장남의 처남에게 동서산업을 물려준 것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해석하고 있다.
둘째 며느리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부인 이정화씨와 셋째 며느리인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부인 우경숙씨의 친정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우경숙씨의 부친인 우호식씨는 현대그룹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다.
4남 몽우씨의 부인 이행자씨는 대학재학 중 연애를 거쳐 결혼했다. 역시 집안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섯째 며느리인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 현대그룹 회장은 현영원 전 신한해운 회장의 딸이다. 그러나 결혼 후 신안해운은 아세아상선(현 현대상선)에 흡수됐다. 이에 부친도 현대그룹 경영에 참여하다 현재는 용문학원 이사장으로 재직중이다.
또 현 회장의 모친 김문희씨는 김용주 전방(전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로 한국걸스카우트 총재, 용문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여성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과 전방 명예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김창성씨와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은 현 회장의 동생들이다.
여섯째인 정몽준 의원의 부인 김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가운데 막내딸이다.
일곱째 며느리인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부인 김혜영씨는 김진형 부국석면 회장으로 알려지고 있다.
막내며느리인 정몽일 현대기업금융 회장의 부인 권준희씨는 미국에서 사업을 했던 권영찬씨의 딸로 현대종합금융 고문을 역임했다.

“물질이나 정략이 개입돼서는 안돼”

유일한 사위인 정경희씨의 남편 정희영씨는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한 평사원으로 고 정 명예회장의 눈에 들어 사위로 발탁됐다. 고려대 출신으로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종합상사 사장을 거쳐 현대그룹에서 분가해 지금은 선진종합(주)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처럼 고 정 명예회장의 8남1녀 자녀들은 한결같이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결혼함으로써 현대그룹 혼맥도에 권문세가를 배제시키고 있다. 특히 평범한 집안 출신의 며느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고 정 명예회장은 오히려 사돈들을 현대그룹에 영입, 일자리를 주선했는가 하면 따로 기업을 운영하도록 배려하기까지 했다.
권영찬·현영원·이진호씨 등은 그룹(부)회장으로까지 추대됐고, 장정자·이영복·정희영·김영주씨 등은 독립을 주선해 주었다. 다만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과 노신영 전 국무총리는 퇴임 후에도 현대그룹에 영입되지 않았다. 관료 출신 사돈들을 그룹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은 것이다. 기업경영과 자녀들의 혼사를 전혀 연결하지 않고 철저히 배제한 사례다.
고 정 명예회장 스스로도 이 같은 혼사를 치뤘다. 연예결혼 찬미자로 불리었던 그는 부인인 변중석씨를 맞이할 때도 집안간 결정이 아니라 네 번째 가출 끝에 서울 싸전에서 재미를 볼 때 만나 결혼했다.
“결혼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에 물질이나 정략이 개입돼서는 안된다. 결혼은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어야 한다”는 게 고 정 명예회장 부부의 결혼관으로 알려진다.
고 정 명예회장은 자녀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면 결혼상대자를 집으로 데려오도록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간단한 인사만 받고 먼발치서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회없을 만큼 오래 사귀고 나서 결혼을 결정해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들이 1년에서 1년반 정도의 연예 끝에 “이 사람만한 이가 없다”는 말을 하면 그제서야 고 정 명예회장은 결혼을 허락했다. 이어 “평생 이혼 이야기는 내 앞에서 꺼내지 말라”는 다짐을 꼭 받았다.

재벌가 통혼 3세도 연예결혼

고 정 명예회장의 자녀들에 대한 결혼관은 3세에 이르러 조금 변질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3세에 이르러 권문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벌간 혼사가 많아진 것이다.
현대그룹 3세의 결혼에 첫 테이프를 끊은 고 정 명예회장의 맏손녀(몽필씨의 장녀) 은희씨는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평사원과 지난 95년 8월 결혼했다. 고려대 응용통계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대전자 기획실 경영관리팀에서 근무하고 있던 주현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주씨는 학교 졸업후 (주)대우에 2년 정도 근무하다 현대전자로 직장을 옮겼던 것으로 알려진다.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은희씨가 이화여대 불문과 2학년이었을 때 친구소개로 만나 연예를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몽필씨의 둘째딸인 유희씨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지용 용평리조트 상무와 결혼했다.
손녀사위가 되는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딸들은 의사와 현대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평범한 이들과 결혼한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다.
정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사장은 지난 95년 당시 강원산업 정도원 부회장의 맏딸 지선씨와 결혼했다. 정몽구 회장과 정도원 부회장은 경복고 선후배 사이로 이미 오래 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한다. 특히 정 부사장은 부인 지선씨의 사촌오빠인 정대우씨와 중·고교 동창으로 어려서부터 오누이처럼 자랐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교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산업은 2000년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INI스틸에 합병됐다. 정도원 부회장은 현재 삼표산업(주)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초라한 국내 최대 재벌가문 혼맥도

4남 몽우씨의 장남 정일선 비엔지스틸 부사장은 구은희씨와 결혼했다. 은희씨는 구인회 엘지그룹 창업주의 조카인 구자엽 희성건설 부회장의 딸로 두 사람은 미 조지타운대 유학도중 학생모임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
현대그룹 혼맥에서 한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장녀 숙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씨와 결혼했다. 또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 정몽익 금강고려화학 부사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씨의 딸 최은정씨와 결혼했다.
이처럼 현대그룹의 혼맥도는 3세에 이르러 재계와 통혼하며 2세 때보다 화려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전체적인 그룹 규모와 가족수를 감안하면 타 재벌그룹의 혼맥도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단순한 혼맥도가 그려진다.

한정곤 기자 allen@ilyosisa.co.kr” target=_blank>alle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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