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재계 알짜 혼맥
재벌들이 혼사의 대상으로 꼽는 집안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지난 1999년 11월 11일 한진그룹 탈세사건과 관련, 검찰의 조사를 받은 조중훈(趙重勳) 한진그룹회장이 임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귀가하고 있다.
최근 재벌들의 혼맥도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혼인의 대상 집안과 미치는 영향에 쏠리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국내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맥도를 보면 이해관계에 얽힌 혼사가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말로 빗대기도 한다. 유력한 집안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城)을 더욱 견고히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혼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의 결정체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에선 이에 재계를 움직이고 있는 재벌가문의 혼맥 실체를 집중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최근 한진그룹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유는 불법 대선 자금 수사 때문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비공식적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핵심 임원들도 검찰에 불려 다녔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정대철 의원에게 불법 대선 자금을 건네 준 혐의다.
일각에선 조 회장이 소환에 이어 사법처리까지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선 검찰 소환에 적극적으로 대처, 구속은 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들린다. 하지만 아직 명암은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조 회장은 지난 1999년 탈세사건 때도 연루돼 구속된 바 있다. 항공기 구매와 관련 리베이트를 받아 개인적인 용도로 빼돌려 6백29억원을 포탈한 것이 적발됐다.
한진그룹은 이로 인해 또 한번의 위기를 맞고 있다. CEO의 부재가 점쳐지고 있어서다. 조 회장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와 맞물려 한진가문의 혼맥도 또 다시 세간의 이목을 받고 있다.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혼맥
한진그룹 조중훈 가문은 사돈 가운데 언뜻 보면 당대 권력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집안의 혼맥도 자세히 살펴보면 전직 장·차관 등 명망가들이 수두룩하다. 스펙트럼처럼 다양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특징으로 꼽힌다. 재계 통혼도 그 중에서 한 몫을 차지한다.
조중훈 창업주는 1920년생이다. 부친 조명희씨와 모친 태천접씨의 4남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조 창업주는 25세에 평범한 집안의 김정일씨와 혼인, 4남1녀를 뒀다. 조현숙,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정호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후 결혼할 때 상류층 가정들과 다양한 혼맥 관계를 맺어 재계에서 화제가 됐다.
장녀 현숙씨는 한진그룹 태동과 인연이 깊다. 조 창업주가 한진상사를 설립하던 해인 1945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1968년 당시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던 이태희씨와 혼사를 치렀다.
이태희씨는 이상묵 전 홍아타이어 감사의 장남이다. 현재 대한항공 법률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지난 1983년 KAL기 폭파사건 당시 뒷수습에 앞장섰던 일로 세간에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사건 수습을 위해 맹활약했기 때문이다. 조중훈 가문은 법률가 사위 덕분에 대법원 판사를 지낸 한봉세 집안과도 줄이 닿는다.
지난 1970년 수출의 날 행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표창기를 받고 있는 조중훈회장. |
그러나 이는 서곡에 불과했다.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 형제들이 명문세가 집안과 사돈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1949년 서울 종로에서 누나 현숙씨와 3년 터울로 출생, 조 창업주의 후계자답게 결혼에서도 진면목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19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3남1녀 중 외동딸로 서울대 미대를 나온 명희씨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들은 부친들이 한 모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혼담이 오가, 중매로 맺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혼사는 재계에서 “장인 덕에 대한항공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란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운수업계 재벌인 한진과 운송관계 주무부처 교통차관 집안과의 혼사란 점에서 ‘정략결혼’이란 비난을 받았던 것이다. 재계 일각에선 이들의 결혼은 한진의 사업행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전 차관은 1976년 공직에서 물러난 후 한진그룹이 인수한 인하대 총장을 지냈다. 국민대와 중앙대 등 대학 총장만 세 차례나 역임했다. 행정가에서 교육가로 변신한 특이한 이력을 갖춘 것이다. 또 그는 신예용 안과의사와, 신 의사와 이종근 전 극동정유 부사장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어 한진가문과 극동가문도 연결된다.
롯데·LG가문과 사돈 지간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1951년생)은 형제들 중 유일한 국내파다. 국내 대학(고려대 경영학과)을 졸업하고 유학생활을 거치지 않았다. 그는 교육자 집안과 인연을 맺었다. 1950년대 경기고 교장을 거쳐 교육감으로 이름을 떨친 김원규씨가 장인이다.
아내인 영혜씨는 김 전 교육감의 차녀로 이대를 졸업했으며 연애결혼을 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당시 각종 스포츠를 즐기던 조남호 회장과 테니스장에서 만나 교제를 거쳐 결혼했다. 이 때문에 형제들 중 유일한 국내파이자 연애결혼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갖췄다. 그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학연을 바탕으로 한 두터운 인맥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진가문이 재벌가문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3남인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에 의해서다. 조수호 회장의 처가는 신격호 롯데그룹 집안이다. 부인 최은영씨의 어머니는 신 회장의 여동생인 신정숙씨이며 부친은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이다.
이 혼맥은 박남규 조양상선 회장을 거쳐 김치열 전 내무장관-김종대 전 대전피혁 회장-신덕균 동방유량 회장 집안까지 이어진다.
4남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 역시 명문 재벌 가문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이 통혼은 재계와 더욱 가깝다. 조정호 회장은 1987년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으로 아워홈 회장인 구자학씨의 차녀 명진씨와 결혼했다.
조중훈 가문은 이 혼사로 기업 간에도 교류가 많아졌다. LG가문과 사돈을 맺은 것은 한진가문이 웬만한 타 재벌가문과 한꺼번에 혈연관계를 형성시켜주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형제들 혼맥도 화려 돋보여
조중훈 가문의 또 다른 특징으로 돋보이는 것은 형제들의 혼맥도 화려하다는 점이다. 우선 조 창업주의 형인 고 조중렬 전 한진건설(옛 한일개발) 고문은 부인 최학희씨와 결혼, 2남1녀를 뒀다.
장남 지호씨는 이병호 전 상공부 장관의 장녀 숙희씨와 혼례를 올렸다. 이 전 장관은 과학기술처 장관 출신의 최형섭씨와 사돈이기도 하다. 차남 진호씨는 재미동포 내과의사인 윤주덕씨의 딸 영태씨를 아내로 맞았으며 장녀인 인숙씨는 동부제일병원 내과과장을 지낸 문영호씨와 혼인했다.
조 창업주 여동생들의 혼맥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4명의 여동생을 두고 있었는데 첫째 여동생 정옥씨는 대진해운 대표와 동양화재 감사를 지낸 전윤진씨와 결혼했다.
둘째 여동생 정원씨는 미국에서 큰 사업을 하는 박두진씨와 혼인했으며 셋째 여동생인 도원씨는 인하대 총장을 지낸 박태원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또 넷째 여동생인 경숙씨는 재미교포 외과의사인 박소희씨를 남편으로 맞았다.
조 창업주의 남동생들도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기는 마찬가지다. 12살 아래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고문은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3녀인 영학씨와 결혼해 1남3녀를 두었다.
이중 장녀 윤정씨는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국회의원)의 장남 정훈씨와 결혼했다. 조중건 전 고문은 이 전 장관을 매개로 법무장관 출신인 신직수씨와도 사돈지간이 된다. 막내 남동생인 조중식 전 한진건설 부회장은 고등학교 교장 출신인 김성덕씨의 딸 복수씨를 아내로 맞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한진가문은 의사 6명과 대학출신 2명, 장·차관을 지낸 관가출신 명문가문, 재벌가문 등 여럿과 사돈관계를 형성해 5대양6대주만큼 다양한 분야로 혼맥을 맺고 있다”고 요약했다.
신건용 기자sgy@ilyosisa.co.kr” target=_blank>sgy@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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