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다리 건너 권문세도 가문 인맥 화려
재벌들이 혼사의 대상으로 꼽는 집안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
최근 재벌들의 혼맥도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혼인의 대상 집안과 미치는 영향에 쏠리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국내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맥도를 보면 이해관계에 얽힌 혼사가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말로 빗대기도 한다. 유력한 집안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城)을 더욱 견고히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혼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의 결정체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에선 이에 재계를 움직이고 있는 재벌가문의 혼맥 실체를 집중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주>
두산의 올해 나이는 1백8살이다. 일각에선 이에 대해 의아한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상장기업분석에 근거하면 올해 나이가 71살이 된다는 게 그 이유다. 그 동안 이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논란이 빚어진 것은 기준이 달라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두산은 소하기린맥주주식회사 설립날짜를 기준으로 1933년 12월18일을 설립일로 정했다. 소하기린맥주(주)는 두산의 모기업인 OB맥주의 전신. 주식회사를 갖춘 시점으로 설립일이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두산의 실제 나이는 1백세를 훌쩍 넘는다. 1896년 8월1일, 서울 종로4가에서 출발한 ‘박승직상점’이 두산의 최초 회사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최초 회사라는 게 두산의 설명이다.
“정략관계에 의미 두지 말라”
두산그룹의 창업주 박승직씨는 유언으로 “자녀 혼사에서 정치와 가까이 하는 등 정략관계에 의미를 두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박 창업주의 유언은 곧 두산그룹의 혼습에 그대로 이어졌다. 언뜻 보면 대재벌 가문답지 않게 사돈가문의 면면은 평범하다. 정·관계 사돈을 가급적 피한 경향이 짙다.
그러나 한 다리만 건너면 역시 범상치 않다. 사돈들을 보면 결코 화려하다고 보기 어렵지만 사돈들의 사돈을 추적해 보면 두산가문도 역시 범상치 않은 집안들과 연결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혼맥도를 연결해 보면 당대 세도가문과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박두병 초대회장(작고)은 슬하에 6남1녀를 뒀다. 재계에선 박 초대회장의 ‘며느리 고르기’는 정평이 나 있을 정도다. 맏며느리인 이응숙씨(작고) 얘기는 하나의 일화로 유명하다. 장남인 용곤씨(현 두산그룹 명예회장)의 배필감을 찾던 중 딸의 친구였던 이응숙씨를 ‘후보’로 잡았다.
박 초대회장은 이씨의 집 앞에서 지프를 타고 있다가 문을 나서는 그녀를 한동안 추적하며 인물과 행동거지를 살피는 등 며느리 찾기에 공을 들였다. 지프를 타고 달려가 며느리를 맞이한 셈이다.
이런 인연은 나중에 홍사덕 의원까지 연결된다. 이씨의 아버지 이관제씨가 임문환 전 농림부 장관(작고)과 사돈인데. 임 전 장관의 사위가 홍 의원이다.
또 김인기 전 민자당 의원과도 혼맥을 잇고 있다. 박 명예회장과 김 전 의원은 경동고 동문이자 직접 사돈이다. 김 전 의원의 딸 소영씨를 며느리로 맞았기 때문이다. 박 명예회장과 김 전 의원은 경동고 선후배 사이로 동창회 모임에서 혼담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명딸인 용언씨는 실력파 검사였던 김세권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씨는 대검찰청 차장과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KCL 대표변호사로 활약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알고 보면 정계 알짜 혼맥
차남 용오씨(현 두산그룹 회장)는 1962년 최금숙씨와 결혼했다. 미국 유학 중 연애를 통해 신부를 맞을 것. 이 인연은 강원산업과 연결된다. 장인인 최낙원씨와 정인욱 강원산업 창업주와는 사돈사이다.
용오씨는 서상철 전 동자부 장관과 인연을 맺고 있다. 서 전 장관의 차녀 미경씨가 맏며느리다. 서 장관은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 고려대 교수로 있다가 경제관료로 수혈돼 안타깝게도 지난 1983년 아웅산 폭파사건 때 순직했다. 하지만 이 혼맥은 서상목 전 국회의원과 이어진다. 서 전 의원이 서 전 장관의 동생이기 때문이다.
3남 용성씨(현 두산중공업 회장·상공회의소 회장)는 김선필 전 삼성물산 사장의 딸 영희씨와 1966년 혼례를 올렸다. 당시 용성씨는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미국유학 길에 오르기 직전,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한 영희씨와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4남 용현씨는 이화여대 음대를 나온 엄명자씨(사업가 이주상씨 딸)와 1968년 혼사를 맺었다. 그는 그룹경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서울대 병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5남 용만씨(현 두산 총괄 사장)는 바깥에 알려진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증권업계 대부’로 통했던 강성진 전 증권협회 회장이 장인이다. 1979년 강 전 회장의 장녀인 선애씨와 혼례를 올렸다. 용만씨는 강 전 회장의 차남 흥구씨와 동기동창. 집에 놀러갔다가 신애씨와 사귀게 돼 결혼했다.
이 같은 인연은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연결된다. 장인인 강 전 회장이 김복동 전 국회의원과 사돈관계, 김 전 의원은 다시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와 사돈이며 김 창업주는 노 전 대통령과 사돈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과 다리 건너 사돈지간인 셈이다. 두산가문 중 가장 화려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용오 두산그룹회장(맨 오른쪽)은 전경련회장단 모임에서도 한 몫을 다하며 재계에서도 큰 자리를 잡고 있다. |
맏형 용곤씨와 무려 28살이나 차이나는 6남 용욱씨(개인사업가)는 주영복 전 국방장관과 혼맥을 잇고 있다. 이건 전 대호건설 회장의 장녀 상의씨가 그의 아내며 이 전 회장은 주 전 국방장관과 사돈관계다.
교육열 대단한 집안 내력
두산가문은 이처럼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 않지만 혼맥을 따져 보면 정계의 알짜 가문과 인연을 맺고 있다. 재계 인맥 역시 무시 못한다. 정략적 결혼을 추구하지 않았더라도 ‘하이클라스 가문’을 형성한 것이다.
이는 두산가문만의 특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문을 보면 유난히 KS(경기고→서울대)가 많다. 용오-용성-용현-용만 4형제가 KS출신이다. 다만 용오씨만 뉴욕대 출신이라는 게 옥의 티일 정도다. 용곤씨는 경동고를 나와 미국 워싱턴대에서 유학했다. 이 같은 결과는 교육열이 대단했던 박 초대회장에 기인한다.
4세대에 가면 MBA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다. ‘MBA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뉴욕대의 경우 용성씨를 비롯해 아들인 진원씨와 조카들인 지원(용곤씨의 차남·현 (주)두산중공업 부사장)·태원(용현씨의 장남·현 (주)두산상사 BG 사장)씨 모두 동문이다.
보스턴대는 용만씨와 조카인 정원(용곤씨의 장남)씨과 동문관계를 맺고 있으며 페퍼다인대는 용욱씨가 나왔다.
며느리들 중에 ‘이화여대 출신’들이 많다는 것 또한 두산가문의 특징이다. 맏며느리인 응숙씨를 위시해 김영희·엄명자·김소영·서지원·정윤씨 등이 이대 선후배 사이다. 유독 서미경씨와 이상의씨만이 각각 고려대 신방과와 한양대 기악과 출신이다.
두산가문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경영수업이다. 독특하다는 표현이 맞다. ‘바닥(사원)부터 시작하고 모든 계열사를 골고루 익히게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이다. 30대 초반에 두산 계열사에 배치돼 1년에 1계단씩 승진하는 게 일반적이다.
두산그룹 한 관계자는 “두산가문은 박승직 창업주의 ‘정치와 가까이 하지 말라’는 유훈에 따라 정·관계 사돈을 가급적 피한 경향이 짙다”면서 “대재벌 가문답지 않게 사돈가들의 면면히 평범하다는 게 두산가문의 특징”이라고 꼽았다.
신건용 기자sgy@ilyosisa.co.kr” target=_blank>mailto:기자sgy@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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