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4일 금요일

<재벌가 얽히고 설킨 혼맥 22탄> 대상그룹

<재벌가 얽히고 설킨 혼맥 22탄> 대상그룹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처가 기업으로 유명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
이훈동 전남일보 명예회장
고재청 전 국회부의장

재벌들이 혼사의 대상으로 꼽는 집안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
최근 재벌들의 혼맥도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혼인의 대상 집안과 미치는 영향에 쏠리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국내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맥도를 보면 이해관계에 얽힌 혼사가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말로 빗대기도 한다. 유력한 집안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城)을 더욱 견고히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혼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의 결정체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에선 이에 재계를 움직이고 있는 재벌가문의 혼맥 실체를 집중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조미료 전쟁 청산’, ‘영호남재벌의 화합’.
지난 1998년 6월9일 각종 매스컴에서는 한 결혼식을 두고 이같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정계와 재계 VIP들의 문전성시 속에 치러진 이날 결혼식의 주인공은 이재용 현 삼성전자 상무와 그의 부인인 임세령씨였다. ‘미풍’과 ‘미원’으로 대표됐던 국내 조미료 시장의 양대축 삼성그룹과 대상그룹(당시 미원그룹)의 3세들이기도 했다.

삼성 황태자와의 결혼

두 사람의 결혼을 계기로 대상그룹의 오너 일가는 각종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철저히 외부노출을 꺼렸던 임창욱 명예회장도 장녀의 결혼식을 전후로 매스컴에 자주 등장했다. 각종 여성지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인 홍나희씨와 함께 임 명예회장의 부인 박현주씨 관련 기사도 줄을 이었다.
이에 당시 대상그룹의 한 관계자는 “마치 삼성그룹과 동일한 레벨로 취급되고 있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는 말을 털어놓기도 했다.
‘미원’이라는 조미료 외에 딱히 두드러지지 않았던 대상그룹은 임 명예회장의 장녀 세령씨의 결혼으로 삼성그룹의 사돈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지금까지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상그룹 스스로도 이를 부담스러워하지만 삼성그룹 역시 다르지 않다. 좋은 일에 오르내리는 것은 별문제지만 궂은일에 사돈기업이라 토를 다는 데 대해 마뜩찮다는 반응이다.
국내 최고의 재벌그룹인 삼성그룹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재용 상무와 임세령씨의 결혼은 양가 어머니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로 알려진 홍나희씨와 박현주씨는 신앙생활을 통해 친분을 맺고 있었다. 또 임세령씨는 이런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홍씨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세령씨를 눈여겨봐왔던 홍씨는 며느리감으로 세령씨를 점찍어 두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씨 역시 재용씨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두 사람은 마치 의기투합이라도 하듯 사위와 며느리 삼기로 하고 아들딸의 결혼을 주선했다.
급기야 이들의 결혼이 발표되자 재계에서는 여러 가지 해석들이 쏟아졌고 그 관심도 어느 누구의 결혼 못지않을 만큼 집중됐다. 98년 6월8일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 앞 정원에서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치러진 결혼식에는 삼성과 대상그룹의 오너 및 전문경영인을 비롯한 정재계 인사 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병철 창업주의 기일에도 모두 한 자리에 모이지 못했던 한솔·신세계·제일제당(현 CJ그룹)·새한그룹의 오너 및 2~3세들이 대거 참석한 한편 당시 이수성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수석부의장, 김석원 쌍용양회회장, 유상부 포철회장, 이웅렬 코오롱회장 등이 하객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 대한 이같은 관심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각종 가십거리를 쏟아냈다.

나서지 않은 경영스타일

그러나 대상그룹은 점차 매스컴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사실 대상그룹은 ‘미원’이라는 상표 외에 딱히 일반에게 크게 알려진 기업이 아니었다. 때문에 결혼식 이후 관심의 대상에서 한발짝 비켜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상그룹의 창업주는 고 임대홍 전 명예회장. 그는 천성적으로 얼굴 내보이기를 싫어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청에도 드나들지 않았고 경제인 모임에 나가본 적도, 직책을 맡아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임씨문중의 중앙협의회격인 ‘임씨대동회’의 회장을 역임해 유일한 기업 외의 직함을 가졌을 뿐이다.
이 같은 창업주의 스타일은 장남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았던 임창욱 명예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임 명예회장은 취임 후 부친과 달리 진취성과 능력을 중시하고 인간성을 강조하는 경영을 펼치며 보수성에서 탈피하고자 했지만 재계에서는 커다란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때문에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대상그룹은 마치 ‘미원’이라는 조미료 하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상그룹의 안을 들여다보면 속이 꽉찬 알짜배기 기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대상그룹은 1956년 조미료 전문기업으로 출발, 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조미료 및 종합식품사업을 기반으로 축산, 건설, 금융, 정보기술, 종합광고 등 각종 서비스 업종을 영위하고 있으며 13개 계열사에 17개 해외사업장을 거느리고 있다. 2003년 기준 1조9천4백17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97년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하고 그룹명을 ‘미원’에서 ‘대상’으로 변경하는 그룹 CI작업을 완료하고, 21세기 초일류기업으로 도약을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IMF의 구제금융 지원에 따른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고수익 사업인 라이신사업의 매각을 비롯하여 비주력 사업 및 한계사업의 매각 합병 등 혁신적인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단행,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타파하고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재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상그룹의 50여년에 걸친 역사는 대체적으로 세 단계로 구분해 소개되고 있다.

‘미원’으로 시작되는 조미료 역사 창조

창업기로 일컬어지는 1950~ 60년대에는 국내 식품문화의 새로운 장을 연 시기다.
임대홍 창업주에 의해 시작된 대상의 역사는 순수 민족자본과 독자 기술로 생산된 국산 조미료 1호인 미원을 통해 우리 식품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후 60년대부터 조미료 대량생산 시대를 연 미생물 발효법 개발로 국내 조미료 시장에서 선두로 나섰으며, 전분 및 전분당, 구연산 등 관련 식품분야로 사업을 확대하여 종합식품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높였던 시기다.
1970년대는 도약기로 분류되고 있는데 국제화의 선도기업이 된 시기다.
국내 최초로 플랜트를 수출하여 인도네시아에 PT.MIWON INDONESIA Tbk를 설립하고 이어 일본, 미국, 홍콩 등 지역에 무역법인을 세워 국제화를 선도했다. 또한 중공업, 무역, 석유화학 등 비식품분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성장기인 1980~90년대는 미래를 준비하는 힘과 경쟁력을 다진 시기다.
제2대 임창욱 회장의 취임과 함께 육가공, 냉식, 커피, 건설 등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독창적인 기술축적을 위해 중앙연구소를 설립하여 R&D 투자에 집중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기술개발에 전력 질주했다.
또 90년대 들어 유통, 정보기술, 종합광고업 등 소프트 사업에 진출했으며 90년대 후반기에는 전문경영인 출신인 고두모 회장 취임과 그룹명을 대상으로 변경했다. 이때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구조 전문화 등의 구조조정을 통해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실속 챙기는 경영과 혼맥

대상그룹의 모기업인 대상(주)는 1956년 동아화성공업(주)을 모태로 출범했다. 조미료의 대명사인 ‘미원’을 시작으로 주력사업 분야인 종합식품, 발효, 전분당을 비롯해 건강, 건설, 무역사업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 50여년간 축적한 발효기술을 핵심 기반으로 생명공학, 정밀화학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99년 1조1천억원 매출에 3백63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양호한 경영실적을 이룬 대상은 98년말 3백22%에 달했던 부채비율이 2000년 현재 1백80%대까지 떨어졌다.
이처럼 폐쇄적이라고까지 평가되는 오너들의 경영스타일과 달리 대상그룹은 실속을 차린 대표적인 기업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혼사도 그룹 규모에 비해 국내 굴지의 재벌 못지않은 화려한 가문과 연결된 혼맥도가 그려져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함과 함께 평범함이 또 보인다.
임 창업주는 1920년 전북 정읍에서 농부였던 부친 임종구씨와 모친 김순례씨 사이의 5남1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정읍군청에서 직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전북도청 직원으로 근무하던 1942년 박하경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인 박씨는 일제 때 전남에서 철도청 역원(현 임원급)으로 일했던 박기환씨의 딸이다.
임 창업주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었다. 이들 자녀의 혼사를 통해 임 창업주는 재계·금융계 인사와 사돈을 맺게 된다. 그러나 평범한 보통사람과도 통혼했다. 또 사돈들의 출신지는 서울·전남·부산 등으로 지역적 편중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결혼으로 이룬 호남재벌의 결합

외동딸 경화씨는 동생 임창욱 명예회장 집에 가정교사로 드나들던 서울대 공대 출신의 김종의씨(백광산업 회장)와 혼사를 맺었다.
경남고 졸업후 서울대 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미국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MBA를 마치고 그룹 경영에 참여, 미원통상 대표이사와 P.I미원 인도네시아 대표이사를 지냈다.
장남으로 부친에 이어 그룹대권을 물려받았던 임 명예회장은 1976년 집안사람의 중매로 금호그룹 창업주인 박인천씨의 3녀 현주씨와 결혼했다.
임 명예회장은 한양대·일본 와세다대학에서 화공을 전공했다. 귀국 후 1973년 미원에 입사해 미원종합개발·한남화학 사장을 역임했다. 부인 현주씨는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으로 한때 미국에 유학, 미술을 전공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전북과 전남을 대표하는 재벌간 통혼으로 당시 화제가 됐다. 특히 이 결혼은 임 창업주 가문의 화려한 혼맥도에 시동을 건 계기가 됐다. 국회의원을 지낸 김익기가를 지나 해태그룹 창업주인 박병규가, 교통장관을 역임한 민병권가와 차례로 연결된다. 또 방계로는 전 재무장관인 이정환가와 동양증권 사장을 지낸 정종만가와도 연결된다.
차남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은 1990년 4월 한국산업은행 부총재보를 역임한 손필영씨의 외동딸 성희씨와 결혼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 유학시절 교회를 다니면 성희씨를 만나 교제후 결혼에 성공했다.
성희씨는 당시 산업은행 도쿄지점장이었던 부친을 따라 일본에 와 도쿄 세이징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이처럼 2남1녀의 자녀로 연결되는 혼맥도는 단촐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5명이나 되는 임 창업주의 동생들과 그 자녀들로 이어지는 혼맥도는 정재계는 물론 의학계 등 다양한 인사들과 연결되고 있다.
임 창업주의 둘째 남동생 임채홍 전 내쇼날프라스틱 회장은 특히 화려한 사돈들을 자랑하고 있다. 대상그룹 부회장까지 역임하며 임 창업주와 함께 대상그룹을 일군 일등공신이기도 한 그는 1979년 대상에서 분가해 호남식품과 내쇼날프라스틱을 독자경영했다.
채홍씨의 부인은 장혜원씨로 3남2녀의 혼사를 통해 1981년 고재청 전 국회부의장 가문과 연결했다. 장남 임익성 내쇼날프라스틱 회장의 부인이 고 전 부의장의 둘재딸 선영씨인 것이다. 또 차녀 현미씨는 1984년 이훈동 전남일보 명예회장의 막내아들 경일씨와 결혼했다.
첫째 남동생 정홍씨의 3남3녀 자녀를 통해서도 화려한 혼맥도를 그려나갔는데 차남 우성씨가 동일방직 사장을 지낸 정종화씨의 딸 혜경씨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셋째 남동생 수홍씨는 3남1녀 자녀 가운데 장남 병선씨가 전 법무차관 김영천씨 가문과 혼사를 맺었다.
유일한 여동생인 현흥씨는 임 창업주와 창업동지이며 대상그룹 고문을 역임한 한현석씨와 결혼했다. 또 MIT 출신인 막내 남동생 우홍씨는 대학동창인 브라질 출신의 테레사씨와 결혼,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톡톡 튀는 둘째딸 홈피, 삼성그룹 폭탄세례

한편 임창욱 명예회장은 두 딸만을 두고 있는데 장녀 세령씨의 동생 상민씨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 뉴욕에서 유학중이다.
상민씨는 지난 4월 형부와 언니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와 부인 임세령씨의 사생활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면서 한바탕 유명세를 탔다. 커뮤니티 사이트인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개설, 운영하고 있는 상민씨가 조카인 이 상무 부부의 딸 원주양의 사진을 모두 공개해 버린 것이다.
특히 사진아래에 “요즘 제 생활의 활력소가 된 둘째 조카. 같은 공주라 그런지 정말 귀엽답니다. 호호호”라며 원주양을 소개한 한편 이 상무의 장남인 지호군에 대해서도 “언니와 형부를 반반씩 닮은 너무너무 사랑하는 조카”라며 “너무 잘생겨서 친구들이 탐낸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한국 50대 여성 부호’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던 상민씨는 “소호에서 20달러짜리 귀걸이를 깎아서 15달러에 샀다”며 좋아하거나 연예인들의 홈페이지 주소를 퍼놓는 등 지극히 평범하고 발랄한 유학생의 모습을 보여줘 재벌가 자녀라는 흔적은 홈페이지만으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상민씨의 홈피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원정출산 등 문제가 발생하자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한정곤 기자allen@ilyosisa.co.kr” target=_blank>alle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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