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24일 금요일

[재벌가 얽히고 설킨 혼맥] <6탄> 대림그룹

이준용회장
[재벌가 얽히고 설킨 혼맥] <6탄> 대림그룹
창업주 형제들 정·재계 중심인물 많아




재벌들이 혼사의 대상으로 꼽는 집안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
최근 재벌들의 혼맥도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혼인의 대상 집안과 미치는 영향에 쏠리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국내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맥도를 보면 이해관계에 얽힌 혼사가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말로 빗대기도 한다. 유력한 집안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城)을 더욱 견고히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혼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의 결정체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에선 이에 재계를 움직이고 있는 재벌가문의 혼맥 실체를 집중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대림가문은 철저한 보수 체질의 건설 재벌 가문이다. ‘조용한 회사, 그리고 조용한 가족’으로 재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크게 흔들림이 없이 구조조정을 마무리했고 업계 13위란 수위권을 지키면서도 소리 없이 알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림의 보수경영 체질은 이재준 창업주 자신의 체질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창업주의 좌우명은 ‘풍년 곡식은 모자라도 흉년 곡식은 남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하겠다는 의미다. 그것은 그의 성장 과정에서부터 몸에 배어 왔다고 전해진다.

대림의 모태는 경기도 시흥군 남면의 한 촌락이다. 이 창업주는 1917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당시 남면 면장이었던 부친 이규응씨와 모친 양남옥씨 사이의 5남4녀 중 넷째다. 아들로는 차남이다.
서울에서 정미소를 경영했던 부친은 이 창업주를 사업가로 키울 요량으로 자신의 밑에 두었다. “사업 수완이 있으니 장사를 배우라”면서 보통학교만 마치고 정미소 일을 보게 한 것. 근면성과 성실성이 사업가가 갖춰야 할 기본요건이라고 부친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것도 이 때부터다.
부친이 운영하던 ‘한일정미소’에서 경영수업을 쌓던 이 창업주는 1939년 10월, 부평역 앞에 목재와 건설자재를 다루는 ‘부림상회’란 작은 점포를 냈다. 이것이 대림그룹의 뿌리다. 이후 사업이 번창해 1947년 토건업에 진출하면서 상호를 대림산업으로 바꾸었다.
이 창업주는 1936년 봄, 19세라는 젊은 나이에 수원 지주의 딸인 이경숙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씨는 장남 이준용씨(현 대림그룹 회장)를 낳고 1943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 창업주는 이후 박영복씨와 재혼, 차남 이부용씨(대림그룹 전 부회장)를 얻었다.
이 창업주는 다른 재벌그룹 총수들과는 달리 단촐하게 두 아들만 뒀다. 때문에 후계자 다툼도 없이 순리적으로 승계작업을 끝냈다.
장남인 이준용 회장은 순탄하게 경영자 수업을 쌓아온 편이다. 아버지 밑에서 정미소 일을 배웠던 이 창업주와는 달리 한껏 교육적 혜택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 미국 덴버 대학원에서 통계학을 공부하고 대학강사 생활을 하다가 귀국했다. 국내에서도 잠시 숭실대와 영남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서울 수송동 대림산업 사무실에 첫 출근한 것은 지난 1966년의 일이다. 이후 1979년부터 2대 그룹 총수 역할을 했다.

이 회장은 1965년 이화여대 출신의 한경진씨와 연애 결혼했다. 한씨의 부친인 한순성씨는 충남 천안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 전에 양가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아 결혼에 성공했다.
이 때의 충격으로 이 회장은 한때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은 한씨와의 사이에 3남2녀를 뒀다. 진숙-해욱-해승-해창-진수 등이 그들이다. 장남인 해욱(현 대림산업 전무)씨는 ‘닮은 꼴’로 소문나 있다. 세심하면서도 듬직한 성격, 부지런함, 훤칠한 키 등 거의 똑같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상무는 부친이 다니던 덴버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벤처투자와 온라인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관계 계열사인 아이씨티로, 웹텍창업투자, 베스트플라이, 이게임즈 등에 관여하고 있다.
차남인 해승씨는 현재 미국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워싱턴 앤드 제퍼슨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대림산업 석유화학부문 경리부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3남 해창씨는 벤처캐피탈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1999년 3월16일,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의 장녀 윤영씨를 아내로 맞았다. 이 결혼은 재계에서 두고두고 회자가 되고 있다. 청첩장에 시간과 장소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해창씨의 결혼 당시, 청첩장에 결혼일시를 명기하면서 시간과 장소를 새겨 넣지 않았다. 친지들에게 경사를 알려 결례를 피하되 식장참석과 축의금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게 당시 혼주의 설명이다.
이 창업주의 차남 이부용 전 부회장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 출신이다. 1970년에 대림산업 이사로 참여해 형과 함께 그룹 경영에 큰 도움을 줬으며 지난해 말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전 부회장은 1970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혼례를 올렸다. 당시 서울주철공업 회장이었던 이종수씨의 외동딸로 경희대 출신인 선희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들 사이엔 해영-해성-해서 등 3형제를 두고 있다.

대림가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 창업주 형제들이다. 이 창업주의 형은 고 이재형 전 국회의장이다. 이 의장은 부친이 적성을 파악, “법관 공부를 해라”고 일본 유학을 시켰으며 이것이 국회로 진출하는 디딤돌이 됐다.
실제 이 의장은 33살이란 젊은 나이에 제헌의원에 당선된 7선의 거물급 정치인이다. 38세에 최연소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고, 신민당 부총재와 민정당 대표를 거쳐 두 차례나 국회의장을 지냈다. 이 의장은 이처럼 중량급 정치인으로 힘을 발휘하면서도 동생의 사업에 일체 관여하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의장은 부인 류갑경씨와의 사이에 5남3녀를 뒀다. 이중 장남 홍용씨는 전 은행간부 출신인 배상준씨의 딸 염자씨와 결혼시켰고, 장녀 봉희씨를 원용덕 전 헌병사령관의 아들인 창희씨에게 시집보냈다.
이 창업주의 누나인 인출씨는 이창복씨와 결혼해 준원씨를 낳았다. 준원씨는 한때 대림 계열에 있다가 독립한 풍림산업 회장을 지냈다. 둘째 여동생인 옥희씨는 조양원씨와 혼인했다. 조씨는 조경업체인 옛 대림흥산(1999년 삼호에 흡수) 부사장을 역임했다. 막내 둘째 남동생인 재우씨는 대림통상 회장으로 있다.
이들은 그러나 현재 그룹 분리와 은퇴 등을 통해 대림그룹과 인연을 달리한 상태다. 현재 계열사 어디에서도 오너의 친인척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창업주의 둘째 누나인 임출씨는 사업가 임의준씨와 결혼했다. 이들은 이해익 전 농림부장관 가문과 윤용구 일동제약 회장 가문에 각각 딸을 시집보내며 사돈관계를 형성했다.
이 창업주의 막내 남동생인 재연씨의 결혼은 대림가문의 ‘꽃’으로 꼽힌다. 재연씨의 장인이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이기 때문이다. 구 창업주의 차녀인 자혜씨가 재연씨의 부인이다. 이 결혼으로 재연씨는 내내 LG그룹에서 일을 했다. LG카드 부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LG그룹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고문은 장인 덕(?)으로 재계 혼맥을 두텁게 쌓고 있다. 구 창업주가 강세원 전 희성금속 사장과, 강 전 사장은 박동복 전 금호전기 회장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박 전 회장은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친동생이다. 때문에 이 고문은 이들 가문과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뿐만 아니다. 이 고문은 정·재계 가문과 골고루 직접 사돈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장남 선용씨는 세방여행 오세중 회장의 고명딸 은주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오 회장은 또 김민희 전 LG애드 사장 집안으로 딸을 시집보냈다. 차남 지용씨는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인 재연씨를 아내로 맞았다.
한편 대림그룹은 6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 현재 재계 서열 상위권에서 아성을 자랑하고 있다. 창업기(39~52년), 재건기(53~66년), 성장기(67~71년), 도약기(72~76년), 확대 성장기(77~78년), 제2창업기(89년~현재)가 그것이다.

대림그룹은 현재 보다 더 원칙에 충실하고 깨끗한 기업상을 구현한다는 각오로 세계적 건설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창조와 도전정신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1998년부터 ‘지식경영’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 가깝게는 1백년, 멀게는 1천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대림그룹은 1999년 창업 60주년을 맞아 국내 엔지니어링업계를 선도해 온 대림엔지니어링을 합병, E&C 체제를 출범한 바 있다. 또한 석유화학 부문에 있어서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단행, IMF 후 다른 기업들의 모범이 됐다.
앞으로도 핵심역량을 총집결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초우량 기업의 그 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겠다는 게 대림그룹의 각오다.

신건용 기자sgy@ilyosisa.co.kr” target=_blank>sgy@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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