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본-미국 잇는 국제적 혼맥
재벌들이 혼사의 대상으로 꼽는 집안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
최근 재벌들의 혼맥도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혼인의 대상 집안과 미치는 영향에 쏠리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국내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맥도를 보면 이해관계에 얽힌 혼사가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말로 빗대기도 한다. 유력한 집안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城)을 더욱 견고히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혼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의 결정체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에선 이에 재계를 움직이고 있는 재벌가문의 혼맥 실체를 집중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롯데그룹 신격호 가문은 가계도가 비교적 단촐하지만 재계 혼맥은 무시 못할 파워를 지니고 있다. 특히 9명이나 되는 신 회장의 동생들과 그로 파생되는 수많은 조카들의 혼인을 통해 정계 고위층과 혼맥을 맺고 있다. 정·재계의 혼맥이 실로 막강한 셈이다.
롯데가문의 또 다른 특징은 현해탄을 건넌 국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 회장 자신은 일본과, 아들은 미국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일본측의 끈질긴 귀화 요청에도 불구 철저하게 한국 국적을 지키는 한편, 한국에서 얻은 수익을 일본으로 반출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
한·일 양국 아내 맞은 신격호 회장
한·일 양국의 거대 그룹 ‘롯데’를 이끌고 있는 신 회장은 일제시대 때인 지난 1921년 11월3일 경남 울주군 삼남면에서 중농 신진수·김필순(모두 작고)씨의 5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식구를 둔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두 차례 결혼했다. 18세 때인 1939년 같은 마을에 살던 노순화씨를 아내로 맞아들인 게 초혼이다. 이들 사이에 딸 영자씨(롯데백화점 부사장)를 낳았다.
하지만 당시 울산농고를 졸업하고 종축기사로 일하던 그는 9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부모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어 현해탄을 건너기로 마음먹고 일본행 배편에 몸을 실었다.
반면 신 회장의 일본행으로 1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낸 조강지처 노순화씨는 롯데가문의 장녀인 영자씨(1942년생)를 홀로 키웠다. 그러다가 신 회장이 완전 귀국하기 전인 지난 1960년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신 회장은 1945년 일본에서 또 한 명을 배필로 맞았다. 시게미쓰 하츠코씨가 그 주인공이다. 하츠코씨는 롯데월드와 롯데쇼핑 개장식 등에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들 부부 사이엔 두 명의 아들을 뒀다. 신동주 일본 롯데 전무와 신동빈 한국 롯데 부회장이 그들이다.
다국적 혼사 치른 2세들
신 회장의 2세들은 다국적 혼사를 일궈냈다. 장녀인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은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졸업 후 한국 롯데의 경영에 참여했으며 현재의 부사장직에 올랐다.
신 부사장은 지난 1967년 장오식 전 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했으나 현재 독신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재영-선윤-정안 등 1남2녀를 뒀다. 장남 재영씨는 현재 롯데백화점과 마그넷 등에 인쇄물을 독점 공급해 2백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재영상공’이란 인쇄업체를 운영 중이다.
장녀 선윤씨는 하바드대학 심리학과 출신으로 패션계가 주목하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완벽한 영어 구사와 비즈니스 매너로 해외 명품 CEO를 직접 만나 비즈니스를 성사시켰을 정도다. 그의 남편은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만 전해진다.
정안씨는 아직 미혼으로 롯데백화점 말단부터 시작, 과장으로 일하며 현재 화장품과 액세서리 파트를 맡고 있으며 온화한 성품으로 교우관계가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 부사장은 38살의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지난 1992년 미국 시카고에서 사업을 하는 재미교포 조덕만씨의 딸 은주씨를 아내로 맞이한 것. 신 부사장은 당시 미국 현지법인인 롯데 USA의 부사장을 맡아 일하던 중 현지에서 은주씨와 만나 교제한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차남 신동빈 한국 롯데 부회장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조차 비교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의 일본 명문가문과 혼맥을 형성했다. 지난 1985년 일본의 귀족 가문으로 대형건설회사인 다이세이건설의 오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사위가 된 것이다.
아내 미나미씨는 일본 귀족학교인 학습원대학을 졸업했으며, 한때 일본 황실의 며느리 물망에까지 올랐을 정도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재원이다. 이 결혼을 주선한 사람도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였다. 결혼식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일본 총리가 직접 참석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의 롯데 위상을 새삼 확인시켰다.
신 회장의 차남 신동빈 롯데 부회장은 일본 명문가문과 혼맥을 형성했다. |
신춘호 농심 회장, 화려한 혼맥 자랑
신 회장 직계 가족의 혼사에 비하면 동생 집안의 혼맥에는 화젯거리가 많다. 첫째 남동생인 신철호 동신 회장은 평범한 집안 출신 송학인씨의 딸 수영씨를 아내로 맞아 슬하에 2남6녀를 뒀다. 이중 장녀 혜경씨의 남편은 부장판사를 지낸 조용원씨, 3녀 미진씨의 남편이 장태규 변호사다.
둘째 남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사돈들은 ‘화려’ 그 자체다. 그는 재산 분할을 놓고 형과 서먹해진 관계를 마치 인맥으로 만회라도 하려는 듯 5명의 자녀를 모두 동부·태평양·조양상선 등 굴지의 재계 가문에 장가·시집을 보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신춘호 회장은 부인 김낙양 여사와의 사이에 3남2녀를 뒀다. 장녀 현주씨는 지난 1979년 박남규 전 조양상선 회장의 차남 재준씨(남북수산 전 대표)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은 김치열 전 내무·법무장관과 사돈사이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은 서봉균 전 재무장관, 오석락 전 청주지법 원장, 김기홍 전 대법원 판사와 사돈관계에 있다. 또 딸을 김종대 전 대전피혁 사장 집안에 시집보냈다. 김 전 사장은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신덕균 동방유량 명예회장들과 사돈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김 전 장관은 이들 가문과도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장남인 동원씨(농심 부회장)는 지난 1986년 민철호 동양창업투자 전 사장의 장녀 신영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쌍둥이 동생인 동윤씨(율촌화학 사장)는 국회 부의장을 지낸 김진만 동부그룹 명예회장의 딸 희선씨와 결혼했다.
희선씨의 둘째 오빠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고 셋째 오빠는 김택기 국회의원이다. 때문에 동윤씨는 이 결혼을 통해 동부그룹은 물론 정계와도 사돈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게다가 동부가문은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와 사돈사이로 롯데와도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된다.
3남 동익씨(농심가 사장)도 만만치 않다. 그의 장인은 노홍희 신명전기 전 사장이다. 아내인 재경씨는 노 전 사장의 장녀이며 영국 대사를 지낸 노창희 전경련 상임고문의 조카이기도 하다. 차녀 윤경씨는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의 차남 경배씨에게 시집갔다. 신춘호 회장과 서 회장은 친분이 아주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한진가문과도 사돈
신 회장의 셋째 남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은 심정섭 전 민국일보 편집국장의 장녀 정자씨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동우-동준-유나-이나 등 2남2녀를 뒀다.
넷째 남동생인 신준호 롯데햄우유 부회장은 한순용 전 한대산업 회장의 딸 일랑씨와 결혼, 동학-동식-경아씨 등 2남1녀를 뒀다. 이중 장남 동학씨는 ‘롯데가의 악동’으로 소문난 인물이다. 계속 사고를 치고 철창신세까지 졌던 탓이다.
1994년 ‘프라이드 사건의 폭력’을 시작으로, 2년 뒤인 1996년엔 동거녀와 함께 대마초와 코카인을 흡입한 혐의로 구속됐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그의 파행에 변호사 선임을 해주지 않는 등 가족들조차 그를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반해 여동생들은 1세대임에도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신격호 회장과 많게는 20살 넘게 차이나는 이들 여동생은 신 회장의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난 뒤 결혼한 덕분(?)이다.
셋째 여동생인 경숙씨는 고 박성황 한일향료 사장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장남인 기택씨를 통해 정일영 전 국민대 총장의 장녀 형은씨를 며느리로 맞았다. 또 장녀 기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김영대씨와 결혼했다.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씨는 최두열 전 치안국장의 동생인 최현열 남경그룹 회장과 부부가 됐다. 이들은 은영-은정-강용-은주씨 등 1남3녀를 두고 있는데 장녀 은영씨는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3남 수호씨(한진해운 부회장)와 결합했다. 또 차녀 은정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막내 동생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차남 동익씨(KCC 전무)에게 시집갔다.
신 회장과 24살 차인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아면세백화점 사장은 경제기획원 출신인 김기명 롯데관광(롯데그룹과 병개) 회장과 결혼했다. 김 회장은 김기형 전 과학기술처 장관의 동생으로 동아면세백화점 등 9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신건용 기자sgy@ilyosisa.co.kr” target=_blank>mailto:기자sgy@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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