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얽히고 설킨 혼맥] <8탄> 한화그룹
단촐하지만 사돈은 ‘막강파워’
재벌들이 혼사의 대상으로 꼽는 집안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
최근 재벌들의 혼맥도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혼인의 대상 집안과 미치는 영향에 쏠리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국내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맥도를 보면 이해관계에 얽힌 혼사가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말로 빗대기도 한다. 유력한 집안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城)을 더욱 견고히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혼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의 결정체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에선 이에 재계를 움직이고 있는 재벌가문의 혼맥 실체를 집중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재계 서열 7위 한화그룹의 올해 나이는 52살이다. 지난 1952년 1월 전쟁 중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가 ‘한국화약’이란 회사를 설립한 게 그 시초다. 화약전문기업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을 일궈낸 셈이다.
한화그룹은 이색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10년을 주기로 새 옷으로 단장한다. 1981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취임하면서 2세 경영을 선도했다. 1991년에는 빙그레와 제일화재 분사를 통해 계열분리를 끝냈다. 한국화약이란 사명을 환화로 변경한 것도 이 시기다.
현재 기간산업에서 터를 닦은 한화그룹은 금융과 레저 쪽으로 주력산업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한생명의 인수가 그 첫 신호탄이다. 이를 토대로 한화그룹은 보험-증권-투신을 잇는 막강한 금융계열군을 거머쥐고 있다.
SK-노태우-신동방-호남정유와 사돈
한화가문은 한 마디로 단촐하지만 ‘힘 있는’ 집안과 혼맥을 잇고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김종희 창업주의 자녀들은 모두 권력층 인사들의 자녀들과 결혼했다. 이는 한화그룹의 모기업인 한국화약이 군수산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김 창업주는 부인 강태영 여사와 사이에 2남1녀를 뒀다. 영혜-승연-호연씨가 그들이다. 이들 자녀만 보면 단촐하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할 특징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사돈집안을 보면 정·관계 주요인사와 사돈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 창업주 생전에 혼사를 치룬 것은 장녀 영혜씨다. 영혜씨는 박정희 정권시절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 동훈씨(전 제일화재 회장)를 남편으로 맞았다.
당시 이들의 혼사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만나 연애결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사전 교감’에 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창업주와 이 전 부장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화약이란 군수산업으로 성장했던 기업의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권력 포스트와 가깝게 지냈던 것이 이들의 친분을 이은 것으로 전해진다.
영혜씨와 동훈씨의 혼사는 한화가문이 굵직한 정·재계 가문과 연결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이 전 부장의 막내아들인 동욱씨가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막내 딸 애정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에서 출발한다.
최 창업주의 조카인 최태원 SK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를 아내로 맺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한씨는 신병수 전 신동방 회장의 딸 정화씨와 결혼했다. 또 이 전 부장은 서정귀 전 호남정유 사장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한화가문은 이 전 부장을 축으로 SK-노태우-신동방-호남정유와 다리 건너 사돈관계를 형성했다.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은 1990년대 초반 김 회장이 그룹분할을 할 때 회장직을 맡았다. 1991년 독립하자마자 동양정밀, 동양정보통신을 인수하는 등 정보산업그룹을 꿈궜으나 결국 좌절을 맛보았다. 인수한지 7개월만에 회사가 부도나면서 김승연 회장이 급전을 조달해줬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는 회장직을 내놓았으며 현재는 영혜씨만 대주주로 남아 있다.
권력 포스트와 가까워진 김 회장 혼사
장남인 김승연 한화그룹은 회장은 불과 29세 나이인 1981년 그룹 회장직을 승계했다. 당시 최연소 그룹 회장으로 화제가 됐던 김 회장은 미국 드폴대를 졸업한 후 경영수업을 받던 중 지병으로 부친이 타계하면서 회장직을 승계한 것이다. 때문에 김 회장의 결혼은 부친의 공석에서 치러졌다.
김 회장은 부친 타계 후 1년만인 1982년, 서정화 국회의원의 장녀 영민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씨는 김 회장보다 아홉 살이나 연하로 당시 서울대 약대 3학년 재학 신분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어느 유명인사 부인의 중매로 만나 교제 끝에 맺어진 이 결혼은 한화가문을 일약 명문가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김 회장의 장인인 서 의원 집안은 정통관료가 많이 배출된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조부는 서상환 전 법무장관이다. ‘청와대 파견검사 1호’로 유명했던 서정신 전 대검차장(현 변호사)은 그의 친동생이다.
서 의원은 29살에 군수를 지낸 이력을 갖고 있다. 김 회장도 29살에 재계 전면에 데뷔했다. 그는 5공 때 내무장관에 발탁된 데 이어 김영삼 정부시절 내무장관에 올랐다. 김 전 대통령과는 중학교(통영중) 6년 후배다. 게다가 1980년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바 있어 한화가문은 두 명의 정보부 고위층과 사돈을 맺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서 의원은 5공 시절 사위인 김 회장을 음양으로 도왔고, 김 회장도 장인의 국회의원 출마(13·14대) 때 아낌없는 금전적 지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5공 시절 한화그룹이 명성그룹과 한양유통을 인수, 당시 재계 안팎으로부터 의혹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차남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의 혼사도 만만치 않다. 아내인 김미씨의 조부가 독립운동가였던 김구 선생이다. 또한 장인은 교통부장관과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신씨다. 이 같은 인연으로 김호연 회장은 지난 1992년부터 백범선생 기념사업회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호연-김미 부부는 연애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대학시절(각각 서강대와 이화여대) 처음 만나 교제를 하다가 부부의 연을 만든 것이다. 이 결혼은 한화가문에서 유일한 연애결혼 커플을 탄생시켰다.
한편 김 전 교통부장관의 혼맥을 보면 한상태 전 서태평양 사무처장-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조병준 국제사이언스클럽회장-임송본 전 식산은행 총재-설경동 대한전선 창업주-양정모 전 국제그룹 회장-김용완 전 전경련 회장-구인회 LG그룹 창업주-허정구 전 삼양통상 회장으로 연결돼 있다.
수재와 정계인사 유독 많아
한화가문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정계인사들이 유독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김 창업주는 4남1녀의 형제를 이뤘다. 이중 큰형인 종철씨(작고)는 국민당 총재를 지냈던 쟁쟁한 정치인으로 고향인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역임했다. 한화계열사였던 한국베아링과 태평물산의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총재의 장녀인 원옥씨는 신연 한화섬유화학 뉴욕지사 상무와 결혼했다. 김승연 회장과 동갑내기인 신 상무는 센트릴주립대 출신으로 그룹 경영에 간여하는 인물로 꼽힌다.
3남 진연씨는 한화유통계열사였던 써클케이(현 씨스페어스·한유통) 대주주로 있다. 4남 규연씨는 빙그레 계열 불륨회사인 콜럼버스 고문으로 있다가 지난 1999년 1월 중견해운업체인 천경해운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지난해 6월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 창업주의 세째 남동생인 종식씨는 큰형인 종철씨가 작고하자 선거구인 충남 천안을 물려받아 당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 여동생인 종숙씨는 UC미클릭에서 지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일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 부사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참여했었으나 김 회장 취임 후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화가문에 수재들이 많다는 것은 또 다른 특징이다. 집안에 수재가 많을뿐더러 며느리들도 수재를 맞는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우선 김 창업주는 일제시대 때 명문이었던 경기공립상업학교(현 경기상고) 출신이다.
김승연 회장은 경기고 재학 중이던 16살 때(196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에선 미네소타주에서 고교과정을 마친 후 멘로대학에서 경영학을 드폴대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다. 그런가하면 김승연 회장의 부인인 영민씨도 알아주는 재원이다. 서울대 약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기 때문이다. 또 장남인 동관씨는 미국하버드대 유학중이다.
김호연 회장은 재계가 인정하는 학구파로 알려져 있다.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온 그는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유통경제)를 받았고, 서강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게다가 재계 CEO들의 스타디모임인 ‘경영연구회’를 이끌기도 했다.
김 회장의 유일한 매형인 이동훈씨는 중앙고를 나와 연세대를 수료한 후 도미, 플로리다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한편 한화가문의 여인들은 대외활동을 극히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벌가문이라면 통관의례처럼 여기는 미술관 경영이나 종교사업 같은 대외활동이 서영민 여사나 김미 여사에겐 찾아볼 수가 없다. 대외행사를 굳이 꼽으라면 매년 7월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에서 열리는 고 김종희 창업주 추도식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유일하다.
신건용 기자sgy@ilyosisa.co.kr” target=_blank>sgy@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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