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 기업인 출신과 결합 많아 이색
재벌들이 혼사의 대상으로 꼽는 집안은 대체 어떤 부류일까.
최근 재벌들의 혼맥도가 공개되면서 세간의 관심은 혼인의 대상 집안과 미치는 영향에 쏠리고 있다. 실제 혼맥도를 보면 국내 재벌들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혼맥도를 보면 이해관계에 얽힌 혼사가 이뤄졌다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그들만의 공화국’이란 말로 빗대기도 한다. 유력한 집안과의 혼인관계를 통해 자신들만의 성(城)을 더욱 견고히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통혼을 통해 부와 권력, 명예의 결정체를 도출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요시사에선 이에 재계를 움직이고 있는 재벌가문의 혼맥 실체를 집중 재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지난 1월13일, 코오롱그룹에선 경사스런 행사가 치러지며 화제를 낳았다. 이동찬 명예회장(83)이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回婚禮)를 올린 것이다.
이 명예회장과 부인 신덕진씨(82)는 결혼 60주년인 이날 오전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전통 혼례 절차에 따라 예식을 가졌다.
회혼례는 부부가 건강하게 60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희귀하고 의미가 있는 행사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다. 2월에는 코오롱 그룹 사보가 창간 37주년을 맞아 4백호를 발행, 또 한 번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국내 기업의 사보발간은 지난 1960년 동양맥주가 발간한 ‘사보 OB’가 최초다. 코오롱 사보는 발행 당시 16절 갱지 2페이지로 시작해 국내 최초로 나일론 공장을 설립한 코오롱의 역사를 투영시켜 왔다.
코오롱그룹은 이처럼 의미 있는 행사가 연이어 이어지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가운데 코오롱가문의 혼맥 역시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차남은 정계 막내딸은 재계와 통혼
코오롱그룹은 그룹의 규모에 비해 혼맥만큼은 단연 10대 그룹감으로 꼽을 정도다. 코오롱그룹 이원만 가문은 실제 ‘재벌의 대표적인 혼맥’으로 통한다. 정·관계 및 재계에 걸쳐 두루두루 알짜배기 혼사를 성사시켰다.
실제 이원만 가문의 사돈들은 하나같이 정·관·재계 명망가들이다.
이 같은 혼맥은 물론 이원만 창업주의 영향력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대 참의원과 6∼7대 의원을 지낸 이 창업주는 자녀들과 손녀들을 명문가에 출가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한국 명망가문의 중심선상에 위치했다.
이원만 창업주는 1904년생이다. 경북 영일군에서 부친 이석정씨의 5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손 위 형들은 태어난 지 채 1년도 못되어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실질적 장남으로 성장했다. 이 창업주는 1920년 4월, 이위문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이들 부부는 슬하에 2남4녀를 뒀다. 이동찬·이봉필·이매란·이미자·이동보·이미향씨 등이 그들이다. 이중 장남 동찬씨는 현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으로 있으며, 차남 동보씨는 전 코오롱TNS 회장으로 활동했다.
이 창업주 자녀들 중 명문세가 집안과 혼맥을 맺은 사람은 차남 이동보 회장과 3녀 미자씨, 막내딸 미향씨다. 이동보 회장은 정계, 미자씨는 만석꾼 집안, 미향씨는 재계 명문가문과 통혼을 이뤘던 것이다. 이것이 코오롱가문 혼맥 형성의 단초가 됐다.
코오롱그룹본사 사옥. |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사돈
이동보 회장의 장인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다. 지난 1974년 김 총재의 장녀 예리씨와 결혼했다. 당시 이들의 결혼은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이 창업주 집안과 대통령 조카사위인 김 총재 집안을 연결시키기 위해 적극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육 여사는 이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이들 부부가 신혼여행을 갔다온 후 이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까지 베풀 정도로 지극한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나중에 파경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 창업주 가문은 공화당 정권 당시 2인자였던 김 총재와 사돈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굳건한(?) 혼맥을 구축했다. 김 총재는 물론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다리 건너 사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창업주의 장녀 봉필씨는 1954년 고향 근처에 살던 임병진씨의 아들 승엽(작고)씨에게, 차녀 애란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노영태씨에게 출가했다. 3녀인 미자씨는 포항 대지주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당시 포항 대지주였던 박문학씨의 장남 박성기 전 한국바이린 사장이 남편이다.
막내딸인 미향씨는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주 집안으로 각각 출가했다. 허영인 태인샤니그룹 회장이 미향씨의 남편이다. 허 회장은 베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 등을 통해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창업주가 박정희 정권 시절, 국회의원으로 정치활동을 펼치고 있던 시기였기에 정략결혼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특히 코오롱그룹의 성장기가 이 시기와 맞물려 주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 코오롱그룹 완성 시점이다. 이 창업주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국내 최대의 나일론 섬유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외국으로부터 5천만 달러 이상의 차관을 들여왔다.
당시 은행금리가 25∼30%인데 반해 차관금리가 5∼6%에 불과했고 더군다나 이를 정부가 지불 보증해 줌으로써 차관 획득 자체가 엄청난 이권이란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동보씨와 미향씨의 잇따른 혼사로 코오롱그룹 경영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당시 재계에선 입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3세대…굵직한 정·재계 혼맥 형성
코오롱그룹의 혼맥은 3대째 가면서 더욱 화려해진다. 장남인 이동찬 명예회장(1922년생)은 해방 전인 1944년, 동향 사람인 신병옥씨의 무남 독녀 덕진씨와 혼사를 맺었다. 당시 23세의 꽃다운 나이였지만 그 때 학병으로 징집을 기다리고 있을 때여서 결혼한 지 3일만에 헤어져야 했다. 이들 부부는 1남4녀를 뒀다. 경숙·상희·혜숙·은주·웅렬·경주씨가 그들이다.
장녀인 경숙씨는 1969년 당시 공화당 의장 서리였던 고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3남 문조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 전 국회의장은 도쿄대를 나와 경북대 교수로 있다가 1960년 정치에 투신해 5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선 TK(대구·경북) 인맥으로 통했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탓이다. 한편 문조씨는 영남대 정치행정대학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차녀인 상희씨는 국내 대표적 송상(松商)으로 불렸던 고홍명 한국빠이롯드 회장 집안으로 출가했다. 1973년, 고 회장의 장남 석진씨와 결혼한 것이다. 석진씨는 코오롱제약(옛 삼영신약) 사장을 거쳐 에나멜동선 전문업체인 빠이롯드전자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이 회사가 부도나는 등 불운을 겪다가 지난 1998년 세상을 뜨고 말았다.
3녀인 혜숙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씨와 결혼했다. 현재 고려해운 사장으로 재임하고 있는 동혁씨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컬럼비아대학 석사 출신이다. 해운선사로서는 처음으로 대만과 홍콩 등 동남아 항로에 진출한 해운업계 프런티어 경영인으로 이름이 높다.
4녀인 은주씨는 신병현 전 한국은행 총재의 장남 영철씨(재미 의사)와 1978년, 자유교제 끝에 화촉을 밝혔다. 시아버지인 신 전 총재는 당시 보기 드문 인텔리로 상공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역임했다.
이들 부부 결혼식에선 신 전 총재가 직접 주례를 맞아 화제가 됐다. 신영철-이은주씨 부부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신 전 총재는 또 이동녕 봉명그룹 회장과도 사돈관계다. 따라서 코오롱 가문과 봉명그룹은 다니 건너 사돈이 된다.
코오롱가문은 이로써 정계 인사인 김종필 가문과 재계 인사인 이효상·고홍명 가문에 이어 관계 인사인 신병현 가문까지 사돈관계를 맺었다.
현재 코오롱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웅렬 회장은 이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지난 1983년 황해도 연백출신인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장녀 창희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서 회장은 1962년 고급벽지의 대명사인 갈포벽지를 만들어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인물로 통한다.
부인 창희씨는 이화여대 사회학과와 불문과 대학원 출신으로 상당한 미인이다. 이 명예회장의 다섯 딸들과 며느리 서씨는 모두 이화여대 동문사이다.
딸·며느리 모두 이대 동문
그는 한동안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분가했다. 이 명예회장으로부터는 “남들이 며느리를 잘봤다더라”며 간접적으로 칭찬할 정도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도 이 명예회장은 거의 매주 화요일 코오롱본사 사무실 옆의 그림방으로 딸들과 함께 서씨를 불러 그림을 그리고 저녁도 사곤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5녀인 경주씨는 광명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장남 태훈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가정불화로 헤어졌으며 이후 국내에 있는 외국계 증권사 임원과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코오롱 혼맥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북 기업인들과 결혼이 많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고홍명 회장, 서병식 회장, 허창성 창업주 등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신건용 기자sgy@ilyosisa.co.kr” target=_blank>sgy@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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